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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이승율 <14> 북한에도 과기대 설립… 카이스트 모델로 추진
옌볜과기대는 북한에 가기 위한 중간 거점이었다. 다음 단계는 당연히 북한에 과학기술대학을 세우는 것이었다. 김진경 총장의 뜻을 따라 나 역시 같은 목표를 가졌다. 옌볜과기대를 개교한 그다음 해인 1993년 기회가 왔다. 김일성
2018-07-05 00:01
[역경의 열매] 이승율 <13> ‘기적의 동산’ 옌볜과기대, 명문대로 우뚝
1992년 9월 16일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의 주도 옌지시에 2년제 옌볜조선족기술전문대학이 문을 열었다. 이듬해 4년제로 승격하면서 교명은 옌볜과학기술대학(YUST)으로 바뀌었다. 옌볜자치주는 일제강점기 조국을 떠난 우국
2018-07-04 00:01
[역경의 열매] 이승율 <12> 인생 의미 깨닫게 해 준 김진경 총장과의 만남
이런 것을 신의 섭리라고 하는 걸까. 나는 이제껏 만나보지 못한 이상한(?) 크리스천 지도자를 한 분 만났다.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첫해인 1990년 10월 초 베이징아시안게임 기간이었다.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 골프장 사업을 하기 위
2018-07-03 00:01
[역경의 열매] 이승율 <11> “땅을 정복하라”… ‘CBMC 선교 실크로드’ 완성
1992년 6월 대전 유성에서 우연히 만나 골프를 친 멤버들의 초대를 받아 한국기독실업인회(CBMC) 행사에 갔다. 그 자리에서 서울 압구정동 골프연습장에서 평소 마주치던 양익환 CBMC 서울영동지회 부회장을 만났다. 양 부회장은 그 후
2018-07-02 00:01
[역경의 열매] 이승율 <10> 질병 치유 기적에 이어 큰 교통사고에도 멀쩡
교회에 출석한 지 2년째 되던 해 나와 아내는 몸 안에 자란 치명적인 질병을 발견해 치유했는가 하면 고속도로에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는데도 멀쩡한, 기이한 사건을 체험했다. 1991년 7월 교회 성도 6가족이 이스라엘 성지순례
2018-06-29 00:01
[역경의 열매] 이승율 <9> 하나님 우선하니 청와대 공사 수주 등 사업 훨훨
1993년 3월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청와대 옆 궁정동 안전가옥(안가) 5채를 철거하고 그곳에 공원을 조성하라고 지시했다. 그곳은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곳이기도 했다. 새 대통령의 첫 지시이다 보니
2018-06-28 00:00
[역경의 열매] 이승율 <8> 조용기 목사 해외성회 수행… 글로벌 선교 눈떠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입교하면서 아내가 봉사하고 있던 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에 가입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잘한 선택이었다. 이 단체는 조용기 목사의 해외선교를 지원하고 현지에서 봉사하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연합회에서 나의
2018-06-27 00:00
[역경의 열매] 이승율 <7> “집안 전도 금지” 약속한 아내, 꾸준히 집안 구원 기도
아내는 나와 결혼할 때 시부모에게 ‘집안 전도 금지’라는 약속을 해야 했다. 하지만 결혼 후 하루도 빠짐없이 하던 기도 제목은 집안 구원이었다. 나는 경기도 파주 오산리기도원에 다녀온 뒤 바로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출석했다.
2018-06-26 00:00
[역경의 열매] 이승율 <6> ‘아내의 기도’ 25년 만에 새 피조물로 거듭나
나는 마흔셋이 돼서야 교회에 나갔다. 고1 때 만난 아내가 25년 기도한 가운데 아이들의 금식기도가 나를 인도했다. 1989년 12월 중순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갔더니 세 아이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큰아들 동엽이 중3, 둘째 동헌이
2018-06-25 00:01
[역경의 열매] 이승율 <5> 전공 불교철학에 회의… 세속적 성공에 몰두
결혼해서 첫아이를 낳고 난 이듬해인 1975년에서야 나는 비로소 대학생이 됐다. 동국대 불교대학 철학과에 입학했다. 내가 불교철학을 선택한 것은 탄허(1913∼1983) 선사를 모델로 삼았기 때문이다. 탄허를 만나 공부해서 철학교수
2018-06-22 00:01
[역경의 열매] 이승율 <4> 종교 문제 극복하고 ‘구원의 여인’과 결혼
도망치듯 군에 가 있던 3년이 나의 패배의식과 허무주의를 치유하진 못했다. 제대 후 현실은 여전히 암담했다. 고졸 학력에 돈벌이도 없었다. 친구는 끊어졌고 나에 대한 가족의 기대는 사라졌다. 인생을 새 출발할 길을 찾지 않으면 안
2018-06-21 00:01
[역경의 열매] 이승율 <3> 경북고 야구부 주장 맡아 삶의 원칙 배워
중3이 되니 ‘그래도 경북고는 가야지’ 싶었다. 당시 경북고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명문고였다. 정신 바짝 차리고 1년 공부한 끝에 당당히 합격했다. 경북고 입학 후 새날동지회에 들어갔다. 새날동지회는 이승만정권의 독재정치가
2018-06-20 00:01
[역경의 열매] 이승율 <2> 원하던 중학교 못 가 비뚤어진 생활
나는 1948년 경북 청도에서 전통적 유교 집안의 5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이종영과 어머니 박정리는 일제 강점기 소학교 동창이셨다. 두 분은 같은 반에서 공부했는데 어머니가 반장을 했다고 한다. 외동아들로 귀하게
2018-06-19 00:01
[역경의 열매] 이승율 <1> 방황 끝에 만난 하나님… 오직 선교의 길로
나는 올해 고희(古稀)다. 동년배들이 거의 다 사회적으로 은퇴한 나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에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는 지상명령을 주셨다. 지난 2월 한국기독실업인회(CBMC) 중앙회장에 선출된 것이다.
2018-06-18 00:00
[역경의 열매] 조동진 <30·끝>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은 하나님의 섭리”
지난 12일 북·미 정상회담을 지켜봤다. 남북 정상회담에도 만감이 교차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만남은 두 나라가 한 발자국 크게 내디뎠다고 생각했다. 1994년 6월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은
2018-06-15 00:01
[역경의 열매] 조동진 <29> “모든 민족교회들이 만민을 위해 기를 들라”
서구 중심의 선교가 해체되기 시작한 것은 194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조직되면서부터였다. ‘선교사 철수론’이 채택된 WCC 암스테르담 회의는 사실상 서구 선교의 종식을 선언한 회의였다. 이후 1961년
2018-06-14 00:00
[역경의 열매] 조동진 <28> 우리 민족의 ‘에스라·느헤미야’ 나오기를 기도
1994년 7월 9일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사망했다. 세계 언론은 일제히 그의 급서 소식을 톱뉴스로 보도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리던 G7 정상회담에 참석하고 있던 자리에서 “미국의
2018-06-13 00:00
[역경의 열매] 조동진 <27> 北 전쟁박물관 소재지에 ‘화해의 예배당’ 건립 제안
1992년은 미국 공화당 부시 정권이 클린턴 당시 민주당 후보에게 정권을 내주면서 미국의 세계 정책이 진보적 방향으로 선회하는 해였다. 한반도에서는 61년부터 30년을 이어온 장성 출신 대통령들의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문민정부가 출
2018-06-12 00:01
[역경의 열매] 조동진 <26> 김일성 “아시아 평화 위해 미군 남아 있을 필요”
기독교는 화해와 평화의 종교다. 나에게는 사랑과 소망, 믿음, 정의, 자유도 모두 화해와 평화의 틀 안에서의 진리이다. 그리스도는 화해의 종으로 이 땅에 오셨다. 나는 우리 민족 분단의 극복을 화해의 진리에서 찾는다. 그것은 절대
2018-06-11 00:01
[역경의 열매] 조동진 <25> 카터, 남한 목사와 北 부부장 함께 찾아오자 놀라
북한의 유엔대사를 지낸 한시해 부부장 일행이 미국 뉴욕 케네디공항에 도착한 것은 1991년 5월 25일이었다. 이들은 북미기독학자총회가 주최하는 학술회의에 참가했다. 그러는 사이 나는 홍동근 목사, 윌리엄캐리대 개발담당 부총장 위
2018-06-08 00:01
[역경의 열매] 조동진 <24> “왕래 없으면 북·미 관계는 풀리지 않는다”
1980년대 후반 북한 당국은 남한의 사업가와 정치 지도자, 종교인을 대거 초청했다. 당시는 김일성 시대 말기의 대전환기였다. 89년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평양을 방문해 기자회견을 했고, 함흥 출신 재미교포 실업가 황규빈씨도 평
2018-06-07 00:01
[역경의 열매] 조동진 <23> 北 초청장 보내와 방북, 봉수교회서 예배
1988년 7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북녘 학자와의 만남은 나의 민족화해와 평화선교 운동을 남과 북으로 확대시키는 계기가 됐다. 헬싱키에서 미국으로 돌아온 나는 곧 서울로 가 당시 향린교회 담임을 맡고 있던 홍근수 목사와 새문안교회
2018-06-0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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