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권영준] 스무살 경실련의 진로 기사의 사진

11월 4일로 경실련이 창립된 지 만 20년이 되었다. 경실련은 ‘다 같이 잘사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뜨거운 가슴과 열정을 가진 전문가 집단과 시민들이 모여, 정부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지 않는 정치 중립적이며 비정부·비영리 기구로서, 정책감시 및 대안 중심의 새로운 시민운동 초석을 놓은 국내 최초의 시민단체다.

경실련이 지난 20년 동안 추구했던 운동들은 금융실명제와 같이 제안 당시에는 큰 성과가 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비난까지 받았지만, 그러나 경실련이 주장한 대부분의 개혁 과제들은 우리 경제를 발전시키고 경제정의를 실현하는 주요한 수단들이었음이 역사적으로 입증되었다. 경실련이 지향하는 경제정의는 부동산 투기, 정경유착, 불로소득과 탈세, 극심한 소득격차, 불공정한 노사관계, 농촌과 중소기업의 피폐 및 이 모든 것들의 결과인 부와 소득의 불공정한 분배,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 경영 불투명성, 부패와 사치와 향락, 환경파괴 등 우리 사회에 범람하고 있는 경제적 불의를 척결하기 위한 제도적 개혁을 통해 경제적 공의(公義)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외형과 質의 괴리로 좌절

20년이 지난 오늘날의 시점에서 다시 살펴보아도 경실련이 추구한 경제정의는 국가와 사회가 바로 서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며, 그 어떠한 사회정의도 한 꺼풀씩 모두 벗기고 나면 결국 경제정의로 귀결되기 때문에 경제정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비전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을 돌이켜 볼 때 경실련이 추구했던 우리 사회의 경제정의가 기업들의 투명성과 반부패 측면에서 외형적으로는 진보했으나 빈부격차와 양극화 문제 해소라는 실질적 차원에서는 답보하거나 퇴보하는 모순 때문에 좌절하고 있다.

경실련이 출범할 당시부터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부동산 투기 등으로 집 없는 서민들의 삶이 피폐해지긴 했지만 실업 문제가 큰 이슈는 아니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일자리 문제는 우리 경제 위기의 심각한 뇌관이 되면서 양극화 현상이 급격히 심화되었다. 상위 20%의 평균 소득을 하위 20%의 것으로 나눈 소득 5분위 배율은 1997년엔 4.09배였지만 2008년에는 무려 8.67배로 치솟는다. 이처럼 소득 격차가 급증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일자리 문제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산의 양극화도 급속히 진행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경기 침체 해소를 위한 건설부동산산업 활성화 목적으로 진행된 부동산 관련 가격 및 세제와 금융 제도의 대규모 규제 완화가 지난 10년 동안 아파트 및 토지 가격 폭등을 초래, 결국 2005년 기준으로 자산 5분위 배율이 소득 5분위 배율보다 월등히 높은 19.5배로 엄청난 양극화를 초래하였다.

또한 탄생부터 권위주의 정권이 추구하는 압축성장의 동반자로서의 역할이 강조되었던 재벌의 경제력 집중도 지난 20년 동안 오히려 더 심화되었기에 중소기업들은 하청 이외에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오히려 일부 재벌의 경우 지난 10년 동안 시장지배력이 대폭 확대되고 경제력 집중이 사상 최고조에 달할 정도에 이르렀으며, 이들의 영향력은 시장권력 차원을 넘어 정치·행정·사법에 이르기까지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상황까지 초래되었다.

비판으로 그치면 국민 등돌려

다 같이 잘사는 정의로운 사회 건설이 목표인 경실련은 현재 치솟는 청년실업과 극심한 대·중소기업 간 격차, 소득 및 자산 양극화라는 우리 사회의 현실 앞에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 경실련 운동이 우리 사회의 심각한 양극화를 해소하지 못하고 일자리 창출이 뒷받침되지 않는 대안 없는 비판으로만 그친다면 국민들은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경실련은 우리 사회의 선진화를 위한 ‘창조적 대안을 제시하는 21세기형 시민단체’로 거듭나기 위해 진력하고자 한다.

권영준(경실련연구소 이사장·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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