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서울 생활의 전형,북촌을 재발견하다 기사의 사진

‘서울, 북촌에서’/김유경/민음인

“‘북촌’은 보통 이르는 삼청동과 가회동 일대 어느 한정된 지역이라기보다 친근한 숨은 힘 같은 것이 느껴지는 서울 생활의 한 전형이다.”

책을 펼치면 겉보이기에 수백 개 골목길에 불과하지만 서울 사람이 갖는 감수성의 맥을 따라 서울 북촌을 누비고 있는 중견 언론인 출신의 저자 김유경의 발걸음이 들리는 듯 하다. 동행자는 사진가 하지권씨다. 2003년 이래 삼청동에서 성북동까지, 서울 성곽에서 언더그라운드 미술공간까지 북촌 골목 구석구석에 아로새겨진 근대의 기억을 더듬는 취재 수첩과 카메라는 북촌의 과거와 오늘의 일상을 연결시켜주는 심상의 이미지를 낚아올린다. 세종문화회관을 설계한 건축가 엄덕문, 원로 법학자 고 최태영 박사, 조선 마지막 황후의 후손 윤흥로씨 등 근현대사의 증인들이 들려주는 육성은 책갈피를 더욱 빛낸다.

누구라도 이 책을 펼치면 근현대사에 깊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 예로 순종효 황후의 송현동 친정집이 일제 강점기 일본 식산은행의 관사 터로 팔렸다가 해방 이후 미국 대사관 직원 관사가 들어섰고, 지금은 삼성 그룹 소유의 빈터가 된 사실은 그 자체로 시대의 흐름을 증언한다. 고종 때의 참정대신 한규설 대감 집은 작게 쪼개져 1960년대 음식점과 인쇄소, 살림집들이 한 칸씩 차지했다. 궁과 고래등 같은 양반집들은 사라지고 1930년대 지어진 근대 도시 한옥들이 자리를 채웠다.

북촌은 예술가들이 논쟁하고 꿈을 펼치는 중심지이기도 하다. 한국무용가 공옥진의 1인 창무극이 초연되었고, 1978년 김덕수 사물놀이가 배태된 건축사무소 ‘공간’ 지하 소극장의 전성기 역시 북촌에서 펼쳐졌다. 춤꾼과 대학 교수, 백남준 같은 문화계 스타들이 비좁은 자리에 어깨를 맞대고 앉아 춤사위와 풍악을 음미하는 모습도 고스란히 재연된다.

저자는 “관광객의 시선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오래된 서울 사람의 사는 모습이 깊디깊은 문을 지나 섬광처럼 보일 때가 몇 번 있었다”고 적었다. 그의 말처럼 북촌의 재발견은 역사의 내면과 산책자의 내면을 일치시키는 과정이다(민음인·1만8000원).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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