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갔다오니 대학이 사라졌다… 아시아대 77억원에 2차 경매, 오갈데 없는 학생들 ‘울분의 5년’ 기사의 사진

2004년 봄 대구 경북고 진학상담실. 당시 고3 박창민(가명)군이 아시아대학에서 찾아온 교수와 마주 앉았다.

“성적은?”(교수)

“중하위권이에요.”(박군)

“우리 학교는 작년에 생겨서 지원자가 많지 않거든. 수시전형에 원서만 내면 붙을 텐데. 어차피 수능 망치면 전문대밖에 못 가잖아?”(교수)

“…”(박군)

“대구에 한방 바이오밸리 생긴단 얘기 들었지? 우리 학교 한약자원학과가 뜰 거야. 신설대학이라 교수가 되기도 쉽고.”(교수)

통상 강당에서 학생 수백명을 상대로 열리는 대학 설명회와 달리 아시아대학 ‘입학상담회’는 3학년생과 교수의 1대 1 면담이었다. 박군은 이 대학 한약자원학과 2005학년도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재학 기록 모두 사라져

“제대하고 집에 갔더니 가족이 이사 가 버렸다, 시시한 농담이잖아요. 근데 현실이 되더라구요. 2학년 마치고 입대해 올 3월 제대했는데 학교가 사라졌어요.” 학적부를 비롯해 박군의 재학 사실을 입증할 기록도 몽땅 없어졌다.

아시아대학은 2003년 경북 경산시 여천동 산자락에 문을 열었다. 첫 해 141명, 2004년 169명, 2005년 339명, 2006년 161명 등 810명이 입학했다. 중국 유학생도 80여명 유치했다. 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는 2007학년도 신입생 모집을 중단시킨 뒤 지난해 2월 학교를 폐쇄했다.

지난달 21일 대구지방법원. 이 대학 부지 12만㎡, 건물 1만2577㎡, 캠퍼스 나무 수백 그루가 경매에 나왔다. 아시아교육재단에 돈을 빌려준 개인 채권자 8명이 경매를 신청했다. 감정가는 110억6400만원, 1차 경매는 유찰. 20일 77억4500만원에 2차 경매가 진행된다.

대학이 통째로 경매되긴 처음이다. 이 학교에 다녔던 학생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도대체 이 대학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175억원짜리 대학의 시작

2002년 11월 교육부 사립대학지원과. 한 직원이 아시아대학 재단 관계자와 대학 설립에 필요한 서류를 최종 점검했다.

“통장은 가져오셨죠?”(직원)

“예, 여기…. 50억원 들어 있습니다. 이건 부동산 63건 팔아 125억원 출연한 증명서구요.”(재단 관계자)

다음달 13개 학과에 모집정원 230명으로 설립허가를 받아 2003년 개교했다. 설립자 김모(53)씨가 설립 이사를 맡고, 초대 총장으로 김정위 전 한국외국어대 부총장을 영입했다.

출발은 좋았다. 한약자원학과는 정시모집 경쟁률이 3대 1을 넘었다. 태권도학과 경호학과 축구부도 4년 전액 장학금 등 파격 조건을 내걸어 우수 학생 스카우트에 성공했다.

그러나 박군이 입학한 2005년, 총장이 공동 설립자 박모(53)씨로 바뀌어 있었다. 강의실로 쓴다던 건물은 완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모든 학과 수업이 본관에서 진행됐다. 교무과 학생과 등 사무실에선 다투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교직원 월급 체불 때문이었다.

교수 1명당 약 1억원… 채용비리

“한 전문대 이사장에게서 대학 설립 노하우를 전수받아 아시아대학을 차렸다더라고.”

“이 지역에서 꽤 큰 건설업체와 연결돼 있다던데….”

공동 설립자 김씨와 박씨는 같은 전문대 교수 출신이다. 기자가 만난 이 대학 교수와 학생 중 두 설립자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투서와 진정 끝에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2005년 9월 김 이사와 박 총장은 배임수재 혐의로 1심에서 각각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교수 49명을 채용하며 모두 47억60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였다.

교육부 감사 결과, 설립 당시 제출한 통장에선 바로 이튿날 50억원이 고스란히 빠져나갔다. 돈을 빌려 잠시 통장에 넣었다가 바로 빼낸 것이었다. 재산출연증서도 가짜였다. 이후 학교 운영자금은 교수 채용 사례비로 충당했다.

중국 유학생 ‘장사’

2006년 2학년이 된 박군의 목표는 단 하나, 2학년 과정을 마치는 것이었다. 그래야 다른 학교로 편입할 수 있다. 3, 4학년생은 앞다퉈 편입을 시도했다. 갈수록 학생이 줄어 수입이 감소하자 재단은 중국인 유학생 유치에 나섰다. 그해 중국 학생 80여명이 입학했다.

“감사를 나가 보니 중국 유학생이란 게 1인당 일정액을 받고 학생비자를 발급받도록 서류를 만들어주는 장사였어요. 중국 학생들은 입국 후 대부분 학교에 나오지 않고 취업했어요. 국제적 망신을 당할 뻔한 거죠.”(교육부 담당 직원)

박군이 2학년을 마치고 입대하기 앞서 교육부는 2007학년도 학생 모집을 중단시켰다. 학교가 폐쇄될지 모른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총학생회를 비롯해 학생들은 보직교수 연구실을 찾아다니며 시위를 벌였다.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교수와 강사들은 무단으로 결근했다.

축구부와 2학년의 충돌

“강의실을 부수면 어떡해요, 수업은 해야지!”(2학년 대표)

“다 사기꾼인데 수업은 무슨….”(축구부 주장)

2007년 봄 축구부원들이 학교 집기를 부수며 실력행사에 나섰다. 다른 대학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하고 전액 장학금을 받으려 이 대학에 진학한 축구부원들은 전과도, 편입도 어려웠다.

2학년 과정을 마쳐야 편입할 수 있었던 2학년생들이 말리고 나섰다. 양측은 몸싸움까지 가는 충돌 끝에 연구실 실험실 강의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신사협정’을 맺었다.

점점 ‘유령학교’가 돼 갔다. 건축이 중단된 건물에선 철근과 기자재가 통째로 도난당했다. 교직원들이 출근을 포기하면서 본관도 도난 사고가 잇따랐다. 사무실 집기도 성한 게 별로 남지 않았다. 지난해 2월 결국 학교 폐쇄 결정이 내려졌다.

‘유령’이 된 학생들

폐쇄된 대학의 재단은 교육 당국에 ‘학생 처리 대책’을 제출해야 한다. 아시아대학은 거꾸로 관련 서류를 폐기했다. 검찰의 추가 수사를 우려한 재단 관계자 상당수가 잠적했고, 컴퓨터는 대부분 도난당해 박군의 2년간 학업을 입증할 기록이 없었다.

피해 학생이 속출하자 뒤늦게 교육과학기술부가 나섰지만 헛수고였다. 교과부 담당 직원은 “재단 사람들과 여러 차례 만났는데, 얼마나 악랄했던지, 남아 있던 컴퓨터도 기록은 다 지운 뒤였다. 멱살 잡고 싸웠지만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지난 2일 아시아대학 교정에서 만난 박군은 담담하게 설명했다.

-올 3월 제대 이후 어떻게 했죠?

“몇몇 교수님이 개별적으로 학생들 성적 매긴 걸 갖고 계셨어요. 교과부가 이런 비공식 자료를 취합해 국립대인 경북대에 우리 학적관리를 위탁했죠. 그 자료로 금오공대에 편입을 신청했어요.”

-편입이 됐나요?

“정식 기록이 아니라서 안 된다더군요. 이 대학에서 분명히 2년간 공부했는데….”

-그래서요?

“교과부가 인근 산업대학 등 몇 곳을 설득해 저랑 몇 명은 편입이 됐는데, 교수님들이 그런 자료를 찾아주지 않은 학과는 도리가 없었어요. 또 편입이 돼도 취업이나 대학원 진학을 하려면 4년간 성적증명서가 필요하잖아요? 그걸 받을 길이 없어요.”

아시아대학은 버스도 다니지 않는 좁은 길을 차로 10여분 달리자 산 중턱에 덩그러니 드러났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대학교’란 슬로건이 새겨진 정문을 지나니 콘크리트 건물 두 동에 작은 운동장과 농구코트 하나가 전부다.

‘죄 지은 자 법의 심판을!’ ‘몰아내자 사기꾼, 가짜박사!’ 건물 벽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휘갈긴 구호는 격했다. 본관 출입문은 합판을 덧대 못질한 채였고, 타이어 바람이 빠져 기우뚱 서 있는 축구부 버스에는 노란 압류딱지가 붙어 있다.

박군처럼 아시아대학을 선택한 ‘죄’로 애태우는 학생은 몇 명이나 될까. 정답을 아는 곳이 없었다. 교과부도, 재단도, 같은 처지의 학생도 모른다고 했다. 2007년 등록학생 200여명, 같은 해 2월 배출된 첫 졸업생 51명, 중간에 휴학한 학생들, 아직 군대에 있는 학생들 중 상당수가 대학생활 기록을 찾아 헤맨다. 지금도 교과부에는 이들의 문의전화가 이어지고 있다.

경산=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