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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식물 이야기] 숨쉬는 뿌리, 은행나무 유주

[고규홍의 식물 이야기] 숨쉬는 뿌리, 은행나무 유주 기사의 사진

도시의 가로수로 많이 심는 은행나무는 사람과 친밀하다. 요즘은 열매의 냄새로 인해 인기가 많이 떨어졌지만 은행나무의 노란 단풍은 가을 풍경의 상징이라 할만 하다. 하지만 은행의 생존법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특별함이 하나 있다. ‘유주(乳柱)’. 다른 나무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은행나무의 특별한 현상이다.



유주는 하늘을 향해 높이 뻗은 나뭇가지에서 돋아난 일종의 뿌리다. 흙 속에 묻힌 뿌리의 호흡만으로 모자란 숨을 보충하기 위해 허공에 드러난 뿌리다. 석회암 동굴의 종유석처럼 땅을 향해 자라는 유주는 오래된 은행나무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유주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여인의 젖가슴을 닮은 생김새에서 비롯됐다. 경남 의령 세간리 은행나무는 실제로 여인의 젖가슴을 빼닮았다. 그 형태 때문에 오래 전부터 아이를 낳고 젖이 나오지 않는 산모(産母)가 이 나무에 정성을 들이면 젖이 잘 나온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름은 유주지만, 여인의 젖가슴보다 어른 남자의 생식기를 닮은 유주가 훨씬 많다는 것도 흥미롭다. 크기와 모양이 각각이지만, 위에서 아래로 곧게 뻗어 내리다가 끝에서 버섯의 갓 모양으로 마무리한 모습이 그렇다. 그래서 우습기도 하고, 더러는 오래 바라보기에 민망스러운 유주도 있다.

사정이 그러하니 어김없이 그 독특한 생김새에 기댄 전설이 있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충남 태안 흥주사의 900년 된 은행나무 전설이다. 이 나무는 오래 전부터 아들을 낳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많은 여인들이 이 나무에 지극 정성을 들였다.

이 은행나무에 언제부터인가 유주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돌기처럼 나오던 것이 차츰 남자 성기와 같은 모습으로 자랐다. 지금은 30㎝가 조금 넘는 크기까지 자랐다. 사람들은 아이를 낳게 해주는 신통력을 가진 나무의 상징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여자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수컷의 특징이 발현했다는 이야기다.

유주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아이를 낳고 싶은 여인들의 손길을 탄 나무에서 나타난 현상이어서 눈길을 끈다. 사람과 함께 살고 사람의 보살핌을 받기 위해 나무가 펼쳐내는 갖가지 신비한 현상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천리포수목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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