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박병권] 월드컵 키즈와 지도자 기사의 사진

20세 이하 청소년 축구 대표팀에 이어 17세 이하 대표팀도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에서 8강의 위업을 달성했다. 경기 종료 직전에 동점골을 넣고 연장전의 혈투를 벌인 뒤 승부차기에서 강호 멕시코를 무너뜨린 것이다.

이번 청소년 대표들의 잇단 낭보를 놓고 축구 전문가들은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우선 2002년 월드컵 4강 진입 당시 대략 초등학교 3학년에서 6학년 전후였을 이들이 선배들의 성공 신화를 직접 본 남다른 경험이 성공의 동인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확실히 월드컵 창설 이후 처음으로 국내에서 열린 대회에서 세계 축구 스타들의 화려한 기량을 눈으로 확인하고 자란 이들은 이전 세대와 뭔가 달랐다.

축구 선진국들의 자신감을 배운 이들은 운동을 즐겼다. 그렇기 때문에 한 골을 먼저 먹으면 여유를 가지고 두 골을 넣을 줄 알았고 두 골을 먹으면 세 골을 넣을 줄 알았다. 조급해 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배운 대로 착실하게 플레이를 즐기며 느낄 줄 알았던 것이다. 비기면 연장전이 있고 여기서 비길 경우 냉정한 승부차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설사 진다해도 우리만의 플레이, 나만의 플레이를 펼쳤기 때문에 후회하는 법이 없고 아쉬움에 뒤돌아보지도 않는다. 주어진 시간에 나만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고 동료와 호흡하며 플레이 자체를 즐기면 그만이라는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마인드를 갖췄다.

축구는 야구와 달리 선제골의 경기라고 일컬어진다. 한 골을 먹으면 그 게임은 역전이 쉽지 않는 게임이다. 제 아무리 막강한 팀이라 할지라도 한 골을 넣은 뒤 다짜고짜 수비로만 일관하는 상대를 꺾는 것은 쉽지 않다. 흔히 축구 전문가들 사이에서 ‘잠근다’는 은어로 통하는 이 전술을 펼 경우 게임은 재미없을지언정 11명의 선수가 전원 수비수로 변신한 이 팀을 상대로 역전극을 펼치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럼에도 17세의 어린 청소년들이 우승 후보인 멕시코에 선제골을 허용한 뒤에도 기어이 승리를 거머쥔 것은 이 같은 긍정의 정신, 진취의 기상이 이뤄낸 성과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린 선수들의 DNA는 이전 세대와 다르다. 기성세대와 달리 번잡스럽게도 느껴지는 사회발전이론과 갈등에서 벗어나 자기 중심의 인생관과 철학관이 일찍부터 심어졌다. 창의력과 개성이 뚜렷한 자아를 형성할 맹아를 타고났다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기성세대가 겪은 여러 사회 갈등을 직접 보고 경험하지 않았다는 장점이 있었다. 대한축구협회가 2002 월드컵 이후 연령대별로 대표팀을 운영하는 등 체계적인 시스템의 성과가 나타났다는 분석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성과의 상당 부분을 17세 이하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이광종이라는 한 지도자에게 돌리고 싶다. ‘이기는 축구’보다 ‘즐기는 축구’를 강조해온 그는 축구를 재미로 승화시켜 승리를 쟁취하는 장기를 가졌다. 프로팀을 이끌 수 있는 아시아축구연맹(AFC) P급 지도자 자격이 있으면서도 시골을 돌아다니며 초등학교를 졸업할 연령대 선수들을 발굴하며 10년 동안 묵묵히 유소년 지도의 길을 걸어왔다. 화려한 태극 마크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감정 변화가 심한 어린 선수들을 다독거리며 팀을 꾸려 나가는 성실한 모습을 보였다.

20세 이하 대표팀의 홍명보 감독에 이어 우리는 또 한 명의 훌륭한 유소년 축구 지도자를 얻게 됐다. 새벽 졸음을 참아가며 강호를 물리치는 리틀 태극전사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TV로 지켜본 감동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감동의 뒤에는 이들을 키워낸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던 것이다.

박병권 체육부장 bk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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