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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식물 이야기] 나무가 바라본 사람살이

[고규홍의 식물 이야기] 나무가 바라본 사람살이 기사의 사진

여름까지 푸르름을 간직하던 나무들이 잎을 떨구고 서서히 겨울잠을 준비한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노랗고 붉은 단풍으로 깔깔대던 나무들도 시무룩하니 사뭇 표정을 바꾸었다.



사람들이 나무를 보호해야 할 시간이다. 나무를 보호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천연기념물이나 지방기념물처럼 문화재로 지정해 문화재청이 관리 보호하는 방법이 있다. 식물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나무에 얽힌 전설이나 유래, 풍습 등 문화적 가치가 인정되는 나무들을 대상으로 한 보호 방식이다.

식물학적 가치를 기준으로 보호 대상인 나무를 선정하는 건 산림청 몫이다. 훌륭하거나 특별한 생김새를 갖추고 오래 살아온 나무들을 ‘보호수’로 지정한다. 현재 산림청 지정 보호수는 전국적으로 9000여 그루 된다.

중앙 정부와 무관하게 지자체들도 고유의 방식으로 나무를 보호한다. 다양한 보호 방식 가운데 대구광역시의 나무 보호 방법이 눈길을 끈다. 대구시는 보호 대상인 나무에 대구 출신 주요 인물의 이름을 붙인다. 이를테면 대구가 고향인 화가 이인성의 수채화 ‘계산동 성당’에 그려진 감나무를 찾아내 ‘이인성 나무’라는 이름을 붙였고, 역시 이 지역에서 태어난 음악가 현제명이 지나다니던 곳에 서있는 이팝나무에는 ‘현제명 나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또 왕건이 죽음의 고비를 넘긴 유적지의 팽나무는 ‘태조 왕건 나무’라 했다. 대구의 대표적 선비인 김굉필을 기리기 위해 지은 도동서원의 은행나무에는 ‘김굉필 나무’, 목화를 들여온 문익점 선생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남평 문씨 세거지의 회화나무에는 입향조의 이름을 넣어 ‘문경호 나무’라고 했다.

그렇게 옛 사람의 이름을 붙인 나무가 20그루가 넘는다. 나무를 바라보는 동안 우리 역사는 물론 대구 지역 향토사를 꿰뚫게 된다. 나무와 사람의 연관성이 작다 하여 딴죽을 걸 수도 있다. 느티나무 한 그루가 이황 선생이 잠시 학동을 가르쳤던 곳에 서있다 해서 ‘이황 나무’라 하는 게 무리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래서 더 좋다. 사람이 나무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나무가 말없이 지켜본 사람살이의 흔적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나무를 활용 가치 위주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사람이 나무의 시선으로 옛 사람살이를 기억하게 한다는 것이다.

천리포수목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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