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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종 칼럼] 中原에서 사슴을 쫓다

[백화종 칼럼] 中原에서 사슴을 쫓다 기사의 사진

강호(江湖)의 군웅(群雄)이 할거(割據)하여 중원(中原)에서 사슴을 쫓고 있다. 강호의 군웅이 할거한다 함은 나름의 세력을 가진 이들이 모두 나서 제 주장을 폄을, 중원에서 사슴을 쫓는다 함은 나라 한복판에서 대권을 쫓고 있음을 뜻한다. 여기서 중원의 사슴이 대권에 비유되는 것은 고대 중국의 중심지였던 중원에 위치한 주(周)나라 왕권의 상징이 사슴이었던 데서 유래한다. 군웅이 사슴을 쫓는 데는 끼리끼리 세로로 손을 잡는 합종책(合從策)과 가로로 손을 잡는 연횡책(連衡策)이 모두 동원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대권을 꿈꾸는 자 모두 나서다

춘추전국시대 중국의 얘기가 아니다. 무협소설의 내용은 더더욱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 한 가운데에서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종시 논란이 영락없이 그 형국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업은 정운찬 총리가 먼저 세종시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고 깃발을 들자 이에 맞서 정세균 민주당 대표,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원안 관철, 결사항전의 격문을 붙이며 봉기했다. 곧 이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정 총리 토벌을 외치고 나섰다. 며칠 전에는 그동안 침묵하던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도 “행정부처를 분산시키는 것은 국가 운영 면에서 비효율적”이라고 수정파에 가세했다. 이에 빠질세라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지사도 금명간에 할거하는 군웅의 대열에 본격 합류하리라는 전망이다.

이쯤 되면 손학규, 정동영 그리고 혜성같이 등장할 다크호스 등 두세 사람을 빼고 차기 대권을 향한 리그전의 출전 선수 엔트리가 대충 정해졌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물론 대권이라는 궁극적 목표는 각자 다르지만 이렇게 엔트리에 명단이 올라 있는 군웅들은 각자의 당면 이해에 따라 일단 합종도 하고 연횡도 한다. 합종책이 가장 강했던 진(秦)나라에 맞서기 위해 약소 6개국이 손을 잡는 전략이었다는 고사에 비춰보면 지금 가장 강한 건 역시 박근혜이므로 그에 맞서는 정운찬 정몽준이 합종책을 쓰고 있으며, 여기에 오세훈과 김문수가 합세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정세균, 이회창은 박근혜와 연횡책을 쓰고 있는 셈이다.

대권을 꿈꾸는 정치 지도자들이 세종시 문제와 같이 국가 중대사에 대해 각자의 소신을 피력하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경륜과 정치적 역량을 국민 앞에 보여주고 하나씩 검증을 받아가는 것이 민주정치의 바른 과정일 것이다. 자신의 소신을 숨긴 채 여론과 대세의 흐름이나 살피는 기회주의적 처신은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사슴을 쫓는 자 토끼는…

지도자들은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자신의 견해를 국민 앞에 소상히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뚜렷한 소신을 갖는 것과 함께 국민을 설득하는 능력을 갖는 것은 대권과 직결되는 요소일 뿐 아니라 국가 최고지도자가 됐을 때 국민 통합을 이끌어내는 데도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은 동시에 상대의 의견 경청을 기피하지 말아야 한다. 설령 상대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내 주장을 상대가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대화는 필수적이다. 내가 할 말은 다 해 더 이상 보탤 말이 없다며 일체의 공식·비공식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민주적 지도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주 이 난에서도 얘기했지만 세종시 원안파나 수정파 모두 여기서 완승을 거두려 하기보다는 지도자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더 좋은 방안이 없는지 함께 고민하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 백년대계라는 세종시 건설이 실패로 돌아가서도 안 되고, 이로 인해 국론이 둘로 갈라져서도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의 조화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며 어느 한쪽이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는 것도 개인적으로 불행한 일이며 국가적으로도 손실이기 때문이다.

중원의 사슴 얘기로 시작했으니 그 얘기로 글을 막아야겠다. 고사에 사슴을 쫓는 자 토끼를 돌아보지 않는다(逐鹿者不顧兎)고 했다. 대권을 쫓는 자가 사소한 이익에 얽매이지 말라는 경구다. 토끼에 집착하다 보면 사슴을 놓치는 수가 있다.

전무이사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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