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동 칼럼] 박근혜 탓할 일 아니다 기사의 사진

이제 논점은 어떤 세종시를 만드느냐가 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며칠 전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을 만나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이런 말을 했다. “언론에서 친이·친박이라고 하는데 친이가 어딨나. 대통령이 된 이상 파벌이나 세력이 있겠는가. 오로지 나라 잘 되는 것만 생각한다.” 원론적으로 맞는 말이고, 현직 대통령으로서의 여유까지 얼핏 느껴진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직 때인 2005년 “수도 분할은 이전보다 더 나쁘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선을 치른 2007년에는 “계획이 확정됐기 때문에 행복도시는 차질없이 잘 추진돼야 한다”고 했다. 그가 서울시장 시절의 소신을 지켰어도 대통령이 됐을지는 알 수 없으나 세종시에 관한 한 심은 대로 거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엊그제 보도된 국민일보·동서리서치의 세종시 관련 여론조사결과는 ‘원안(9부2처2청 이전) 수정’ 지지 59.4%, 박근혜 의원이 제기한 ‘원안+알파’ 지지 23.2%였다. 대선후보 적합도에서는 박근혜 1위(34.9%)에 이어 2위 손학규(6.1%), 정몽준, 이회창, 유시민, 오세훈 정동영, 한명숙, 김문수, 정운찬, 정세균(0.4%) 순으로 조사됐다.

그 전날 공개된 중앙일보 여론조사의 항목별 지지 결과는 ‘원안 고수’ 24%, ‘원안+알파’ 34%였다. ‘원안 수정’은 36%로 ‘원안(+알파)’에 크게 못미쳤다. 최근의 다른 몇몇 여론조사결과는 모두 중앙일보 것에 가까웠다. 즉, ‘원안(+알파)’ 쪽에 여론이 더 호응했다.

“경쟁자를 위해 살신성인도 마다하지 않은 거룩한 정치인이 있었던가”

세종시 원안 수정에 드라이브를 건 정부·여당과, 각양의 계산으로 동조하는 개인·집단들의 언행에서 박근혜 의원은 세종시 논란의 원흉 쯤으로 읽힌다. 대개, 박근혜만 조용하거나 수정론에 합류하면 만사형통인데 고집불통이어서 문제라는 식이다.

세종시 논란의 진앙(震央)으로 박근혜 의원을 지목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보인다. 주로 정치적 득실에 따라 지금 박근혜 반대쪽에 선 사람들은 험담을 넘어 악담으로까지 비판수위를 높인다. 사욕을 위해 지역주의에 기댄 기회주의자 탈당하면 역사의 죄인, 표를 의식한 전형적 포퓰리즘 등이 그런 예다. 우리 정치풍토에서 이건 사돈 남 말 하는 격이다.

세종시 논란 원조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당시의 집권당이다. 2002년 대선 때의 천도 공약이 2003년 위헌 판정, 2005년 세종시법 통과, 2007년 대선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세종시 원판 손질이 불가피하게 된 것은 여·야 정치인 공동책임이다.

사욕, 지역주의, 포퓰리즘에서 자유한 정치인은 아직 없다. 세종시 수정을 주도하는 당·정·청의 대의명분 또한 배경까지 순수한지는 짚어볼 일이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인 정치판에서 경쟁자측에 입장을 바꾸라는 것은 전장에서의 항복 요구나 같다.

인민재판이 연상되는 상황을 조성해가면서 박근혜 의원에게 양보를 압박하는 것은 비겁한 술책이다. 그런 아량을 강요하는 것은 정치인 박근혜더러 성녀(聖女)가 되라고 주문하는 것과 한 가지다. 경쟁자를 이롭게 해주기 위해 살신성인도 마다하지 않은 거룩한 정치인은 혹 있었던가.

박근혜 의원이 정치밑천이라 할 신뢰·원칙주의를 잠시 허물고 대승적으로 세종시 수정에 동참하면 칭송이 쏟아질 것이다. 동시에 경쟁자들에게 무기를 선물한 셈이 된다. 그래서, 대선후보 경선이나 본선에 나가면 무슨 낭패를 당할지 삼척동자도 안다.

‘원안+알파’가 박근혜 의원의 신념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현재로서 압도적 우위의 예비 대선주자에게 앞날이 뻔한 선택을 종용하면 생산적 논의가 불가능하다. 가까이 2008년 총선 공천과정에서 친박이 공중분해될 뻔했던 악몽을 처절하게 겪은 그를 닦달하는 것은 무리다.

세종시 열쇠는 박근혜에게만 있지 않다. 박근혜의 방어본능을 극도로 자극했던 사람들에게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거기에 적합한 환경부터 만드는 게 순서다. 그럴 여유가 없으면 스스로 방도를 찾아 결과를 놓고 함께 평가받으면 된다.

편집인 jerome7@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