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여의춘추-김준동] 교실엔 꼴찌도 있다

입력 2017-07-06 17:58
[여의춘추-김준동] 교실엔 꼴찌도 있다 기사의 사진
1984년 3월 2일 서울 중곡동에 이색적인 학교가 문을 열었다. 지금의 대안(代案)학교와 비슷했다. 특수목적고등학교(특목고)의 시초인 대원외국어학교였다. 당시에는 외국어고가 아니라 외국어학교였다. 초기에는 외국어에 관심 많은 학생이 모였고 어학 영재 양성이라는 설립 취지에 맞게 운영됐다. 80년대 후반부터 입시 명문고로 위상을 떨쳤고 91년 특목고인 외국어고로 인가받으면서 아성을 더욱 굳혔다. 외고 전성시대의 시작이다.

자율형사립고(자사고)의 뿌리는 자립형사립고다. 74년 고교 평준화가 실시된 이후 역대 정부는 학생에게 학교 선택권을 부여하기 위한 방안에 골몰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2001년의 자립형사립고다. 2000년 중후반에는 이들 자립형사립고가 자사고로 전환됐고 학교 수도 대폭 늘었다. 일반고보다 3배나 많은 등록금에도 우수 학생들이 대거 지원했다. 외고에 이은 자사고의 전성시대는 이렇게 시작됐다.

외고와 자사고에 대한 학생의 수요는 갈수록 넘쳐났고 관련 사교육도 급격히 팽창했다. 2017학년도 서울대 합격자 출신 고교별 현황을 보면 상위 30개교 중 자사고는 10곳, 외고는 6곳으로 절반이 넘는다. 사교육 조장과 고교 서열화 문제가 불거지면서 2000년대 중반부터 외고·자사고 폐지론이 고개를 들었다. 도입 취지와 달리 국어 영어 수학 위주의 집중·심화 수업으로 명문대 진학의 통로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2013년 한국교육개발원이 발간한 ‘고교다양화 정책의 성과분석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자사고 학생들에게 학교를 선택한 이유를 물어보니 ‘장차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라는 이유가 전체의 35%로 1위였다. 외고도 마찬가지였다. 외고의 설립 취지가 무색한 통계도 있다. 교육부가 지난해 발표한 외고 졸업생의 계열별 대학 진학현황을 보면 전국 31개 외고를 졸업한 학생 가운데 대학 진학자는 72.7%인데 이 중 어문계열 진학 졸업생은 31.9%에 불과했다.

자사고, 외고의 특혜는 입학 전형에서부터 시작된다. 일반고보다 먼저 학생을 선발함에 따라 우수 학생을 독점할 수 있다. 비판이 일자 자사고와 외고가 추첨과 인성 면접 등으로 선발 절차를 일부 개선했지만 우선 선발이라는 특권은 그대로다. 일반고는 이들 학교의 전형이 끝난 뒤에야 학생을 받는다. 상위권 학생들이 교육 환경이 탁월한 자사고와 외고에 몰리는 건 당연하다. 선택권 확대와 다양화라는 취지로 만든 현행 고교체계가 특목고·자사고-일반고-특성화고로 이어지는 서열화라는 부작용을 낳은 것이다. 출발선부터 다른 학교 간 격차는 외고·특목고의 집중 교육에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까지 더해지면서 더욱 벌어진다. 이는 일반고의 황폐화로 이어진다. 오죽하면 외고·자사고 못 가면 2류 인생이란 얘기까지 나오겠는가.

우리 교육은 1위로 대변되는 최상위권 학생에게 집중돼 있다. 소수에게 각종 경력을 채워주기 위해 대부분 아이들을 들러리 세우는 게 학교 현실이다. 여기에 부모의 학력과 재력까지 가세하면서 교육 양극화는 더욱 심화된다. 개천에서 용 나올 수 없는 구조가 돼버린 셈이다. ‘교육 강국’ 핀란드에서는 교실과 학생이 중심이고 성적 및 특정 학생 위주의 교육은 배제된다. 단 한 명의 낙오자도 만들지 않는 ‘낙제율 0%’를 지향한다.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학생들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다. 좀 더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집중한다.’ 이게 핀란드의 교육 철학이다. 국제학생성취도평가(PISA) 교육 불평등 부문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고 성취도 평가에선 매년 1위에 올라있는 국가가 핀란드다. 개인 차이를 사회적 차별로 고착화하지 않고 맞춤 지원으로 메우는 핀란드의 시스템은 시사하는 바 크다. 이런 것이 진정한 다양성 교육이 아닐까. 교실엔 1등도 있지만 꼴찌도 있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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