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재서 (6) 영어학원 걸어 다니며 갖은 고생

[역경의 열매] 이재서 (6) 영어학원 걸어 다니며 갖은 고생 기사의 사진

1970년 서울맹학교 중등부 3학년 어느 날, 한 친구가 “다른 학원에 가게 됐다”며 끊어놓은 영어 학원 수강증을 건넸다. 광화문에 있는 S학원이었다. 돈이 없어 학원 강의를 못 듣던 내겐 행운이었다. 그날 곧바로 학원으로 향했다. 학교에서 학원까지 걸어서 30~40분 정도 걸렸다. 수업을 마치면 밤 10시나 돼야 기숙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저녁식사 때를 맞추지 못해 밥을 먹지 못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배가 고파도 학원에 가서 영어를 배운다는 생각을 하면 절로 힘이 났다. 학원을 오가는 길엔 위험한 순간이 많았다. 차와 충돌해 사고가 날 뻔한 적도 많았다. 손수레나 사람에 부딪혀 넘어지고 길을 잘못 들어 3~4시간을 헤맨 적도 있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크게 낮았다. 시각장애인들이 흰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는 사실도 잘 몰랐다. 지나가다 부딪치면 “눈 좀 똑바로 뜨고 다니라”며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었다. 재수 없다고 침을 뱉는 사람도 있었다. 길가에 펴 놓은 물건을 밟거나 건드리면 “눈도 안 보이는 사람이 집구석에 있을 것이지 돌아다니긴 왜 돌아 다니냐”고 욕을 하기도 했다.

마음이 아팠다. 화가 치밀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이런 일이 가끔 있자 점점 그런 말들은 흘려듣게 됐다.

학원 교실은 5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어서 첫날은 직원이 교실까지 안내해 주었다. 수업이 끝난 다음 누군가 1층까지 데려다 주었으면 좋겠는데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었다. 잠시 후 인기척이 들렸다.

“미안하지만 같이 좀 내려가 주시겠어요?”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기만 했다. 그래서 다시 내가 말을 걸었다.

“언제 나가실 건가요? 저와 같이 좀 나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며 책상을 탁 치더니 이렇게 외쳤다.

“우리 당신에게 줄 돈 없어!”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내 사정을 이야기했다.

“저는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입니다. 오늘 학원 첫날인데 입구를 잘 찾을 수가 없네요. 도움을 주세요.”

그러자 그 학생은 몹시 당황해 하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아, 제가 오해했군요. 저희는 깡패와 한패인 줄 알았어요. 밑에 내려가면 패거리들이 기다리는 줄 알고 괜히 떨었네요. 학원 주변에 워낙 깡패들이 많아서…. 죄송합니다.”

‘내가 깡패로도 보이는구나‘라고 생각하니 재미있었다. 그 학생들은 다음날부터 학원에서 나를 만나면 기꺼이 도와 주었다.

길에서 도움을 부탁할 때 사람들의 태도는 다양했다. 친절하게 손을 잡고 안내해 주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 우산이나 신문지를 접어 내밀고 잡고 따라 오라고 했다. 어떤 이는 구두 소리를 똑똑 내면서 “여기로, 여기로”라며 강아지 부르는 듯했다. 그럴 때는 도움을 받으면서도 모욕을 느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가 버리는 것이다. 특히 비가 오는 날에는 방향 감각을 잃기 일쑤였다. 소리로 방향을 찾아야 하는데 비가 오면 차 소리를 비롯한 주변 소리가 다 묻혀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비가 오는 날에도 학원을 빠지지 않았다. 그만큼 영어를 배우겠다는 욕구가 강했다. 더군다나 가난한 내 형편에 얻을 수 없는 학원 공부의 기회가 내게는 금쪽같이 귀했다.

정리=유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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