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용 칼럼] 좌고우면한 신종플루 대책 기사의 사진

"학교 수업 일수가 학생 건강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가 결국 어제 신종 인플루엔자(신종 플루) 국가전염병위기단계를 심각(Red)으로 격상했다. 관심-주의-경계-심각 4단계 중 최고인 ‘심각’은 해외에서 유입된 신종 전염병이나 국내 신종 전염병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때 적용된다.



올 5월 국내에서 신종 플루 첫 확진 환자가 발생한 이후 지난달까지 정부는 대체로 선방했다. 하지만 10월 중순부터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사실상 대유행기에 접어들었다. 10월에만 30명 등 어제까지 42명이 사망했다. 20대 여성, 40대 남성 등 건강한 비고위험군도 7명이나 쓰러져 이젠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미국의 국가비상사태 선포가 겹치면서 국민들은 신종 플루 공황에 빠졌다.

그간 정부는 과도한 불안감을 불식시키기 위해 잇단 대책을 발표하며 ‘국민 안심시키기’에 주력했다. 신종 플루 사망률이 일반 독감 수준이며 우리는 미국보다 대책이 잘 돼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문제는 ‘교실 전파’가 빠른 학생 환자 급증에 있다. 지난달 20일 18곳이던 휴업 학교 수는 26일 97곳, 27일 205곳, 31일엔 528곳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지난주부터 정부가 내놓는 대책을 보면 어딘가 미덥지가 못하다. 부처 간 손발이 맞지 않거나 한 박자씩 늦은 대책을 내놨다. “적군은 인해전술인데 기관총은 못 쏠망정 권총으로 응대하는 꼴”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일부 언론이 휴교를 촉구하자 26일 보건복지부는 ‘동네 병의원 타미플루 처방’ 등을 발표했다. 비교적 발 빠른 조치였다. 하지만 27일의 4개 관계부처 합동 정부 담화문부터 혼선이 빚어졌다. 당초 언론에 배포했던 ‘지역별 휴교령 검토’ 내용은 전재희 복지부 장관이 발표할 때는 빠졌다. 부처 간 엇박자로 대국민 담화가 흐지부지된 셈이다. 다음 날인 28일 의사협회가 ‘1∼2주간의 휴교 조치 필요’를 주장하며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 논란을 증폭시켰다. 이 무렵 초중고생들 사이에서 “맞으면 그냥 죽는 거야, 절대 맞지 마”라는 백신 괴담까지 유포됐다.

‘휴교 대책’은 교육과학기술부로 넘어갔다. 28일 오후 서울역 회의실에서 전국 시·도 부교육감 회의가 긴급 소집됐지만 ‘지역마다 여건이 다른 만큼 휴업기준도 달라야 한다’는 정도로 넘어갔다. 교과부는 다음날 “시·도 교육청별 가이드라인을 31일까지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결과가 곧 나온다’는 알맹이 없는 예고만 했다.

이때까지 휴교 기준은 학교장에게 맡겨져 일선 학교들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휴업 결정을 내렸다가 수업일수 문제로 취소하는가 하면, 교실 감염을 우려한 결석생도 크게 늘었다. 의학 전문가도 아닌 교장과 교사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려니 답답할 수밖에 없다. 일선 학교에 재량권을 줬다지만 정부의 책임 떠넘기기나 다름없다.

이번 주 시행된 16개 시·도 교육청별 휴업 가이드라인은 너무 엄격해 실효성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확진 환자 10%이상 혹은 의심환자 25% 이상일 때 학급 휴업을 하도록 했으니 이 기준에 맞춰 휴업이 가능한 학교가 얼마나 있을까. “신종 플루보다 더 무서운 게 수업일수”라는 신랄한 풍자도 나왔다.

정부는 어제 ‘심각’ 격상에도 휴교령 등 학교와 관련한 추가 대책은 취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까지 정부는 차분히 대응하는 게 최선이라고 했지만 휴교 관련 대책은 좌고우면(左顧右眄)하느라 실기(失機)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 수업일수가 학생의 건강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겨울 초입인 지금이 신종 플루 유행의 피크단계 시작이라고 한다. 연간 220일 이상 수업해야 하지만 천재지변의 경우 최소 198일로 단축되므로 1∼2주 휴업을 할 여유는 있어 보인다. 방학을 단축할 수도 있다. 면역력을 키운 후 등교하는 쪽이 확산을 막는 데 효과적일 것이다.

일관성도 좋지만 정부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정확한 판단과 결단력이다. 세계 첫 번째로 전국 휴교령을 내린 국가가 된들 어떤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우리나라가 가장 빨리 극복한 데는 과감한 결단과 속도전이 큰 몫을 했다.

수석논설위원 hy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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