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한반도포커스-유호열] 北 신년사에 드러난 대남 오판

입력 2015-01-05 00:20
[한반도포커스-유호열] 北 신년사에 드러난 대남 오판 기사의 사진
새해 벽두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신년사를 발표하였다. 집권 4년차에 접어든 만큼 김정은은 비교적 여유 있는 모습으로 30분 분량의 원고를 카메라를 응시하며 낭독하였다.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신년사는 북한의 대내외 인식과 평가 그리고 향후 국정 방향과 정책 과제에 대해 가장 권위 있는 문건이다. 2015년 신년사에 따르면 북한은 수령 독재체제와 핵·경제 병진정책에는 추호의 변함도 없지만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남북 간 대화협력을 재개하는 데 비중을 두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그럼에도 북한 대남정책의 기본 전제가 되는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인식은 오류와 편견, 그리고 의도적 왜곡으로 점철돼 있다. 상대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정책의 효율성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정책의 환경 그 자체를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 지도자의 대남 인식 오류와 편견은 하루속히 교정되어야 할 것이다.

교류협력 구상을 흡수통일 기도라고 비난

첫째, 김정은은 남한 당국이 제도통일을 추구하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체제 대결을 추구하지 말 것을 촉구하였다. 남한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을 추구하는 선진국가로서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북한이 자신들의 제도가 가장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남한을 비롯한 자유민주주의체제의 본질을 호도하지는 말아야 한다. 주권을 존중하면서도 인류 보편적 가치가 국가란 이름으로 심각히 유린되는 상태를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 21세기 문명사회의 흐름이라면 북한 인권개선을 위한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노력에 남한이 적극 동참하는 일을 제도통일이나 불순한 청탁놀음으로 매도하거나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 주요 20개국(G20)의 일원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존경받고 있는 남한 사회의 위상을 직시하고 그러한 중견국가가 될 수 있었던 배경과 역할에 대해 뼈를 깎는 각오로 배워야 할 것이다.

둘째, 25년 전 독일 통일 과정에서 사회주의체제가 붕괴하고 동독 국가가 소멸되는 과정을 너무도 실감나게 목격했던 북한은 남한의 교류협력 구상을 흡수통일 기도라고 비난하고 배격하고 있다. 남한의 대통령직속 통일준비위원회를 흡수통일의 전위대로 규탄하면서 통준위의 대화 제의나 교류협력 구상을 배격하고 있다. 북남 사이의 대화협상 교류를 활발히 하여 북남관계를 대전환하여 통일의 대통로를 열자고 하면서도 우리의 진정성을 담은 제안들에 대해서는 무조건 흡수통일로 의심하는 행태야말로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이다.

독일 통일을 서독에 의한 흡수통일이 아니라 동독주민들의 생존을 위한 혁명의 결과이며 장벽 붕괴 이후 민주화된 동서독이 모든 부문에 걸쳐 상호 합의에 의해 제도통일을 이룩했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음을 북한 지도부는 직시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남한 국민들, 특히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통일에 대한 무관심과 거부감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 있다면 남한 정부의 통일대북 정책을 흡수통일이라고 비난하는 어리석음은 즉각 교정되어야 평화적 통일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북한 자신을 위해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남북대화에 매달리고 있다고 착각

셋째, 북한은 남한 사회나 정부가 남북 대화에 매달리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김정은도 신년사에서 남한이 진실로 대화를 원한다면 북한이 아량을 베풀 용의가 있는 것처럼 대화 가능성을 언급하였다.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면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는 언급에서 김정은식 갑질 어투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대화는 교류협력을 이어가기 위한 수단이며 교류협력은 결국 남북한이 상호 이익이 되고 나아가 통일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일이다. 대화 자체가 목적이거나 일회성 교류협력의 폐해를 이미 학습한 남한의 어떤 정치인도 북한과의 회담을 구걸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음을 깨닫고 4년차에 접어든 북한 지도자라면 좀 더 성숙하고 진지한 자세로 우리의 대화 제의를 겸허히 수용해야 할 것이다.

유호열(고려대 교수·북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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