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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오병훈] 억새꽃
현관으로 들어서자 실내가 환하게 밝아졌다는 느낌이다. 우산꽂이로 쓰는 작은 항아리가 오늘따라 더욱 선명하게 반짝이는 것 같다. 가을인가. 억새의 계절이 왔어도 도심에서 일상에 쫓기다 보면 가을을 느끼지 못하고 지내기 일쑤다.
2017-09-10 18:02
[살며 사랑하며-김서정] 갈치의 죽음
바다낚시를 나갔다. 봄에 나갔던 낚시에서는 손바닥만 한 돔 세 마리 겨우 잡은 채 멀미에 시달렸던 터라 이번에는 미리 멀미약을 먹었다. 열 명 남짓 낚시 체험 관광객을 실은 배가 뉘엿뉘엿 지는 해를 뒤로하고 십 분쯤 달려 바다 위
2017-09-07 17:40
[살며 사랑하며-윤고은] 거의 모든 사이즈
C와 나는 종종 이스탄불 여행에 대해 얘기하는데, 그럴 때마다 카펫 팔던 남자도 소환된다. 우리가 이스탄불에서 숄을 하나씩 샀을 때 팔던 청년이 바로 옆 카펫 가게에도 가보라고 했던 것이다. “한국인과 결혼한 남자인데 한국인을
2017-09-05 17:36
[살며 사랑하며-오병훈] 찐 고구마 두 개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손수레를 끌고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수레에서 짐이 떨어진 줄도 몰랐다. 뒤에서 수레를 밀던 두 명의 여학생 중 한 명이 검은 비닐 뭉치를 들고 “할아버지, 짐 떨어졌어요”라고 말하며 수레에 실어주었다.
2017-09-03 18:20
[살며 사랑하며-김서정] 재채기가 무서워
한 달쯤 전 무거운 걸 들다가 허리를 삐끗했다. 그렇게 다쳐본 적이 없던 터라 ‘뭐지?’ 하면서 끙끙거리다가 이삼일 지나 괜찮은 것 같기에 책 정리를 좀 했는데, 다시 쩌르르 등허리가 아프다. 그렇게 괜찮고 아프고를 반복했다. 미
2017-08-31 17:31
[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이름을 모르는 사이
검색을 많이 한다. 중요한 것도 검색하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도 검색한다. 궁금한 것 중에는 검색창에 입력할 말조차 생각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으니, 한자 검색이라든지 음악 검색 같은 시스템은 매번 감탄하면서 쓴다. 최근에는 꽃
2017-08-29 19:09
[살며 사랑하며-유형진] 인생 모티브
처서가 지나고 며칠을 열대우기처럼 비가 내리더니 이제 조석으로 바람이 차가워졌다. 그래서인지 지난겨울에 뜨다 말았던 ‘그래니 스퀘어 모티브’ 담요를 마저 뜨고 싶어졌다. 물론 의사는 다친 어깨 근육의 재활을 위해 손목의 움직
2017-08-27 17:43
[살며 사랑하며-김서정] 용감한 엄마들
오늘 아주 용감한 엄마들을 만나고 왔다. 제주시 ‘아기사랑 엄마의 집’에 사는 미혼모들. 아직은 이 용어가 보편적이라서 쓰고는 있지만, 앞으로는 다른 이름이 붙여져야 할 터이다. 아기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 용기가
2017-08-24 18:32
[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이미 애프터
카메라 관련 장비에는 특별한 관심이 없었는데, 그 세계의 애칭들이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애기백통→ 형아백통→ 엄마백통→ 아빠백통→ 새아빠백통’으로 이어지는 가계도 같은 것. 작명에 동의하느냐의 여부는 뒤로 미
2017-08-22 17:41
[살며 사랑하며-유형진] 감동 구름
얼마 전 쿠바를 여행하고 온 어느 소설가의 여행 산문집을 읽다가 아바나의 구름 사진을 보았다. 작가는 아바나 구름을 보기 전까지는 구름에 주목한 적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종이에 작게 인쇄된 사진으로만 봐선 작가가 본 구름의 감
2017-08-20 18:38
[살며 사랑하며-김서정] 중성화 논쟁
동갑내기 사촌이 근처에 산다. 최근에 식구들이 암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해서 키운다. 내 사촌인 아빠는 보기만 해도 입이 벙싯 벌어지고, 엄마는 하루 이틀 집을 비우면 다른 누구보다 고양이 보리가 더 보고 싶더라며 희한해한다. 아
2017-08-17 18:03
[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시간의 안락사
손목시계는 손목 위에 있을 때 가장 멋져 보인다. 아니면 판매대의 진열장 안에 있을 때. 적어도 이렇게 내 서랍 속에 방치되어 있을 때는 아닌 것 같다. 시계 여섯 개가 마치 잡은 지 오래된 생선들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색깔, 크기,
2017-08-15 17:43
[살며 사랑하며-유형진] 에어컨 죄책감
작년 여름도 굉장한 더위였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1994년 이후 가장 더운 여름’이라는 수식이 기상뉴스 끝에 붙곤 했었다. 올 여름은 작년보다 더 덥다. 작년엔 집에 에어컨이 있었지만, 실외기에 연결하지 않고 여름을 지냈다.
2017-08-13 18:58
[살며 사랑하며-김서정] 통증 잊는 법
살짝 넘어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왼쪽 엄지발가락을 된통 부딪쳤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조금 욱신거리더니 갈수록 강도가 심해지고, 예닐곱 시간 지나자 발가락이 온통 보라색이 됐다. 신경을 다른 데로 돌려줄 만한 책을
2017-08-10 18:41
[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엽서의 미학
십 년 전만 해도 여행할 때 종종 엽서를 부치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카카오톡이 대신하게 됐다. 엽서를 넣으면 어느 시점에 알아서 보내준다는 우체통도 종종 만났지만 그럴 때도 나는 카톡을 선택했다. 그 우체통 앞에서 사진을 찍어
2017-08-08 17:38
[살며 사랑하며-유형진] 신분 유지·상승의 사다리
며칠 후 우리 집 청소년이 고입검정고시를 본다. 현재 우리 아이가 중학교 3년 과정 동안 배워야 할 내용을 잘 알고 있는지 평가할 방법은 국가에서 치르는 검정고시 밖에 없다. 아이는 쉬운 문제라도 그 문제의 예문 하나까지 완벽하게
2017-08-06 18:28
[살며 사랑하며-김서정] 삐뚤빼뚤 목공작품
드디어 좌탁을 완성했다. 아직 사포질과 유칠 같은 뒷손질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꼴은 완전히 갖춘 것이다. 감개가 무량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끔 빠지기도 했지만, 석 달 동안 매달렸다. 75년 만이라는 제주의 더위에 땀깨나 흘렸
2017-08-03 18:36
[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최고의 이륙
비행기에서 바퀴벌레 한 마리와 좌석을 공유한 적이 있다. 일곱 시간의 비행이 끝나갈 무렵에서야 그걸 알아챘다. 먹고 있던 기내식에서 곰팡이를 발견한 적도 있고, 내 좌석 등받이에 안마 기능이 추가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발길질을
2017-08-01 17:45
[살며 사랑하며-유형진] 소음과 음악 사이
2166. 며칠 전 퇴근시간쯤 탔던 2호선 순환선 지하철 칸의 번호다. 휴대폰 배터리는 6%였고, 더 이상 음악을 들으면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끊길 것 같아서 이어폰을 뺐다. 그리고 만원 지하철 안 사람들을 관찰했다. 나는 귓속으로 들어
2017-07-30 17:50
[살며 사랑하며-김서정] 두려움이 필요해
얼떨결에 스쿠버다이빙 체험을 했다. 깊은 바다에서 물고기들과 노니는 꿈을 가끔 꾸기는 했지만 이렇게 현실로 이루게 될 줄은 몰랐다. 세계 10대 포인트에 들어간다는 서귀포 앞바다 작은 섬은 다이버들로 흥겹게 북적였고, 물속은 스
2017-07-27 17:47
[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일상채집자
나는 인스타그램을 한다. 매일 접속하지는 않지만, 반나절 내내 들여다보기도 한다. 내가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리는 과정을 아는 L은 그걸 ‘집필활동’이라고 부른다. 게시물을 올리기에 앞서 퇴고를 거듭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
2017-07-25 17:12
[살며 사랑하며-유형진] 진짜 배려
어깨가 다친 동안 안 쓰던 근육을 다시 쓸 수 있게 되니 삶의 질이 달라졌다. 아직도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염증을 제거했더니 밤마다 통증에 시달리며 잠을 못 자 짜증나고 우울하던 것들이 사라졌다. 건강할 때는 잘 몰랐지만
2017-07-2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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