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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김종식 <9> 인터넷 세상에 ‘복음의 집’ 세워
며칠 째 성령께서 사도행전 16장 31절 말씀을 반복해서 주셨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그중에서도 내게 주신 감동은 ‘집’이었다. 영어성경(NIV)은 ‘당신과 당신의 가족(you and
2017-06-29 00:02
[역경의 열매] 김종식 <8> 마을과 절 안에 있는 학교에 복음의 접촉점 104개…승려들도 복음을 듣다
나는 2016년 2월15일에 캄보디아 국가재건공로훈장을 받았다. 등급은 ‘메다이미어’인데 번역하면 금장이라고 할까. 어쨌든 꽤 긴 이름의 훈장이다. 불교국가가 기독교 선교사에게 훈장을 준 사연은 이렇다. 캄보디아에선 ‘외국인을 3
2017-06-28 00:03
[역경의 열매] 김종식 <7> 그들을 가르치라 ‘헵시바’라 하신 말씀으로…순종의 열매 신학생 3명 나와
하나님은 캄보디아에 대해 ‘나의 기쁨이 그녀에게 있다’라고 하셨다. 새 예루살렘으로 회복시키신다는 말씀도 주셨다. 그 말씀으로 8년째 젊은이들을 제자로 양육하고 있다. 몇 사람 이야기로 하나님사랑을 전한다. 런네악스머이
2017-06-27 00:01
[역경의 열매] 김종식 <6> 기적이 일어나도 도무지 믿지 않는…“네가 만난 예수를 증거하라”
몇 년째 캄보디아 사역현장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기적을 많은 사진과 함께 간증책자로 만들게 됐다. 첫 번째 책은 ‘나는 예수를 만났다’, 두 번째 책은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당신의 인생이 바뀝니다’, 세 번째 책은 3권 시리즈로
2017-06-26 00:00
[역경의 열매] 김종식 <5> 교회건축에 남은 3천 달러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거니?” 들려오는 성령의 음성
나는 한 마을 한 교회(One Church, One Village) 전략으로 복음이 전해진 마을에 맞게 예배당을 건축한다. 교회 이름 앞에는 마을이름이 붙어 있다. 뚜올살라 마을과 스떵쯔러우 마을 그리고 뚠래찌윗 마을 3곳에 그리스도열매교회가 있
2017-06-23 00:00
[역경의 열매] 김종식 <4> 한국에서 캄보디아까지 하나님의 치유는 계속되고 있다
캄보디아는 4월 건기 때 기온이 43도까지 치솟는다. 뜨거운 날씨만큼 풍토병도 많다. 요한계시록에는 사탄 마귀의 형상이 ‘머리가 일곱 개 달린 뱀’으로 기록돼 있다. 캄보디아에서는 '그 뱀'이 조상신이며 부처의 수호신으로 절마다
2017-06-22 00:00
[역경의 열매] 김종식 <3> 선교사 허입을 앞두고 오른쪽 폐, 위장, 대장을 치유하신 하나님 은혜
나는 48세에 선교사로 소명을 받고 55세까지 7년간의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금세 선교지로 나갈 줄 알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캄보디아의 풍토 속에서 잘 견뎌낼 수 있을지 건강에 확신이 없었다. 그때 하나
2017-06-21 00:01
[역경의 열매] 김종식 <2> "아빠, 하나님이 하셨어요" 중국 보낸 딸을 통한 순종훈련…하나님이 책임진다
나는 선교사로 소명을 받고 7년간의 훈련을 받았다. 똑같은 기간 동안 중국에서는 둘째 딸이 현지 고등학교를 거쳐 베이징사범대학을 졸업했다. 나와 아내는 그 기간 동안 한 번도 중국엘 못 가봤다. 오직 순종. 하나님께 모든 걸 맡기
2017-06-20 00:00
[역경의 열매] 김종식 <1> 절에서 장모님 49재…“하나님의 부르심 체험”
나는 올해 64세다. 오래전에 출가해 승려가 된 할아버지에 이어 4촌 형님도 승려고, 6촌 여동생은 비구니다. 나 역시 그 길 위에 있다가 48세에 회심해 지금은 소명을 받고 캄보디아 선교사로 8년째 사역 중이다. 파송교회 안식년 선교
2017-06-19 00:03
[역경의 열매] 김진숙 <15·끝> 내 삶은 소나기처럼 부어주신 축복에 대한 고백
내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다시 미국으로 삶의 장을 옮겼다. 역경의 열매를 위해 내 인생을 다시 여행했다. 마음의 거리로 따지면 1만 마일도 넘는 세상을 되돌아온 것 같다. 다행히 지난 일과 감정이 머릿속에 차곡
2017-06-16 00:02
[역경의 열매] 김진숙 <14> ‘홈리스 근절’ 美 순회 설교… 71세에 박사 학위 따
막달라마리아교회 은퇴를 결심하고 이사회에 통고했다. 이사회가 마련한 송별회에서 놀라운 선물을 받았다. 홈리스 여성들로 가득한 배를 내가 물 위에서 끌고 가는 모습을 그린 삽화였다. 내 사역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에 지금껏 내 로
2017-06-15 00:04
[역경의 열매] 김진숙 <13> 여성 홈리스들에 속옷 지급… ‘속옷 교회’로 이름나
미련한 나는 계시의 의미가 홈리스와 여성 목회를 하라는 비전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십자가를 심는 사역이란 교회 벽에 나무 십자가를 걸어만 두는 게 아니라 생동하는 십자가를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 속에 심으라는 뜻이었다. 여성 홈
2017-06-14 00:09
[역경의 열매] 김진숙 <12> 아들 잃고 미친 듯이 성경 읽어… 영적인 눈 뜨여
큰아들 형수를 잃고 시애틀로 이사했을 때 하나님은 내 영안(靈眼)을 열어주셨다. 난 밤낮으로 미친 듯이 성경을 읽었다. 성경을 몇 번이나 통독했는지 모른다. 남편을 따라 낚시를 가서도 찌를 보지 않았다. 해가 지고 글이 안 보일 때
2017-06-13 00:00
[역경의 열매] 김진숙 <11> 맏아들 사고로 잃고 매일 통곡하며 1년여 방황
맏이 형수는 공부를 잘했다. 학교에서 별명이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었다. 형수는 1976년 8학년(중학교) 졸업할 때 백인 학교에서 1등을 했다. 학교에서는 동양인에게 1등상을 주기 싫었는지 모의고사를 두 번이나 봤다. 형수가 두
2017-06-12 00:04
[역경의 열매] 김진숙 <10> 잠겨 있는 옥문 열리듯… 주립시설 취업길 열려
입원해 종합검사를 받았다. 의사들은 신경쇠약 외에도 담낭(쓸개)에 돌이 가득 찼다고 했다. 지난 10년간 매일 밤 날 괴롭혔던 가슴앓이의 원인이었다. 가슴을 째고 쓸개를 뗐다. 가슴앓이가 사라지니 새 인생을 찾은 것 같았다. 하나님
2017-06-09 00:02
[역경의 열매] 김진숙 <9> 美서 보조 복지사로 첫발… 직장·집 한번에 해결
1971년 5월 자원봉사 기간이 끝나자 곧장 ‘굿 사마리탄 홈’으로 갔다. 미시시피 강 언덕에 있는 아름다운 건축물이었다. 그곳에서 내게 침실 두 개에 가구가 딸린 직원 아파트를 제공했다. 아침과 점심은 물론 월급으로 200달러를 줬
2017-06-08 00:02
[역경의 열매] 김진숙 <8> ‘英語의 바다’로 넣으신 주님… 美 사역 디딤돌 돼
독일과 일본, 한국, 미국 등에서 필라델피아로 모인 자원봉사자는 나를 포함해 열한 명이었다. 우리는 한 달 간 저소득층 지역과 흑인 빈민촌, 고아원 등을 방문하며 교육을 받았다. 자원봉사자들은 열정적이었다. 백인 교회와 흑인 교
2017-06-07 00:00
[역경의 열매] 김진숙 <7> 수렁 같은 삶에 지쳐… 다시 미국 보내달라 기도
삶은 여전히 수렁이었다. 아버지의 폭력과 월남, 한국전쟁과 가난 속에서 나는 언제나 살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고통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처절한 상황에서 내가 찾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었다. 나는 울지 않는 사람이었
2017-06-06 00:00
[역경의 열매] 김진숙 <6> 한신대 처음으로 여학생 1등 졸업 영광 안아
서러운 부산 피란살이 도중 부산 영도에 이화여고가 텐트를 치고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난 이화여중 3학년으로 복귀했다.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몰렸다. 우리 반은 120명이 됐다. 영어를 가르쳤던 이봉국 선생이 얼마나 혹독하게
2017-06-05 00:03
[역경의 열매] 김진숙 <5> 열다섯살에 전쟁 통 200리 길 오가며 가족 부양
인민군에게 잡혔던 작은오빠는 화장실에 간다고 둘러대고 도망쳤다. 우리 식구는 곧장 서울을 떠나 큰오빠 친구가 사는 경기도 구둔이라는 곳으로 갔다. 작은오빠는 그 집 부엌에 토굴을 파고 3개월을 숨어 살았다. 영어사전 하나로 그
2017-06-02 00:00
[역경의 열매] 김진숙 <4> 가난으로 어렵게 다니던 中2 때 한국전쟁 터져
서울에서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춥고 배고프고 고달팠다. 어머니는 회현동의 한 호텔에서 빨래 일을 했고 큰오빠는 그 호텔에서 통역관으로 일했다. 우리 식구는 만두를 쪄 길거리에서 팔기도 했다. 근근이 입에 풀칠하는 수준이었
2017-06-01 00:00
[역경의 열매] 김진숙 <3> 11살때 작은오빠와 공산군 피해 산길 걸어 월남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함경남도 함주군 선덕면에서 살았다. 아름다운 곳이었고 집안 소유 과수원이 있었다. 해방이 되자 소련 군인들이 과수원에 심심치 않게 나타났다. 그들이 올 때마다 나는 올케 언니를 방 안에 숨겨놓고 몇
2017-05-3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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