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대통령마다 기념도시 원할 땐? 기사의 사진

“신행정수도 건설을 주제로 내가 지난 대선에서 좀 재미를 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11월 6일 정부 중앙청사 별관에서 열린 신행정수도연구단의 보고회에서 한 말이다. “신행정수도를 반대하면 한나라당이 정치적으로 계속 불리해질 수 있다”는 말도 했다. 당락을 결정할 이슈를 선점해 ‘재미’를 봤다는 자랑 겸, 야당에 대한 압박이었다.

2002년 9월 30일 민주당 선거 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충청권 신행정수도 건설이라는 공약을 내걸었을 때는 ‘변형된 DJP연합’ 효과를 기대했을 법하다. 득표전략으로서는 절묘한 선택이었다. 이에 힘입어 당선된 노 전 대통령의 기분이 한껏 고조되었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위헌결정 났을 때 선회했어야

2004년 1월 29일 그는 정부 대전청사에서 열린 ‘지방화와 균형발전 시대’ 선포식이 끝난 후 참석자들과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천도론’을 펼쳤다. “(역사적으로) 구세력의 뿌리를 떠나서 새 세력이 국가를 지배하기 위한 터를 잡기 위해 천도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수도 이전은 한 시대와 지배권력의 변화를 의미하는데, 이런 큰 변화를 국민이 선택했고 그래서 때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한다”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때부터 천도는 그의 대선 공약을 넘어 역사적 사명이 되었다. 단지 대통령 선거 공약이었다면 2004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을 때 방향을 선회했을 터였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을 대안으로 내놨다. ‘천도’까지는 안 되더라도 그에 버금갈 ‘지배권력 변화의 증거’를 국토와 역사 속에 깊이 각인해두고 싶다는 욕구를 떨쳐내지 못했던 게 아닐까?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지역균형발전’은 행복도시, 즉 세종시 건설의 명분이 되기 어렵다. 어느 쪽 효과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노무현 기념도시’로서는 의미가 있을 것도 같지만 2002년의 노 후보 승리가 기념도시를 세워서 기려야 할 정도로 빛나는 시민혁명 또는 왕조시대의 역성혁명에 버금갈 만큼의 대변혁이었다고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설령 국민 다수가 그렇게 여긴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5년마다 새로운 대통령이 선거 승리를 통해 등장한다. 그들 각자가 기념도시를 원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역간 균형과 상생의 묘책을

수도 기능을 서울에 두고 행정부처의 대부분을 다른 지역으로 옮긴다는 것은 고집이고 억지다. 교통·통신 수단의 발달로 그런 것은 문제가 안 된다고 할 땐 오히려 명분이 더 없어진다. 그렇다면 중앙부처를 각 지역에 골고루 나눠줘야 이치에 맞지 않겠는가. 정작 수도권 과밀화 해소 및 지역균형발전의 해법은 서울 이외 지역에 행정도시를 건설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지방분권화를 확대하는 데 있다. 이게 정직한 대안이다.

오뉴월 곁불도 쬐다 말면 서운하다는데 잘만 했으면 수도가 될 뻔했다가 행정도시도 못 된다는 게 아쉽지 않을 리 없다. 그러나 행정도시만으로는 자족형 도시가 되기 어렵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렇다고 플러스 알파로, 기업도 보내고, 공장도 보내고, 학교도 보내고 해야 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과밀도시를 만들자는 주장이 될 뿐이다.

말 그대로 국가 백년대계로서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용기이고 양심이다. 이미 법으로 정해졌더라도 바람직한 길이 아니면 고쳐야 한다. 개정하지 못할 법은 없다. 첨단 과학·교육도시로 계획을 바꾼다고 해도 해당 지역에 대해서는 엄청난 특혜다.

정부가 내년 1월까지 최종 수정안을 확정하겠다고 하는 모양이다. 이왕 방침이 섰다면 가능한 한 많은 국민의 여론을 들어 수정안을 만들고 손질해야 할 것이다. 그게 세종시도 잘 되고 충청권도 잘 되고 또 여타 모든 지역도 함께 잘 되게 하는 길이다. 상생의 묘리와 묘책을 찾아내어 구현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기를 정부에 기대한다.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