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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종 칼럼] KBS 사장 논란의 해법

[백화종 칼럼] KBS 사장 논란의 해법 기사의 사진

국영이나 공영 방송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얘기할 때면 으레 인용되는 게 영국의 BBC, 일본의 NHK, 독일의 ZDF 등이다. 또 이들의 중립성이나 공정성과 관련하여 맨 먼저 거론되는 게 사장 등 방송사 최고 책임자들의 초당파적 선임이다.

그러면 이 방송사들은 과연 중립성이나 공정성에서 우리의 공영방송들이 모델로 삼을 만큼 완벽한가. 자료들을 보면 그렇지도 못한 것 같다. 예컨대 BBC의 경우, 2003년 영국의 이라크 참전 비판 프로그램을 내보낸 이후 그렉 다이크 사장이 블레어 정권에 의해 퇴출당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2001년에는 게이빈 데이비스 신임 이사장이 집권 노동당 당원이어서 중립성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또 핵심요직인 이사장, 부이사장, 사장직은 정당 간에 나눠먹는 게 다반사라 한다. ZDF도 정치권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각계 인사 77명으로 구성되는 시청자평의회가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사장을 뽑도록 돼 있으나, 정당 간의 이해 상충으로 사장 선임이 몇 차례씩 늦춰지는 등 진통을 겪기도 한다. NHK 역시 종군위안부 프로그램이 정권의 압력으로 축소, 왜곡됐다는 관계자의 폭로가 있었다.

선진국에도 시비는 있다

이처럼 국·공영 방송사의 책임자 선임 등을 둘러싼 정치적 중립성을 놓고 시비가 있는 건 선진국이라 해도 별수가 없는 모양이다. 다만 이들 나라와 우리나라 사이엔 상당한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과문한 탓이겠으되 우리처럼 신임 사장의 전력이나 성향 등을 문제 삼아 여야가 정면충돌하고 노조가 파업 등 극한투쟁을 하는 경우가 또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번 KBS 사장 선임을 놓고도 예외 없이 진통을 겪고 있다. 김인규 사장 후보가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 것을 놓고 야당, 일부 언론단체, KBS 노조 등이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KBS 내에서도 노조와 뜻을 달리하는 세력이 만만치 않아 KBS가 내부 갈등 양상마저 보인다고 한다.

이러한 진통과 갈등이 시청자의 신뢰를 떨어뜨려 공영 방송으로서의 제 기능을 발휘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건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사장이 바뀔 때마다 통과의례처럼, 특히 정권이 바뀔 땐 더 심각해져 정치적·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는 이 문제는 방송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선진화를 위해서 해법이 강구돼야 한다. 이 문제는 물론 사장 개인과도 관련이 없지 않으나, 그보다는 우리 공영방송에 관한 법과 제도, 즉 구조적인 것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더 강하다. 구조적인 것에서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개인보다 구조가 문제다

관련법 등에 따르면 KBS 사장은 KBS 이사회에서 제청하여 대통령이 임명토록 돼 있다. 이처럼 사실상 사장 선임권을 가진 KBS 이사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제청하여 대통령이 임명한다. 또 KBS 이사 제청권을 가진 5인의 방송통신위원은 대통령이 위원장을 포함하여 2명을 지명하고 여당이 1명, 야당이 2명을 추천하도록 돼 있어, 여권이 과반수인 3명의 위원을 차지한다. 이러한 구조에 의해 결국 여권이 KBS 이사 일부(현재는 11인 중 4인)를 야권에 할애한 뒤 과반수(현재는 7인)를 갖고 사장을 선임하기 때문에 KBS 사장은 이변이 없는 한 친여 성향의 인사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KBS 사장 선임에 따른 논란을 줄이려면 사장 선임 과정에 정치권이 개입할 여지를 최소화해야 한다. 차제에 사장 개인에 대한 진퇴 논란보다는 정치권이 빠지는 대신 각계의 중립적이고 전문적인 인사들로 구성되는 사장선임기구를 두는 방안을 마련토록 정치권, 언론단체, KBS 등이 머리를 맞대는 게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싶다. 여권이 방송 장악 의도를 버려야 함은 물론이며, 야당도 방통위원과 KBS 이사 일부를 할애 받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근본적인 제도 개선책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현 제도 하에서 친여 성향의 인사가 KBS 사장을 맡는다고 탓하는 건 콩 심은 밭에서 왜 팥이 안 나느냐고 따지는 격이다.

백화종 전무이사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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