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窓-최광식] 낙관과 비관 사이 기사의 사진

신종 플루 확산과 관련 정부의 대응책이 계속 발표되고 있다. 조심하되 겁먹을 필요가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과연 그런 것인지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올라오는 기사들에 자꾸 눈이 간다. 곧 다가올 수능시험은 전 수험생에 발열테스트를 하고 감염 학생들은 따로 시험을 치른다고 하고 격리시험실 감독교사 선정문제도 이슈다.

정부가 의연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그래서 모두들 불안한 가운데서도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실제 피해자의 수가 독감에 의한 것보다 낮고 지금까지 언론들도 신중한 태도를 견지해 왔다. 모 연예인의 어린 아들이 피해자가 되자 매체들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지만 광우병사태처럼 촛불 들고 모이자고 하지는 않을 것이니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

광우병 촛불시위는 비관론에 경도되어 촉발된 집단심리현상의 하나였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과학기술이 그 진위를 가리는 지혜의 ‘판별식’ 역할을 하기보다는 그 정치공세의 기반을 제공하고 IT기술은 그 수단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낙관론을 좋아한다. 그것을 채택하면 당장 돈이 안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낙관론자들을 ‘긍정의 바이러스’를 전파한다고 치켜세운다. 한편 비관론을 주장하는 자는 대체로 ‘배드 뉴스’다. 나쁜 소식인 것이다. 비관론을 채택하면 예방책을 마련해야 하고, 그것에는 돈이 든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비관론은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광우병 사태는 특정언론들의 정치공세로 비관론이 득세한 경우였지만 대부분 국민들에게 그것은 악몽이었다. 그래서 낙관론이 대부분 지지를 얻는 것이지만, 비관론을 무시하면 나중에 엄청난 비용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그 예가 지구온난화이다. 30여년 전 일부 과학자들이 온실가스에 의한 온난화를 주장했을 때 이것은 학문적인 논의에 머물렀다. 근래에 그 증거가 늘어나고 정치인 앨 고어가 ‘불편한 진실’이란 영화를 만들면서 비관적 전망이 세력을 얻었다. 이젠 모두 지구온난화를 얘기하고 그 주범으로 탄산가스 배출을 지목하며 녹색성장을 이야기한다. 앞으로 지구온난화를 늦추기 위해 들어갈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당시 비관적인 예측을 하고 미리 준비했더라면 더 적은 비용으로 온난화를 늦출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원자력은 어떤가. 1979년 미국 드리마일 원전 사고와 1986년의 구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오랫동안 원전 안전에 대해 감성적 비관론이 우세했다. 이후 소위 원자로심이 녹아내리는 용융사고가 없자 마치 다시 그런 사고는 없을 것이라는 듯 안전을 자랑하며 원자력 르네상스를 외치는 낙관론이, 그런 오늘의 세계 현실이 솔직히 나는 좀 ‘불편’하다.

역사적으로 역병은 종종 크게 만연했지만 과학기술의 발달로 많은 전염성 질병이 인간의 통제 아래 들어왔다. 전문가들은 조류독감이나 변종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이 언젠가 크게 번질 것이라고 경고해 왔고 이번이 그 경우지만, 다행히 지금까지는 피해가 적어 낙관론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는 단편소설 ‘적사병의 가면’에서 창궐하는 역병을 피해 견고한 성으로 피신한 영주의 이야기를 그렸다. 오늘 지구화시대에는 그런 방식의 ‘물리적’ 격리는 불가능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과학자들이 그 치료제와 예방백신을 개발 생산하고 있어 실제적으로 우리가 조심스레 기댈 곳이 있다는 점이다.

미래는 누구나 불안하다. 2012년 지구 종말설이 다시 등장하는 오늘날 낙관과 비관 사이에는, 옛날 우스개처럼 ‘과’자가 있는 게 아니라 신종 플루 치료제와 백신 개발 같은 ‘제대로 된 과학’이 있어서 중심을 잡아주어야 한다. 국민들이 과학에 실제로 기대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게 아니겠는가.

최광식 원자력안전기술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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