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정재호] 첫 단추 잘못 꿴 미소금융 기사의 사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두 번째 찾아오는 올 겨울 서민들은 정말로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 중인 ‘미소(美少)금융사업(일명 마이크로 크레디트, 무담보 소액 대출사업)’의 속도로 보면 ‘서민을 따뜻하게’ 하고 싶은 친서민 정부의 의지가 일응 엿보인다.

방금 언급한 미소금융사업의 ‘속도전’은 가히 기록적이다. 2조원 규모의 미소금융사업이 언론에 발표된 것은 지난 9월 17일. 그러고 한달 남짓, 재계와 금융권은 실제로 2조원을 분담했다. 삼성그룹 3000억원, 현대·기아차, LG, SK 그룹 각 2000억원, 롯데와 포스코 그룹 각 500억원씩. 지난 13일엔 협정식까지 마쳤다. 금융권에서는 8000억원(휴면예금 7000억원+국민은행과 신한금융 각 500억원)이 모아졌고 2000억원은 외국계를 포함한 나머지가 십시일반으로 준비하고 있다. 일정대로라면 11월 재단설립 준비를 거쳐 12월이면 대출지원을 시작할 예정이다. 여기까지 1단계 사업이 3개월 만에 마무리된다. 저탄소 녹색성장과 4대강사업의 로드맵이 1년 만에 완성한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이번에 마련된 재원은 미소금융중앙재단에 수렴된 뒤 산하 기업별·지역별 재단에 다시 분배된다. 예컨대, 삼성그룹이 미소금융삼성재단을 운영하려면 약속한 3000억원을 중앙재단에 일단 출연한 뒤 다시 운영 및 대출 자금을 받아야 한다. 출연기업이 직접 재단을 설립, 운영하기도 하겠지만 자금만 출연하는 경우를 감안한 것으로 이해된다.

자금을 출연한 기업과 은행에게는 소득금액(영업이익)의 50%를 손비 처리로 인정해주는 세법개정안도 추진되고 있다. 그동안 5%(개인 20%)에 비하면 파격적인 확대조치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대한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미소금융을 건설하려는 망치 소리는 요란한데, 출연기업은 신명나 보이지 않고 박수 치는 구경꾼이 없으니 참 딱한 노릇이다. 왜 그럴까.

우선 대기업과 금융기관에서 거액의 목표금액을 갹출한 모양새를 취한 것이 선의로 비쳐지지 않는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도 좌파정부식 포퓰리즘, 관치금융과 준조세의 부활(한나라당 이한구, 민주당 이석현·박선숙 의원)이라고 합창했다.

이러한 성과지상주의는 진심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싶은 수많은 기업인과 재산가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보다는 ‘너희들끼리 잘해봐’라는 심리를 확산시킬 우려마저 있다.

재원을 중앙재단에서 산하재단으로 내려보내는 중앙집권식 분배·운영구조도 자칫 오해를 살 소지가 있다. 이번 국감에서 2조원의 자금을 운영할 사업자로 벌써 해피월드복지재단, 민생포럼, 민생경제정책연구소 등 친정부 성향 단체들이 선정됐다는 의혹(민주당 홍영표 의원)이 제기된 것도 이러한 분배·운영구조의 허점과 무관치 않다.

기업의 참여를 통해 가난한 서민들에게 자립의 길을 열어주고 그만큼 내수 기반을 튼튼히 하겠다는 정부의 정책 의지(청와대 정책소식)를 나무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외국의 경우도 정부가 부분적으로 직·간접 지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미소금융은 분명 첫 단추(input)를 잘못 꿰고 있다. 벌써 신뢰에 금이 가 있다. 불신이 심화되면 미소금융은 반신불수로 전락하고 선의의 기부 문화는 더 위축될 수 있다. 기대효과(output)가 좋을 리 만무한 것이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지난 12일 첫 확대간부회의에서 기업들에 강한 어조로 주문했던 ‘야성적 충동(투자마인드)’이 미소금융사업에서 절실하다. 그러한 야성적 충동은 자발성과 신뢰성, 불편부당한 룰이 전제돼야 극대화된다. 공정(工程)에 맞춰 서두르는 것보다는 기업이 흔쾌히 나서고 서민도 기꺼워하는 미소금융이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첫 단추를 고쳐 꿰야 하는 이유다.

정재호 경제부장 j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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