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재서 (4) “난 네 개의 눈 중 하나만 잃었을 뿐”

[역경의 열매] 이재서 (4) “난 네 개의 눈 중 하나만 잃었을 뿐” 기사의 사진

소년 이재서가 다녔던 서울 신교동 서울맹학교. 그곳에서 그는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1968년 3월, 점자 테스트를 거쳐 서울맹학교 중등부 1학년에 입학했다. 그토록 가고 싶은 중학교에 들어갔지만 기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일반 학교가 아닌 맹학교에 들어 갈 수밖에 없는 운명에 가슴이 아팠다.

서울맹학교는 초·중·고교가 함께 있는데 200여명이나 되는 전교생은 모두 기숙사 생활을 했다. 뒤늦게 열일곱 살 중학생이었지만 나는 오히려 나이가 적은 축에 속했다. 동급반 중에는 나보다 여섯 살이나 많은 사람도 있었다. 실명하고 늦게 이런 맹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고 들어와서 그런 것 같았다.

나는 이 학교의 중·고등부 3년씩 6년을 다녔다. 입학해서 몇 년 동안은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실명의 아픔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볼 수 없다는 현실, 다시는 볼 수 없는 하늘과 고향 산천, 부모형제 얼굴들…. 이런 기막힌 현실에서 학교가 내게 무엇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열심히 공부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학교에서 가장 침울한 아이가 바로 나였다. 선생님들이 먼저 내게 다가와 개인 상담을 하자고 할 정도였다.

가끔 외부에서 음식을 들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었다. 방문자들은 으레 먹을 것을 나눠주고 우리와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 “용기를 내라”고 말하곤 했다.

너무 싫었다. 일회성으로 찾아와 쉽게 던지는 그런 말들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식사외 간식을 사 먹을 형편이 안돼 늘 배가 고팠지만 간식을 사들고 온 외부 손님들이 달갑지도 않았고 피하고 싶었다. ‘동냥’은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외부에서 누가 온다고 하면 숨어 있다가 사감 선생님에게 들켜 야단을 맞기도 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어느 목사님이 강사로 초청됐다. 그날도 참석하기 싫었다. 하지만 사감 선생님이 몇 차례나 전원 참석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강당으로 갔다. 그런데 놀라운 말을 듣게 됐다.

“사람에게는 네 가지 눈이 있습니다. 사물을 보는 육안, 지혜를 터득해 가지는 지안, 마음으로 보는 심안,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영원한 세상을 보는 영안이 바로 그것입니다. 세상 어떤 사람도 이 네가지 눈을 모두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대부분 한두 가지씩 눈이 부족한 시각장애인인 셈입니다. 여러분만이 시각장애인이 아닙니다. 육안 하나를 잃었다고 좌절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비록 육신의 눈을 잃었지만 나머지 세 가지 눈을 밝고 건강하게 가질 수 있습니다.”

설교 한마디 한마디는 마음속 깊이 각인됐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모르던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방으로 돌아와 참 많이 울었다. 그리고 마침내 새 다짐을 하게 됐다.

‘그래, 난 네 개의 눈 가운데 하나를 잃었을 뿐이다. 열심히 세 개의 눈을 가꾸기 위해 노력하자!’ 마음이 평안해지며 새 도전이 일어남을 느낄 수 있었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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