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용 칼럼] 세종시 해법 ‘빅딜’은 없나 기사의 사진

2003년 11월 초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언론사 간부들과 팀별로 청와대 만찬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자고 나면 대형사고가 터져 밤에 잠들기가 겁날 정도”라고 토로하며 국정운영에 언론의 협조를 요청했다. ‘적대적 언론관계’를 ‘건전한 긴장관계’로 전환하자는 제안과 함께. 주량이 소주 반 병 정도였던 그는 그날 와인을 일곱 잔이나 마셨다. 오래 못 가 언론관계는 다시 악화됐지만 몇 달간은 보수언론들도 공격의 수위를 낮췄다.

꼭 6년 후인 이달 초 이명박 대통령도 언론사 간부들과 청와대 오찬을 갖고 세종시 등 국정현안에 대한 입장을 피력하며 협조를 구했다. 언론 설득, 1단계 사전 정지작업이었다.

그제 세종시 대안 심의기구인 민관합동위원회가 출범해 수정안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세종시법을 행정 중심에서 기업 중심으로 개정한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민간위원 16명 중 확실한 세종시 원안 찬성파는 3∼4명에 불과해 수정안 채택은 뻔하다. 수정안이 확정되면 정부 여당은 법 개정을 위한 여론 홍보전에 총력을 쏟을 것이다. 2단계 정면돌파 전략으로, 이쯤 되면 세종시 는 루비콘 강을 건너는 셈이다.

세종시 논란의 본질은 ‘명분’ 대 ‘국익’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원안(+α)고수 측의 ‘명분’은 국토균형발전과 전·현 대통령의 약속이라는 신뢰가 핵심이며, 수정안 측의 ‘국익’은 국가백년대계를 위해 수도 분할과 유령도시는 안 된다는 논리다. “대선에서 재미 좀 봤다”고 노 전 대통령이 발언했듯이 세종시 건설은 대선전략 중 하나였을 뿐이다.



"노무현 정권 때의 탄핵 역풍, 대연정 후폭풍에서 교훈 얻어야”

국익 대 명분 싸움은 4대강도 닮은꼴이다. 세종시 원본인 천도(遷都)가 행복도시로 변질됐듯, 4대강 사업도 대운하 공약 축소판이다. 홍수예방·수질개선이라는 ‘국익’과 환경오염·예산낭비라는 ‘명분’이 맞서 있다. 정치권 공방에는 ‘제2의 청계천’이라는 시각이 깔려있어 정권이 바뀌면 4대강도 세종시처럼 변경될 수 있다. 국가 대사가 정권에 따라 수정돼 일관성을 잃으면 국론 분열과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져 큰 폐해를 낳는다.

세종시 해법은 전 정권을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현재 여론은 원안과 수정안이 팽팽히 맞서는 형국이다. 국토도시계획학회 전문가 38명 설문조사에서도 50대 50이었다.



수정안이 성공하면 총선 압승을 불렀던 전 정권의 ‘탄핵역풍’처럼, 현 정권은 국정운영에 강력한 추동력을 확보할 것이다. 하지만 세종시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존재감을 되살리려 혹한의 거리로 나선 야당들은 물리적 저지에 나설 것이다. 수정안이 실패할 경우엔 대연정 충돌이 가져왔던 후폭풍처럼 친이-친박 분당 상황까지 번질 수 있다. 전 정권의 이 같은 교훈은 세종시 해법의 3단계다. 박근혜 전 대표의 주문처럼 충청권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획기적 대안이 마련되기를 희망할 뿐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주말 싱가포르 동포기업인 간담회에서 “인기에는 관심 없다. 선진국 기초를 닦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선거로 민주적 정통성을 확보한 만큼 국가 미래를 위한 대통령의 결단이라면 추진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평가는 역사에 맡기면 될 것이다.

“미국 정치의 안정성은 ‘신뢰’에서 나온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제도와 법에 반영된 일련의 가치와 원리에 의해 지배될 것이라는 점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신뢰는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므로 신뢰가 없다면 위험을 감수할 수 없고, 혁신도 구현할 수 없다.”(토머스 프리드먼 ‘세계는 평평하다’)

국격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려면 국익과 신뢰가 수레의 두 바퀴처럼 조화를 이루고 함께 가야 한다. 남북문제, 노사문제, 한·미 FTA 등 국론통합이 시급한 주요 국정이슈들이 산적해 있다. 야당이 4대강 공사를 3년에서 4년으로 늦추고 교육과 복지 예산을 늘리는 빅딜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도 있다. 세종시 해법에는 왜 ‘원안(+α) 대 4대강+α 빅딜’ 같은 것이 없는지 안타깝다.

이형용 수석논설위원 hy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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