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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최일도 <11> “하나님께 먼저 묻고…” 고민하는 나를 다독인 아내
그녀는 우리 집 근처에 작은 방 하나를 마련했고 나는 오랫동안 미뤄놨던 책을 다시 잡았다. 목회를 한다면 중도에 포기한 신학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할지, 인문학 공부부터 할지 생각이 복잡했는데 그녀는 하나님의 계획을 먼저 묻고
2017-12-15 00:00
[역경의 열매] 최일도 <10> 죽기 위해 찾은 섬에서 유서처럼 쓴 戀詩
목포에서 ‘옥소’라는 낡은 배를 타고 4시간30분 거리에 있는 섬 가사도로 향했다. 스물넷의 생을 마감하기 전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선실에 막 들어가려는데 누군가 아는 체를 했다. 전에 서울 오류동 동산교회와 자매결연을
2017-12-14 00:00
[역경의 열매] 최일도 <9> 수녀원 떠난 그녀… 백방으로 수소문
매일 새벽기도와 말씀 묵상으로 일기를 쓰며 그녀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계속 써내려가다 1980년 11월 어느 날 수녀원으로 전화를 걸었을 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말았다. 그녀가 교사직을 그만 뒀고 수녀원을 떠났다는 것
2017-12-13 00:00
[역경의 열매] 최일도 <8> 퇴원 직후 김 수녀 찾아 ‘수선화’ 노래로 마음 전해
사람과의 관계가 하나둘 끊어지면서 미래의 길도 점차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다. 음식을 먹지도, 잠을 이루지도 못했고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자꾸 헛구
2017-12-12 00:00
[역경의 열매] 최일도 <7> “수도자보다 목회자로 부름 받으신 분 같아요”
김연수 시인 수녀를 향한 내 사랑을 지속적으로 간직하기 위해서는 항상 수녀로만 대해야 한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녀가 선택한 수도의 삶을 존중하고 나 역시 한 사람의 수도사로 살아야겠다고 결단했다. “이미 하나님께 바쳐진
2017-12-11 00:00
[역경의 열매] 최일도 <6> 베델성서 연구모임서 수녀였던 아내와 첫 만남
갑자기 별세하신 아버지가 주일성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을 받아 지옥에 갔다는 전도사의 발언은 참으로 긴긴 세월 상처로 남았다. “더 이상 그런 교회는 나갈 필요가 없다”고 말하자 교인들은 위로는 못할망정 “아버지가 돌아가
2017-12-08 00:01
[역경의 열매] 최일도 <5> “훌륭한 목사님 돼라 했건만 어째 거지들 밥만 먹이나”
어머니는 오로지 기도와 전도에 목숨을 건 분이셨다. 오직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보수적 신앙의 아름다움을 물려주셨다.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공언한 아들이 아버지 별세 이후 교회에 나가지 않고 방황하는 모습에 많이 놀라고 눈
2017-12-07 00:00
[역경의 열매] 최일도 <4> “아버지 없는 천당엔 나도 안 가요” 교회 발 끊어
아버지는 내가 중3 때 돌아가셨다. 병을 오래 앓으신 것도 아니고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충격은 더 컸다. 나는 과외 열풍에 시달린 세대다. 명문 중학교에 가기 위해 초등학교 4∼6학년 때 혹독하게 과외수업을 받았다. 하
2017-12-06 00:01
[역경의 열매] 최일도 <3> “더럽게 춥네” 했다가 “추운 맛 봐라” 부친께 혼쭐
6·25 전쟁이 끝난 후 아버지는 뜻밖에도 섬유 노조의 초대 사무총장으로 일하셨다. 전쟁 당시 대북 첩보 임무를 맡았던 켈로(KLO, Korean Liaison Office) 부대 대대장으로 활약하셨던 분이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선봉에 섰다는 것이
2017-12-05 00:01
[역경의 열매] 최일도 <2> “태중에 하나님께 바쳤다”… 진보·보수 두 신앙의 합작품
나는 서울 영등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집 근처 둑에서 강 건너 보이는 마포 나루터와 여의도, 밤섬에서 뛰어 놀았다. 지금도 눈 감으면 넘실거리는 푸른 강물과 인천에서 마포까지 새우젓을 나르던 황포돛대배가 떠오른다. 부모
2017-12-04 00:01
[역경의 열매] 최일도 <1> 소외 이웃에 29년째 식사 제공… 1000만 그릇 넘어서
‘밥퍼’라는 이름으로 소외된 형제자매들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한 지 만 29년째. 굶주린 이들의 허기를 채워준 식사는 지난 5월로 1000만 그릇을 넘어섰다. 1988년 11월 11일 서울 청량리역 광장에 쓰러져 있던 노숙인 할아버지를
2017-12-01 00:01
[역경의 열매] 이재훈 <17·끝> 12년째 매년 100일 오지 생활… 오늘도 떠납니다
어느 날 한 13세 소녀가 많이 아파서 1000아리(약 350원)를 갖고 혼자 7㎞를 걸어왔다. 검사를 해보니 말라리아에 감염됐다. ‘이런 몸으로 먼 길을 홀로 왔다니.’ 수액 주사와 약을 처방하려 했더니 혼자 침대에서 주사를 맞는 게 겁
2017-11-30 00:00
[역경의 열매] 이재훈 <16> 무당에게 성경 건네자 사시나무 떨듯 손 떨어
“당신이 무당인데 기도로 치료하지 않으면 어떻게 치료하겠습니까?” 아이의 아버지는 오히려 내게 되물었다. 아이가 3년 동안 이 병을 앓고 있었는데 주변의 용하다는 무당을 다 찾아다니며 치료를 받았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
2017-11-29 00:01
[역경의 열매] 이재훈 <15> “당신 무당 아닙니까? 기도로 낫게 해보시오”
마다가스카르에는 마을마다 그 마을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빠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무당’이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이들은 마을의 가장 지혜로운 어른으로 칭송받으며 개인의 고민이나 집안 문제에 대해서도 답을 주곤 한
2017-11-28 00:00
[역경의 열매] 이재훈 <14> 혀 종양 어린이 포기할 수 없어 한국 보내 수술
2011년 ‘희망TV SBS’를 촬영하던 때다. 벤분드루(Benvondro) 지역으로 이동진료를 갔다. 마을에서 만난 한 아이가 열병에 걸려 치료를 해주고 있었다. 함께 촬영을 갔던 배우 이필모씨가 근처 마을에서 마나이를 보고 놀라서 데리고
2017-11-27 00:00
[역경의 열매] 이재훈 <13> 의사 만나기가 별따기… 이동진료 확대가 해법
이동진료사업은 외부 지원이 없으면 지속 불가능하다. 진료 대상은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오지지역 주민들. 그들이 의약품과 진료비를 감당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모든 것이 무료로 진행돼야 한다. 우리 역시 현지에서 사역하며 많
2017-11-24 00:00
[역경의 열매] 이재훈 <12> 갑자기 끊긴 후원… 귀국할 항공료도 없어
우리 부부는 2003년 한 교회의 50주년 기념 파송선교사로 마다가스카르에 갔다. 교회는 당시 후원 모집에 몹시 서툴렀던 우리에게 사역에 필요한 전액을 후원해줬다. 그 후원으로 마다가스카르에 많은 열매가 열렸다. 그렇게 5년 정도
2017-11-23 00:00
[역경의 열매] 이재훈 <11> 오지 찾아 야외 수술로 ‘부시맨 닥터’ 별명
마다가스카르 이토시병원에서 일할 당시 내가 제시했던 조건이 하나 있었다. 한 달에 1주일은 병원에 나오지 않는다는 거였다. 다름 아닌 이동진료를 위해서였다. 2006년 말부터 병원에 나가지 않은 1주일간 수도 안타나나리보 근교부터
2017-11-22 00:00
[역경의 열매] 이재훈 <10> 지루한 의대 공부에 비해 신학은 놀이처럼 재미
아프리카오지선교회(AIM)를 통해 마다가스카르에 파송받기 위해 영국에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언어를 배우라고 해서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본부에서 자꾸 물어왔다. 장기로 갈 건지, 단기로 갈 건지. 당연히 내 대답은 장기
2017-11-21 00:01
[역경의 열매] 이재훈 <9> “지금 수술 안하면 환자 사망” 경고하자 수술 떠넘겨
응급 수술을 해야 할 환자를 내팽개치고 퇴근을 하려 하다니. 한국 같았으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내게 맡긴 것은 수술이 아닌 ‘옵저베이션(관찰)’이었다.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당직 의사
2017-11-20 00:01
[역경의 열매] 이재훈 <8> 르완다 병원장 “방해하지 말고 구경이나 잘하게”
나는 빠릿빠릿한 편은 아니었지만 고집스럽게 꾸준한 면은 있었다. 레지던트 시절, 동료들로부터 “재훈이는 로봇인가 봐”라는 얘길 듣곤 했다. 쉽진 않았다. 그래도 그때 나는 늘 ‘힘들어서 쓰러져 죽어도 좋다. 쓰러지기 전까지는
2017-11-17 00:00
[역경의 열매] 이재훈 <7> 갖은 환자 진료… 공중보건의 경험이 의료선교 큰 도움
박카스를 들고 온 남자가 말했다. “이재훈 선생님 되십니까?” “예, 제가 이재훈입니다.” “선생님께서 돌봐주시던 위암 말기 환자 기억하시지요. 제가 그분의 아들입니다.” 그는 위암 말기로 수술도 포기하고 죽음만
2017-11-1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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