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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식물이야기] 낙엽과 거름

[고규홍의 식물이야기] 낙엽과 거름 기사의 사진

가을빛이 깊어지면서 낙엽의 속도가 빨라졌다. 갖가지 빛깔의 낙엽이 가을의 정취를 한껏 드높인다. 해마다 이맘 때면 도시에서는 한 달여 동안 낙엽을 쓸지 않는 낙엽 거리를 선정한다. 도심에서 가을을 느끼게 하려는 배려다. 서울시도 덕수궁길 삼청동길을 비롯해 73곳, 128㎞ 구간을 ‘단풍과 낙엽의 거리’로 선정 발표했다.

낙엽의 거리를 걸을 때마다 떠오르는 나무가 있다. 경북 상주군 화서면 상현리 반송(盤松)이다. 반송은 뿌리 부분에서부터 줄기가 여러 개로 나뉘어 자라는 소나무의 한 종류다. 천연기념물 제293호인 이 나무는 탑처럼 생겼다 해서 탑송(塔松)이라고도 불린다. 마을 사람들은 500살 된 이 나무 안에 이무기가 살고 있다고 한다.

이 나무를 떠올린 데에는 까닭이 있다. 이 나무에서 떨어진 소나무 낙엽을 주워가면 천벌을 받는다는 전설 때문이다. 나무를 보호하려는 옛이야기치고는 좀 지나치다 싶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놀라운 지혜가 담긴 전설이다.

낙엽의 의미를 짚어 보게 하는 지혜다. 도시에서야 곧바로 쓸어 없애지만, 인적 드문 숲에서 낙엽은 오래도록 나무 뿌리 부분에 쌓인 채 서서히 썩어 간다. 눈보라 비바람 맞으며 썩은 낙엽은 어떤 거름보다 좋은 양분이다.

소나무는 가을이 와도 한꺼번에 잎을 떨어뜨리지 않지만, 오래 된 잎은 하나둘 떨어내고, 새 잎을 내게 마련이다. 짐승의 털갈이와 같은 이치다. 떨어진 솔잎은 다른 나무의 낙엽과 마찬가지로 잘 썩어서 좋은 거름이 돼야 한다. 솔잎은 가늘고 딱딱해서 쉽게 썩지 않기 때문에 오래도록 그냥 둬야 좋은 거름이 된다. 썩기 전에 사람들이 주워간다면, 소나무는 거름을 잃게 된다. 이 마을 선조들은 솔잎을 주워가면 천벌을 받는다는 이야기로 소나무의 거름을 지키고자 했다. 자연의 순환 이치를 거스르지 않으려 한 것이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부지런히 자양분을 만들어냈던 나뭇잎은 제 소임을 마치고 땅에 떨어지지만 그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낙엽은 다시 새 잎을 키우는 영양분이 되기 위해 서서히 썩을 준비를 한 것이다.

자분자분 낙엽 밟는 소리가 사람에게는 서정과 낭만의 상징이겠지만, 나무에게는 더 아름다운 삶을 위한 안간힘이자 아우성임을 돌아보게 된다.

천리포수목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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