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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최상민 <8> 발전용 엔진 폭발… “왜 이런 시련을” 눈물의 기도
“최 사장, 발전기가 멈췄어요.” “알겠습니다. 곧바로 달려가겠습니다.” 내가 달려가면 무슨 일이 있어도 고객과 약속한 시간 안에 발전기를 재가동시켰다. “신기하네. 우리 기술자도 못하는 작업을 어떻게 그렇게 잘해요?” “한국
2017-08-18 00:00
[역경의 열매] 최상민 <7> 헌신 시험한 하나님… 세 번의 테스트에 모두 순종
“부품공급업은 또 뭐죠. 제가 도와드려야 하는 건가요?” 그제야 현대중공업이 월급도 안 주면서 수시로 호출했던 이유를 알게 됐다. 현지에서 부품공급권을 주는 것은 일종의 특혜였다. 발전설비는 사실상 독점 공급이었다. 엔진을 한
2017-08-17 00:02
[역경의 열매] 최상민 <6> 현대重 발전기 판매영업 맡으며 사업 첫발
2001년 후반부터 도미니카공화국에 출장 온 현대중공업 엔진기계 영업부장의 통역을 맡았다. 자연스레 발전소용 발전기 판매영업 에이전트 생활이 시작됐다. 설명서를 보니 발전기 1기당 100만 달러였다. 돈 단위가 확실히 달랐다.
2017-08-16 00:00
[역경의 열매] 최상민 <5> “무역 좀 가르쳐 주세요” 코트라 찾아가 무보수로 일해
1999년 어머니는 내가 뉴욕시립대 졸업을 1년 앞두고 자퇴를 했다는 말에 크게 실망을 하셨다. 어머니는 늘 “우리는 못살아도 너희는 잘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당부했던 어머니께 졸업장은 고사하고 대학 중퇴라는 안 좋
2017-08-15 00:04
[역경의 열매] 최상민 <4> 동양인으로 美 주류사회 벽 느껴 대학 자퇴
1996년 9월 나는 뉴욕시립대에 입학하고 아르바이트 자리부터 찾았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 고된 식당일을 하시는 부모님 짐을 덜어드리기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 했다. 매주 450달러를 받아 저축했다. 98년 6월 한국인 교수님의 제안에
2017-08-14 00:00
[역경의 열매] 최상민 <3> 美 고교 유학 중 축구선수… “영어 안 되니 부주장 해라”
‘그래, 내가 음식 서빙하려고 한국을 떠나 이곳까지 온 게 아니지.’ 지금은 공부에 집중할 때라는 손님의 지적처럼 어머니를 도와준다고 해서 도와드리는 건 아니었다. 도미니카공화국에 머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2017-08-11 00:00
[역경의 열매] 최상민 <2> 아버지 따라 이민… 말 안 통해 왕따 신세
경기도 남양주시 동화고등학교에 진학해 전교에서 10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에 제법 흥미를 느꼈다. 동화고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2년의 일이다. 도미니카공화국에 있던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왔다. “상민아, 도미니카공화국으로 한번
2017-08-10 00:00
[역경의 열매] 최상민 <1> 가난한 미싱사 아들이 아이티 최대 발전운영사 일궈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아이티 북부 카라콜에 있는 아이티직업학교를 갈 때마다 가슴이 뛴다. 300여명이 재학 중인 이 학교는 컴퓨터 등을 가르치는 데, 첫 졸업생 15명 중 2명이 한국계 의류제조사인 세아상역에 취업했다. 2010년
2017-08-09 00:00
[역경의 열매] 케네스 배 <15·끝> 북한 향한 주님 마음은 탕자 기다리는 애통함일 것
2014년 11월 8일, 억류된 지 735일 만에 마침내 북한을 떠났다. 북한 억류에서 풀려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나는 북한에서의 억류 기간을 ‘놀라운 2년’이라고 표현했다. 왜냐하면 2년여 동안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를 경험했고 북한
2017-08-08 00:00
[역경의 열매] 케네스 배 <14> 각국서 “함께 기도합니다” 편지 300여통… 큰 위로
“아무도 당신을 신경 쓰지 않아. 아무도 당신을 기억하지 않아. 당신은 집에 돌아갈 수 없어.” 나를 심문했던 검사는 늘 희망을 꺾는 말을 했다. 마음을 잡기 위해 전 세계에서 날아온 300통 이상의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2017-08-07 00:00
[역경의 열매] 케네스 배 <13> 억류 2년 다가오자 낙심과 분노가…
어머니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 날 평양의 유명식당 옥류관에서 냉면을 사다 주셨다. 병원 직원과 간수들까지 먹을 수 있도록 넉넉하게 사와 나눠주셨다. 어머니는 북한 관리들에게 화를 내는 대신 친절을 베푸셨다. 어머니의 행동은
2017-08-04 00:08
[역경의 열매] 케네스 배 <12> “아들아, 주가 너를 구하지 아니할지라도 감사하자”
병원에 온 지 한 달 쯤 지났을 때 리철 검사가 찾아왔다. 그는 북한에 억류돼 있는 동안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준 유일한 북한 관리였다. “준비해. 당신을 보러 오는 사람이 있어.” 훤칠하게 생긴 미국인 두 명이 들어왔다. “백악관에
2017-08-03 00:00
[역경의 열매] 케네스 배 <11> 노동하며 찬송… 간수 “죄수가 행복한가” 겁박
노동교화소에서 매주 6일 동안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노동을 했다. 노동을 안 하던 사람이 농사나 땅 파기, 돌 나르기, 석탄가루 만들기 등등의 중노동을 했다. 아침·저녁으로는 현미밥, 국, 나물 몇 가지가 나왔고, 점심은 밥 대
2017-08-02 00:05
[역경의 열매] 케네스 배 <10> “反공화국 쿠데타 계획, 15년 형 선고한다”
2013년 2월 12일, 북한이 핵실험에 성공하면서 나의 소망은 산산이 부서졌다. 북한의 세 번째 핵실험이었다. 유엔은 북한의 핵실험을 비난하면서 많은 제재를 가했다. 뉴스에선 미국과의 전쟁이 임박한 것처럼 보도했고 사람들은 그렇게
2017-08-01 00:00
[역경의 열매] 케네스 배 <9> “요동치 않겠습니다” 기도로 불안 이겨내
2012년 12월 중순부터 2013년 4월말까지 4개월 반 동안의 예심은 북한 검찰의 사전심의 절차를 밟는 기간이었다. 검사 질문에 답변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매일 오후 5시부터 밤 10시30분 방송이 끝날 때까지 TV 시청을 해야 했다.
2017-07-31 00:01
[역경의 열매] 케네스 배 <8> 하루 15시간씩 4주 심문… 北 억지 논리에 자포자기
“당신이 소속된 YWAM의 창립자 로렌 커닝햄 위에 오바마 대통령이 있지? 바로 오바마가 이 나라를 위협하고 전복시키려고 당신을 보낸 자야. 당신은 사실상 CIA를 위해 일하는 거겠지. 오바마와 CIA가 이 일의 배후야.” 너무도
2017-07-28 00:00
[역경의 열매] 케네스 배 <7> “공화국 헌법 60조를 어긴 죄, 당신은 사형이야”
그들은 내가 국가전복 음모를 꾀했다고 했다. “어떻게 선교사인 내가 국가전복 음모를 꾀했을 수 있었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기도와 예배를 통해 우리 체제를 전복하려 했다”고 했다. 나는 “아니, 하나님도 안 믿으시는
2017-07-27 00:00
[역경의 열매] 케네스 배 <6> 北 심문 앞두고 “주님, 어디 계신가요” 기도 매달려
부장으로 불리는 사내는 내일부터 심문이 시작될 거라고 했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춥기도 했지만 중국인 비서 스트림과 내가 인솔해 온 4명의 관광객들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나의 어리석은 실수 때문에 여기 갇혀 있진 않을까.’
2017-07-26 00:00
[역경의 열매] 케네스 배 <5> 실수로 北에 가져간 외장하드엔 각종 선교자료가…
2009년 운영본부를 중국 다롄에서 단둥으로 옮겼다. 다롄에서 기적적으로 선교훈련 장소를 마련해 주신 하나님은 단둥에서 훨씬 더 큰 기적을 보여주셨다. 이번엔 집이 아니라 아예 호텔 전체를 DTS (Discipleship Training School : 예
2017-07-25 00:01
[역경의 열매] 케네스 배 <4> 中 다롄에 ‘J하우스 사역센터’ 열고 선교
2006년 내가 중국 다롄에 도착해 처음 한 일은 팀원들과 ‘J하우스 사역센터’를 여는 것이었다. J는 예수님(Jesus)을 의미한다. J하우스는 다양한 아웃리치팀이 정부의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마음껏 머물면서 예배하고 기도할 수
2017-07-24 00:04
[역경의 열매] 케네스 배 <3> 압록강서 뱃머리 북한 땅 쪽 대니 총든 군인 나와
2005년 미국 하와이 코나에서 YWAM사역을 시작했다. 그해 11월 한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L선교사를 만나기 위해 중국 단둥으로 갔다. 그곳에서 한 달 전 방문비자로 단둥에 온 한 북한 여인을 만났다. 그녀는 L선교사를 통해 예수님을
2017-07-21 00:05
[역경의 열매] 케네스 배 <2> “주님, 제가 중국에 가겠습니다” 서원 까맣게 잊어
내가 열여섯 살이던 1985년, 부모님은 나와 여동생의 교육을 위해 미국 이민을 선택하셨다. 그런데 우리 가족이 이민을 준비할 무렵 아버지는 프로야구 빙그레 이글스 창단 감독 제의를 받으셨다. 아버지는 미국에 온지 2주 만에 한국으
2017-07-20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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