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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임한창] "얼마나 추우셨나요"

[삶의 향기-임한창]

성탄절이 한 달 남짓 남았다. 성탄절은 역시 좀 추워야 제 맛이다. 성탄절 즈음이면 떠오르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 강풍과 한파와 아기 울음소리와 어느 어머니의 사랑이 소재다. 십수년 전 처음 이 스토리를 접했을 때는 콧등이 시큰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감동이 조끔씩 희석되는 느낌이 들어 안타깝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한 젊은 여인이 아기를 안은 채 산을 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날따라 강풍과 폭설이 매섭게 휘몰아쳤다. 하얀 눈이 길을 순식간에 지워버렸다. 겨울의 태양도 산 너머 본가로 일찍 귀가해 버렸다. 여인은 길을 잃은 채 방황하다가 눈 속에 묻히고 말았다.

이튿날 구조대가 아기를 안은 여인의 모습을 한 눈사람을 발견했다. 그런데 눈사람 속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눈을 털어내자 그 속에서 여인의 나신이 드러났다. 여인은 자신의 옷을 모두 벗어 아기의 몸을 감싼 채 동사(凍死)했다. 아기는 살았다. 어머니의 숭고한 희생과 사랑이 아기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그 아이가 자라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축제 같은 날, 숙부는 오랜 세월 가슴에 묻어두었던 그 위대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청년은 혹한의 겨울에 어머니 무덤을 찾았다. 자신의 외투와 양복과 속옷을 하나씩 벗어 무덤을 덮었다. 청년은 벌거벗은 몸으로 무덤을 껴안으며 울부짖었다.

“어머니, 그때는 지금 저보다 훨씬 추우셨지요? 어린 핏덩이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생명을 내던지신 어머니의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하나요.”

그 위대한 어머니로 인해 생명을 구원받은 사람은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 1차 세계대전 때 영국 군수장관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영국 사회보장 제도의 기초를 확립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절망에 처한 영국인들을 향해 던진 메시지는 지금도 영국인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여러분, 큰 걸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작은 두 걸음으로는 협곡을 건널 수 없습니다. 위기의 골짜기를 건너려면 반드시 큰 걸음이 필요합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와 그를 껴안은 채 동사한 어머니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 어머니는 어쩌면 2000년 전,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의 모습과 흡사하다. 세상은 이처럼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아름다워진다. 사람들은 모두 상대의 희생만을 요구한다. 내가 희생의 촛불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마구간에서 초라하게 태어난 그 아기로 인해 암흑의 세상은 희망의 땅으로 변하지 않았는가.

이제 곧 거리는 성탄절과 송년 분위기로 흥청댈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른다. 성탄절의 진정한 주인공이 누군인지를…. 성탄절의 주인공은 단연 예수님이다. 산타클로스나 크리스마스 트리나 성탄카드는 장식품에 불과하다. 주인공이 불참한 파티는 공허하다. 감동도 없다. 아기 예수가 실종된 성탄절은 영롱한 빛을 잃어버린 보석과 같다. 이번 성탄절은 주인공의 이름이 빛나야 한다. 주인공이 파티의 중심에 자리해야 한다. 청중들은 주인공을 정중히 맞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준비하고 기다리지 않으면 귀한 줄을 모른다.

경제가 어렵다. 젊은이들의 취업도 걱정이다. 각종 사건사고가 줄을 잇는다. 설상가상 전염성 강한 치명적인 바이러스까지 창궐하고 있다. 세상이 너무 어수선하다. 그래서 올 성탄절은 주인공의 존재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으면 한다. 왜? 그분만이 인류의 희망이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빗장을 잠그는 법이 없으니까.

임한창 종교국장 hc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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