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  신앙생활  >  역경의열매

[역경의 열매] 조동진 <22> 핀란드서 열린 北 기독학자와의 통일대화 참여
나는 1978년부터 미국의 선교학자인 랄프 윈터 박사가 세운 윌리엄캐리대에 적극 관여했다. 윈터 박사의 간청에 따라 이듬해 12월 ‘고려연구소’를 대학 안에 설치하고 교수가 됐다. 이 대학은 전통적 개념의 학교가 아니었다. 새 시대
2018-06-05 00:01
[역경의 열매] 조동진 <21> 미국에 밀고한 간첩으로 몰려 中情 끌려가
나는 1970년대 중반부터 기독교 민족통일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과 통합 교단의 40대 목회자, 평신도 지도자, 기업인 등과 함께 ‘민족해방 기도운동’을 펼쳤다. 정부에서는 민족해방이란 용어를 싫어했다. 우
2018-06-04 00:00
[역경의 열매] 조동진 <20> 非서구 처음으로 ‘선교사 훈련센터’ 세워
나는 후암교회 담임으로 일하면서 교회갱신과 교회성장 운동, 목회갱신을 위한 문서선교 활동도 적극 펼쳤다. 특히 한국교회가 세계를 향해 선교하는 교회가 되도록 힘을 쏟았다. 그 일환으로 당시 선교 전문지에 서구 선교의 몰락을 비
2018-06-01 00:01
[역경의 열매] 조동진 <19>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 여의도광장 개최 관철
나는 1965년 열렸던 전국복음화운동이 당시 박정희 정권에 위협이 됐던 것을 기억했다. 또 한·일 굴욕외교에 반대하는 교회가 곧 박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 72년 7·4남북공동성명 직후부터 준비하던 빌리
2018-05-31 00:01
[역경의 열매] 조동진 <18> “미아 신세 민족 살리자” 전국복음화운동 발족
나에게 전도신학과 전도원리, 방법을 알려준 사람은 미국 에즈베리신학교 로버트 콜먼 교수였다. 그의 ‘주님의 전도계획’은 가장 많이 알려진 책이다. 1965년 나는 전도신학과 원리를 적용할 기회를 얻게 됐다. 기독교 전래 80주년을
2018-05-30 00:01
[역경의 열매] 조동진 <17> 美 유학 뒤 후암교회 부임, 버림받은 사람들 섬겨
나는 1956년 8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세계복음주의협의회 도움으로 필라델피아 제10장로교회에서 장학금을 받았다. 미네소타주의 베다니선교대학과 켄터키주 에즈베리신학교 대학원을 다녔다. 기독교 확장사와 선교학을 연구했다.
2018-05-29 00:01
[역경의 열매] 조동진 <16> 매국노 이완용 집터에 세운 옥인교회의 담임목사로
1949년 봄 중국 선양(瀋陽)에서 피난 온 신학생 중에 이무호라는 이름의 전도사가 있었다.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와 비슷하게 수염을 기른 중년의 전도사였다. 그가 어느 날 학생회 총무였던 나에게 서울 효자동에 교회를 세울 테니 후원
2018-05-28 00:01
[역경의 열매] 조동진 <15> 은사 박형룡 박사에게 이끌려 기독교 문서운동
나의 지리산 사역은 1951년 8월부터 1953년 1월까지 17개월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 기억에는 18년의 긴 세월을 살았던 것처럼 여겨진다. 52년 겨울, 지리산 밑에서 내 인생을 바꿔 놓은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은사인 박형룡 박사께
2018-05-25 00:01
[역경의 열매] 조동진 <14> 빨치산에 담임목사 잃은 구례읍교회 부임
“너밖에 갈 사람이 없다.” 모두 나를 지켜봤다. 뒷자리에 쭈그리고 있던 나는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말했다. “저는 이 노회의 막둥이 목사입니다. 여순사건 직후 이 노회를 찾은 것은 지역민들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서였습니다.
2018-05-24 00:01
[역경의 열매] 조동진 <13> 신문지에 성경 싸들고 광나루 건너 남쪽으로
나는 1950년 7월 3일 서울 서대문구 합동 28번지 14호에 있던 처가를 떠나 전남 여수로 향했다. 맹관호 장로와 그의 아들 맹의순 전도사, 그리고 라창석 권사의 환송을 받았다. 농부와 같은 차림에 밀짚모자를 쓰고 무명바지에 고무신을
2018-05-23 00:00
[역경의 열매] 조동진 <12> 영락교회서 예배 중 “38선 전역서 전쟁” 들어
1950년 3월 순회전도에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을 때 나는 윤하영 목사님을 전남 여수에서 만났다. 윤 목사님은 내 고향에서 존경받는 목회자였다. 해방 직전까지 신의주제일교회를 담임했던 그는 성품이 곧고 타협을 모르는 민족주의적
2018-05-22 00:00
[역경의 열매] 조동진 <11> 극심한 생활고에 아내는 결혼반지 팔아 김장
졸업과 결혼 이후 나는 전남 여수와 순천 지역으로 내려갔다. 손양원 목사와 약속한 대로 무교회 지역을 향한 발걸음이었다. 애양원에서 가까운 곳에 있던 쌍봉면은 당시 여수군(현 여천군)의 무교회 면이었다. 순천에는 평안도 출신 목
2018-05-21 00:01
[역경의 열매] 조동진 <10> 결혼 앞두고 김구 선생 서거… 예식도 미뤄
나에게도 짜릿한 사랑의 추억이 있다. 서울 남산에 신학교가 설립되던 그 첫날부터 같은 날 학교 입학등록을 하러 왔던 한 여자 신학생을 좋아하게 됐다. 아내 나신복이다. 나는 그를 ‘나 선생’이라고 불렀다. 그는 눈이 크고 아름다
2018-05-18 00:01
[역경의 열매] 조동진 <9> 서대문형무소 인근 복음화 위해 교회 개척
나는 1948년 5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사형수가 된 아버지가 수감돼 있는 서대문형무소로 면회를 다녔다. 형무소에는 박창건 목사님이 형무소 목사로 봉사하고 있었다. 형무소의 교무과 직원들은 대부분 기독교인이었고 아버지의 억울한
2018-05-17 00:01
[역경의 열매] 조동진 <8> 강사로 온 손양원 목사, 1주일 뒤 두 아들 잃어
장로회신학교는 1948년 9월 새 학기를 맞았다. 학생회 총무였던 나는 학내 부흥회 강사 선정 업무를 맡았다. 박형용 박사와 협의해 여수군 신풍면에서 한센인을 돌보는 애양원교회 손양원 목사를 초빙키로 했다. 호남선 열차를 타고 손
2018-05-16 00:01
[역경의 열매] 조동진 <7> 장로회신학교 재건 위해 남산에 천막 쳐
내가 ‘불기둥’ 신앙동지회 동인지 주간이 된 것은 신학 지식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나는 신학 입문자였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입장이 있었다. 51명의 학생을 무기정학과 퇴학 처분을 해 놓고도 양심에 거리낌이 없었던 조선신학교
2018-05-15 00:01
[역경의 열매] 조동진 <6> 조선신학교장 송창근 목사 “아들처럼 길러주겠다”
서울 한복판에 본정이라는 일본거리가 있었다. 지금의 충무로다. 본정 이정목(二丁目)에서 북쪽으로 구부러진 거리가 영락정이었다. 여기엔 일본인들이 만든 천리교 중앙본부가 있었다. 이 자리가 변해 베다니교회(현 영락교회)가 된다.
2018-05-14 00:01
[역경의 열매] 조동진 <5> 기독교인 숙청 피해 北 떠나 아버지 계시는 서울로
8·15는 미완의 해방이었다. 전쟁에 졌어도 독일처럼 두 동강 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일본 군벌은 조선 반도를 소련과 미국이 갈라먹도록 공작했다. 나라는 망했어도 국가를 분단 없이 유지해 주는 혜택을 미국과 소련으로부터 얻어냈
2018-05-11 00:01
[역경의 열매] 조동진 <4> 주일 출근 강요한 日 교장에 “결근계 내겠다”
나는 육십갑자의 첫해인 갑자(甲子)년 동짓날에 태어났다. 갑자생(1924년)들의 운명은 참으로 기구한 데가 있다. 갑자년은 일본 관동 대지진이 일어난 다음 해다. 일본인들은 이 해부터 조선 사람들의 고혈을 짜서, 지진으로 폐허가 된
2018-05-10 00:01
[역경의 열매] 조동진 <3> 믿음·인품·열정의 윤치병 목사에 큰 감명
나는 항상 내 삶의 근원을 생각하곤 한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다. 모두 아버지의 생애에 영향을 주거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분들은 모두 한국 기독교 사상의 민족화에 크게 영향을 끼친 지도자들이면서도 사람들의 기
2018-05-09 00:01
[역경의 열매] 조동진 <2> 데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로 체포된 아버지
나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께 우리 민족의 교회에서 애국심과 민족 운동이 어떻게 함께 얽혀져 왔는가를 들어왔다. 아버지는 때때로 초대 교회는 주일마다 십자가 깃발과 태극기를 교회 지붕에 휘날렸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훗날 내가
2018-05-08 00:01
[역경의 열매] 조동진 <1> “손잡은 남북 정상… 마침내 하나님의 때가 도래”
내가 해방을 맞은 곳은 압록강 지류, 의주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 사이를 굽이굽이 흐르는 고진강 물가 모래밭이었다. 1945년 8월 7일, 붉은색 딱지의 소집장이 배달됐다. 소집장은 조선반도 청년들을 전쟁터에 보내기 위해 특별 지원병
2018-05-04 00:01
제목만보기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