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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손인웅 <13> 장신대 첫눈에 원칙 없어 보여 저항의식 꿈틀
서울 생활이 시작됐다. 낯선 도시였다. 늘 부모님 생각이 났다.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근면 성실하고 정직하게 사신 분들이었다. 그런 부모님의 성품이 신앙생활과 결합됐다. 늘 나를 돌아보는 삶을 살았고 부끄럽지 않으려 노력했다. 교
2018-11-12 00:00
[역경의 열매] 손인웅 <12> 아버지 또 소 팔아 신학교 등록금 주셔 눈물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대구에서만 살던 사람이 서울 생활을 시작하려니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입학시험을 보고나니 설렘보다 걱정이 커졌다. 당장 등록금이 없었다. 가정교사를 하면서 모아둔 돈이 있긴 했다. 하지만 선
2018-11-09 00:01
[역경의 열매] 손인웅 <5> 고교 입학 후 2년 넘도록 신문배달로 학비 벌어
내가 다녔던 대구서고등학교는 지금은 사라졌다. 당시에도 명문 고등학교는 아니었다. 단지 학비가 쌌다. 이 학교로 진학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큰 결단을 한 일이 있었다. 1956년 11월로 기억된다.
2018-10-31 00:01
[역경의 열매] 손인웅 <4> ‘노는 아이들’과 어울리자 신앙 친구들이 기도로 붙잡아
지게를 때려 부수고 가출한 것만 생각하면 오싹하다. 대구에서 중학교를 다닌 매 순간이 감사함으로 가득했다. 공부도 재미있었다. 기적과도 같은 순간을 살고 있다고 항상 생각했다. 하지만 감사함과 동시에 외로움도 커졌다. 어린 중
2018-10-30 00:06
[역경의 열매] 손인웅 <3> “중학교 못 보낸다” 부모님 말에 지게 부수고 가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결국 대구에서의 삶이 시작됐지만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지게를 부수고 가출했던 혁명적 사건이 인생의 변곡점이 됐다. 1954년 효령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부모님은 고민에 빠지셨다. 어려운 형편에 자식들
2018-10-29 00:01
[역경의 열매] 손인웅 <2> 한국전쟁 때 피난 가서도 교회 폭격 맞을까 걱정
주님은 어느 곳에서도 역사하신다. 우연히 찾아온 교회 종소리가 그랬다. 그건 주님이 내게 주신 ‘자연계시’였다. 강력한 계기로 주님을 만났지만 아버지 앞에만 서면 작아졌다. 어머니는 내가 교회에 다니는 걸 아셨다. “인웅
2018-10-26 00:07
[역경의 열매] 손인웅 <1> 유교 전통 엄격했던 고향서 싹튼 신앙
일생 목사로 살았다. 교인들을 목양하는 틈틈이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일’을 위해 힘썼다. 갈라진 교회를 하나로 묶기 위해 눈물의 기도를 했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2012년 전도사 때부터 42년 동안 섬기던
2018-10-25 00:01
[역경의 열매] 김선도 <34> 43년 목회 마무리 앞두고 리더십 승계 문제 고심
나의 43년 목회활동은 공식적으로 2001년 4월 은퇴함으로써 마무리됐다. 리더십 승계 문제가 가장 크게 다가왔다. 승계란 선임 목회자의 업적이나 전통, 유산을 물려받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목회와 신학, 전통의 연속성이 선임자로
2018-09-20 00:00
[역경의 열매] 김선도 <29> 아픔 간직한 대중 위한 설교에 전념
예상대로 허허벌판이었던 서울 강남구 신사동 일대에 엄청난 인구가 유입됐다. 사람들은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예배가 끝나면 수백 명의 성도가 전도를 위해 퍼져 나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도의 열매가 쌍림동보
2018-09-13 00:01
[역경의 열매] 김선도 <27> 신축 건물 규제로 위기… 새벽마다 “성전 건축” 외쳐
서울 쌍림동 교회 매각대금은 신사동 땅값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1976년부터 부흥회를 다니면서 받은 사례비와 적금을 보태 겨우 땅값을 마련했다. 교회가 구입한 1200평 중 550평을 팠다. 그런데 정부에서 예기치 못한 결정을 발
2018-09-11 00:00
[역경의 열매] 김선도 <21> 부대 옆 작은교회 재건에 넉 달 월급 쏟아부어
내가 군목으로 있던 대전 공군교육기술단 뒤엔 작은 교회가 있었다. 철조망 너머 흙벽돌 건물이었는데 십자가만 없다면 영락없는 상여막이었다. 26㎡(8평)나 될까 싶었다. ‘교회인 것 같은데 예배는 드리는지, 성도들은 있기나 한
2018-09-03 00:01
[역경의 열매] 김선도 <20> 명절 땐 커피·과자 들고 보초병 찾아가 격려
명절 때면 사병들을 찾아갔다. “군무 중 이상 없음!” 새벽 2시쯤 군용 지프차량에 과자 봉지를 싣고 보초병을 찾아가면 보초병은 주번 사관이 오는 줄 알고 깜짝 놀라 경례했다. “집 생각나지요? 부모님 보고 싶지요?” “네, 그
2018-08-31 00:01
[역경의 열매] 김선도 <19> 고된 훈련 장병들, 기도해주자 감동·눈물…
나는 항공병학교에서 신병들과 같이 뛰었다. 야간 구보, 산악 훈련까지 거의 빠지지 않고 완전무장을 하고 쫓아다녔다. 한번은 한밤중에 장교 후보생들과 구보 훈련을 했다. 유성까지 M1 소총을 들고 뛰었다. 그리고 취침 시간에 이런
2018-08-30 00:00
[역경의 열매] 김선도 <18> “군대는 선교 어장” 권유 받고 공군 군목 지원
1962년 홍현설 학장님 댁에 세배를 갔을 때였다. 나는 전농감리교회 사정과 그간의 열매를 보고하면서 청년 목회에 깊은 관심이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때 홍 학장님의 사모님이 이런 제안을 하셨다. “김 목사님, 군대야말로 선교
2018-08-29 00:00
[역경의 열매] 김선도 <17> 궁핍한 살림에 아내는 결혼반지 팔아 끼니 챙겨
1960년 4월 우리 부부는 홍현설 감리교신학대 학장님을 주례로 서울 아현감리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전농감리교회의 15평 남짓한 목사관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그때부터 아내의 고생이 시작됐다. 아내는 그 어려운 왜정 말엽에도 유
2018-08-28 00:01
[역경의 열매] 김선도 <16> “내가 말한 처녀와 결혼 안 하면 내 아들 아니다”
새벽기도마다 참석했다는 그 처녀는 서울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간호사로 일했던 자매였다. 관인중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 당분간 삼촌 집에 와 있다고 했다. 사실 전농감리교회의 두 가정에서 이미 나를 사윗감으로 정
2018-08-27 00:00
[역경의 열매] 김선도 <15> 총각 신학생, 전농감리교회 담임으로 첫 목회
함장은 치고 들어오는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는 쌍안경을 목에 걸고 어둠까지 집어삼킬 듯한 파도를 똑바로 응시하면서 외쳤다. “Straight away! Straight away!(지체하지 말고 전진하라!)” 그 소리에
2018-08-24 00:01
[역경의 열매] 김선도 <13> “감리교 신학에서 길을 찾겠다” 신학대 입학
예배당 봉헌예배를 드릴 때 매슈 리지웨이 유엔군 사령관과 기독교대한감리회 7대 감독인 류형기 목사님이 함께했다. 그때 내게 불타는 서원이 일어났다. “하나님, 일평생 하나님의 집을 짓는 종이 되겠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성전
2018-08-22 00:01
[역경의 열매] 김선도 <12> 미군 교회 군목 도움 받아 1년 만에 예배당 건축
“어떻게요. 안 그래도 온 나라가 전쟁복구로 난리인데 어디서 교회건축에 필요한 자재를 구한다는 말입니까.” “목사님, 해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한번 뛰어 보겠습니다.” 순식간에 가슴에서 치고 올라온 말이었다. 그렇다
2018-08-21 00:00
[역경의 열매] 김선도 <11> 아홉 식구 모두 모여 눈물의 가정예배
“부모님은 어디 계시냐.” “곧 오실 거예요.” 2층에 올라갔다. 잠시 후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너무도 그리웠던 발소리, 너무나 잘 알고 있던 두 분의 발소리…. 자다가도 부모님 발소리가 들리면 깨어 달려 나가지 않았
2018-08-20 00:01
[역경의 열매] 김선도 <10> “너희 가족 다 군산에 피난 와 있다” 꿈같은 소식
정든 상리장로교회 교인들과 시골 학교 교사, 학생들과 아쉬운 작별을 할 시간이 됐다. 예고된 이별이었다. 주민들은 이미 내가 떠날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산에 내려가겠습니다. 그곳에 피난민을 위한 임시수용소도 있
2018-08-17 00:00
[역경의 열매] 김선도 <9> 교회 활동으로 유명인 됐지만 가족 그리움 사무쳐
경남 고성 상리장로교회에는 어린 학생들이 많았다. 내가 할 일이 확실하게 보였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야학을 열자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은 뒤라 사람들의 마음속엔 배움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2018-08-1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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