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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최일도 <20> 고독사하는 노인들 위해 ‘작은천국’ 개소
고독사하는 분들이 주변에 많이 늘어났다. 피붙이 하나 없이 홀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무의탁 노인과 거리에서 죽음을 맞닥뜨리는 병든 노숙인들, 가족에게 버려져 홀로 돌아가시는 분들을 섬기기 위해 웰다잉 하우스가 될 ‘다일작은
2017-12-28 00:00
[역경의 열매] 최일도 <19> 개미군단 십시일반… 무료병원 설립 기적
다일천사병원이 오늘까지 운영되고 있다는 건 기적이다. 이 병원은 한국 기독교 최초의 전액 무료병원이다. 말 그대로 개미군단이 십시일반 정신으로 설립해 운영하는 자선병원이다. 지난 15년 동안 무의탁 노인, 노숙인, 외국인 근
2017-12-27 00:01
[역경의 열매] 최일도 <18> 588 희야 자매 “아저씨는 희망 일깨운 ‘꿈퍼’ 목사님”
숙이가 이사 가던 날, 다일공동체 나눔의 집은 봉사자들로 북적댔다. 근모 형제와 함께 숙이의 방에 찾아갔다. 골목길에 세워둔 용달차가 꽤 오래 기다렸는지 ‘왜 이제야 오느냐’는 눈치였다. 짐이 빠져나간 숙이의 방은 적어도 그녀
2017-12-26 00:01
[역경의 열매] 최일도 <17> 오늘 밥퍼 앞마당서 서른 번째 ‘거리에서 드리는 성탄예배’
쓰레기 더미 위에서 밥을 짓고 나누는 모습을 본 청량리 야채시장 영세 상인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배식이 끝나고, 빌려 온 그릇을 돌려 드리기 위해 손수레를 끌고 야채시장을 지나가는 길이었는데 채소 팔던 아주머니가 손수레를 세웠
2017-12-25 00:01
[역경의 열매] 최일도 <16> “있는 돈 다 내놔” 내 목에 칼 겨눈 행려자
다일공동체 ‘나눔의 집’이 마련되면서 그동안 생각으로만 머물던 공동체 생활이 구현되었다. 하지만 삶의 자리가 너무 열악하다 보니 공동체 생활을 희망하는 사람은 나와 두 명의 신학생, 행려자였던 전씨, 칼갈이 아저씨뿐이었다.
2017-12-22 00:00
[역경의 열매] 최일도 <15> 라면 대신 쌀밥에 소고깃국… 부활절 첫 ‘밥 나눔’
청량리의 겨울은 길고 험했다. 창립예배를 드리고 얼마 후 그해 연말까지만 예배당을 사용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남은 기간은 한 달 남짓, 공간을 구할 돈은 한 푼도 없었다. 집 없고 배고픈 이들을 가족처럼 섬길 수 있는 나눔의
2017-12-21 00:01
[역경의 열매] 최일도 <14> 588 포주들 핍박… 교회 비운 새 십자가가 쓰레기장에
청량리역 안에 있는 철도청 소유의 건물을 빌려 인쇄업을 하던 신길순 형제를 찾아갔다. 다일공동체 교회 창립을 위한 준비 기도회를 그의 인쇄소에서 갖고 싶다고 말했다. 자칫 부담을 줄까 봐 행려자들을 돌볼 계획이라는 이야기는 하
2017-12-20 00:01
[역경의 열매] 최일도 <13> 인생을 바꿔놓은 청량리역 노인과의 만남
신대원 졸업학기 중인 1988년 11월 11일, 휴강 소식에 환호성을 지르며 청량리역으로 향했다. 틈만 나면 어디론가 휑하니 다녀오던 방랑벽이 또 걸음을 재촉한 것이다. 역 광장을 지나고 있는데 대여섯 걸음 앞서 걷고 있던 한 노인
2017-12-19 00:01
[역경의 열매] 최일도 <12>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하게 하소서” 가난함 수용
어느 날 저녁식사를 마친 아내는 중요한 발표가 있다며 싱긋 웃었다. 생명을 잉태했다고 했다. 뛸 듯이 기뻤지만 동시에 과연 아빠가 될 준비가 됐는지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수입이 없는 신학생으로 단칸방에 세 들어 사는 형편
2017-12-18 00:00
[역경의 열매] 최일도 <11> “하나님께 먼저 묻고…” 고민하는 나를 다독인 아내
그녀는 우리 집 근처에 작은 방 하나를 마련했고 나는 오랫동안 미뤄놨던 책을 다시 잡았다. 목회를 한다면 중도에 포기한 신학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할지, 인문학 공부부터 할지 생각이 복잡했는데 그녀는 하나님의 계획을 먼저 묻고
2017-12-15 00:00
[역경의 열매] 최일도 <10> 죽기 위해 찾은 섬에서 유서처럼 쓴 戀詩
목포에서 ‘옥소’라는 낡은 배를 타고 4시간30분 거리에 있는 섬 가사도로 향했다. 스물넷의 생을 마감하기 전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선실에 막 들어가려는데 누군가 아는 체를 했다. 전에 서울 오류동 동산교회와 자매결연을
2017-12-14 00:00
[역경의 열매] 최일도 <9> 수녀원 떠난 그녀… 백방으로 수소문
매일 새벽기도와 말씀 묵상으로 일기를 쓰며 그녀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계속 써내려가다 1980년 11월 어느 날 수녀원으로 전화를 걸었을 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말았다. 그녀가 교사직을 그만 뒀고 수녀원을 떠났다는 것
2017-12-13 00:00
[역경의 열매] 최일도 <8> 퇴원 직후 김 수녀 찾아 ‘수선화’ 노래로 마음 전해
사람과의 관계가 하나둘 끊어지면서 미래의 길도 점차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다. 음식을 먹지도, 잠을 이루지도 못했고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자꾸 헛구
2017-12-12 00:00
[역경의 열매] 최일도 <7> “수도자보다 목회자로 부름 받으신 분 같아요”
김연수 시인 수녀를 향한 내 사랑을 지속적으로 간직하기 위해서는 항상 수녀로만 대해야 한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녀가 선택한 수도의 삶을 존중하고 나 역시 한 사람의 수도사로 살아야겠다고 결단했다. “이미 하나님께 바쳐진
2017-12-11 00:00
[역경의 열매] 최일도 <6> 베델성서 연구모임서 수녀였던 아내와 첫 만남
갑자기 별세하신 아버지가 주일성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을 받아 지옥에 갔다는 전도사의 발언은 참으로 긴긴 세월 상처로 남았다. “더 이상 그런 교회는 나갈 필요가 없다”고 말하자 교인들은 위로는 못할망정 “아버지가 돌아가
2017-12-08 00:01
[역경의 열매] 최일도 <5> “훌륭한 목사님 돼라 했건만 어째 거지들 밥만 먹이나”
어머니는 오로지 기도와 전도에 목숨을 건 분이셨다. 오직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보수적 신앙의 아름다움을 물려주셨다.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공언한 아들이 아버지 별세 이후 교회에 나가지 않고 방황하는 모습에 많이 놀라고 눈
2017-12-07 00:00
[역경의 열매] 최일도 <4> “아버지 없는 천당엔 나도 안 가요” 교회 발 끊어
아버지는 내가 중3 때 돌아가셨다. 병을 오래 앓으신 것도 아니고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충격은 더 컸다. 나는 과외 열풍에 시달린 세대다. 명문 중학교에 가기 위해 초등학교 4∼6학년 때 혹독하게 과외수업을 받았다. 하
2017-12-06 00:01
[역경의 열매] 최일도 <3> “더럽게 춥네” 했다가 “추운 맛 봐라” 부친께 혼쭐
6·25 전쟁이 끝난 후 아버지는 뜻밖에도 섬유 노조의 초대 사무총장으로 일하셨다. 전쟁 당시 대북 첩보 임무를 맡았던 켈로(KLO, Korean Liaison Office) 부대 대대장으로 활약하셨던 분이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선봉에 섰다는 것이
2017-12-05 00:01
[역경의 열매] 최일도 <2> “태중에 하나님께 바쳤다”… 진보·보수 두 신앙의 합작품
나는 서울 영등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집 근처 둑에서 강 건너 보이는 마포 나루터와 여의도, 밤섬에서 뛰어 놀았다. 지금도 눈 감으면 넘실거리는 푸른 강물과 인천에서 마포까지 새우젓을 나르던 황포돛대배가 떠오른다. 부모
2017-12-04 00:01
[역경의 열매] 최일도 <1> 소외 이웃에 29년째 식사 제공… 1000만 그릇 넘어서
‘밥퍼’라는 이름으로 소외된 형제자매들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한 지 만 29년째. 굶주린 이들의 허기를 채워준 식사는 지난 5월로 1000만 그릇을 넘어섰다. 1988년 11월 11일 서울 청량리역 광장에 쓰러져 있던 노숙인 할아버지를
2017-12-01 00:01
[역경의 열매] 이재훈 <17·끝> 12년째 매년 100일 오지 생활… 오늘도 떠납니다
어느 날 한 13세 소녀가 많이 아파서 1000아리(약 350원)를 갖고 혼자 7㎞를 걸어왔다. 검사를 해보니 말라리아에 감염됐다. ‘이런 몸으로 먼 길을 홀로 왔다니.’ 수액 주사와 약을 처방하려 했더니 혼자 침대에서 주사를 맞는 게 겁
2017-11-30 00:00
[역경의 열매] 이재훈 <16> 무당에게 성경 건네자 사시나무 떨듯 손 떨어
“당신이 무당인데 기도로 치료하지 않으면 어떻게 치료하겠습니까?” 아이의 아버지는 오히려 내게 되물었다. 아이가 3년 동안 이 병을 앓고 있었는데 주변의 용하다는 무당을 다 찾아다니며 치료를 받았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
2017-11-2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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