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염성덕] 착한 촌지,미운 촌지 기사의 사진

어부들은 새벽에 만선으로 돌아왔다. 다양한 생선을 양동이에 조금씩 담고 나머지를 팔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녀들의 담임교사 집으로 찾아갔다. 사립문의 방울을 흔들어 담임교사를 깨웠다. 담임교사는 두 손으로 눈을 비비며 양동이를 받았다. 어부들은 담임교사의 잠을 설치게 한 것이 못내 미안했다. 이튿날부터는 뚜껑을 닫은 양동이를 담임교사 집 앞에 놓고 갔다.

세 식구로서는 어부들이 챙겨 주는 생선을 처치할 방법이 없었다. 뒤뜰에 땅을 파고 생선을 묻다가 학부모에게 들켰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동료 교사에게 고충을 토로했더니 생선을 말려 지인들에게 선물로 보내란다. 뜻하지 않게 건어물을 받은 지인들은 감사 편지를 보냈다. 15년쯤 전에 취재한 어촌의 촌지 풍경이다. 학부모들과 교사의 관계가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다.

목사가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에는 ‘祝 壯途’라고 쓰여 있었다. 눈짓으로 물었다. 미성(微誠)이라고 했다. 미화로 100달러란다. 아프리카에 가면 쓸 일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케냐와 탄자니아에 파견된 선교사들의 활동을 취재하러 가는 길이었다. ‘형님’ ‘아우’ 할 정도로 친했지만 완곡하게 거절했다. 목사는 상당히 섭섭해했다. 화까지 내려고 했다.

단기선교팀과 오지로 출장을 가기 때문에 여비도 충분히 마련하지 않았다. 마사이족을 비롯해 찢어지게 가난한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도 가난했다. 들르는 곳마다 조금씩 기부를 했다. 하지만 호주머니는 금방 바닥났다. 그때 봉투를 받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100달러를 받아서 5달러, 10달러짜리로 바꿔 가는 데마다 기부했더라면 마음이 덜 불편했으리라.

국립공원을 크게 훼손한 기업체 간부가 삐삐로 호출했다. 출입처 근처까지 왔는데 만나자는 것이었다. 삐삐를 꺼버렸더니 출입처 기자실로 전화했다. 가방을 챙겨 신문사로 돌아왔다. 이튿날 신문사 부근의 커피숍으로 찾아왔다. 국립공원 훼손 현장이 보도되면 잘린다며 막무가내로 만나자고 했다. 데스크에게 보고하고 커피숍으로 갔다.

다짜고짜로 봉투를 내밀었다. 한사코 거부하자 탁자 위에 던져놓고 휑하니 가버렸다. 용무가 있어서 온 사람이 찻값도 내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 두어 시간 후에 전화해서는 백지상품권이라고 했다. 자기네 회사가 운영하는 매장에서 양복을 살 수 있는 상품권이란다. 봉투를 열어 보지도 않았다. 데스크에게 보고하고 등기우편으로 보냈다. 그 간부는 두어 달 후에 기사를 부탁하러 전화했다가 등기우편은 잘 받았다고 했다.

김준규 검찰총장이 지난 3일 기자간담회를 겸한 회식자리에서 봉투를 돌렸다. 추첨을 통해 1차 회식자리에서 8명, 2차 회식자리에서 2명에게 건넸다. 봉투에는 50만원씩 들어 있었다. 김 총장이 뇌물이나 청탁의 대가로 봉투를 돌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가 불거지자 김 총장은 지난 6일 대검 대변인을 통해 “사려 깊지 못한 행동으로 본의와 달리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대검 측은 “이것은 촌지가 아니다. 처음부터 준비한 게 아니라 김 총장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순간적으로 한 일이다. 서울 서부지검을 격려방문한 뒤 남은 돈(특수활동비)으로 추첨한 것이다. 김 총장이 자비로 보전한다고 했고 개인적으로 모두 돈을 보전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총장은 기분 내키는 대로 일을 처리하는 직책이 아니다. 특수활동비를 쓰고 자비로 메우는 편법을 써도 되는 자리는 더더욱 아니다. 검찰총수는 언행 하나하나에 국민의 시선이 쏠리는 막중한 자리다.

염성덕 사회부장 sdyum@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