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국전선 1세대 정추·박갑동 서울에서 만났다 기사의 사진

차가운 날씨 속에서 80대 노인이 누군가를 기다린다. 1층에 커피숍이 있는 Y빌딩 정문 밖에 서서 꼼짝도 않고 지나가는 이들을 살핀다. 토요일인 지난 14일 낮 서울 종로 거리에는 인파가 넘쳤다. 노인은 가끔 시계를 본다. 약속 시간은 이미 지난 모양이다. “이상하네, 1분 1초도 안 늦는 분인데….”

#정추 박사

이틀 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탄 이 노인의 이름은 정추. 86세. ‘카자흐스탄의 윤이상’이라고 불리는 망명 작곡가다.

정 박사는 1923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났다. 좌·우 합작 영화를 찍으러 북한으로 간 큰형을 만나려고 지난 46년 월북했고, 거기서 형과 함께 영화음악을 하겠다며 주저앉았다. 평양로어대학(현 평양외국어대 전신)을 나와 평양음대 교수로 있던 그는 51년 소련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음대로 유학을 떠났다가 58년 8월 소련으로 망명했다. 현지에서 김일성 우상화를 비판하는 연설을 한 뒤 귀국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남한 사람으로 23년, 북한 인민으로 12년을 산 그는 현재 카자흐스탄 국민이다.

90년 이후 여러 차례 한국을 다녀갔지만 이번에 온 것은 음악 때문이 아니다. 조선민주통일구국전선 공동의장 자격으로 방한했다. 구국전선은 북한 정권 타도를 내건 북한 망명자 단체로 92년 모스크바에서 설립됐다. 최초의 반(反)김일성 단체인 셈이다. 창립 멤버들은 56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격하 운동’ 때 사상적 동요를 일으켜 소련으로 망명했던 북한 고위급들이 주축이 됐다. 출범 당시 회원은 30여명. 정 박사는 구국전선의 막내다.

빌딩 안에서 기다리라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에도 정 박사는 움직이지 않았다. 앉아서 선배를 맞을 수 없다는 것이다. 30분 정도 지나자 양복 차림의 노인 한 명이 도착했다. 키는 작지만 허리가 꼿꼿하다. 정 박사가 불렀다. “선배님.”

#박갑동 의장

‘선배’라는 노인은 일본 도쿄에서 이틀 전 서울로 왔다. 구국전선 상임의장 박갑동씨. 올해 90세.

경남 산청 지주집안 출신으로 일제강점기에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박 의장은 남한에서 공산당 활동을 하다 50년 31세의 젊은 나이에 남로당 지하 총책에 올랐던 인물. 한국전쟁이 터지자 월북했다가 53년 남로당 숙청 당시 수용소에서 3년을 보냈다. 그는 57년 중국으로 탈출, 일본에 정착했다.

두 노인이 커피숍에 마주 앉았다. 정 박사는 건강부터 물었다. “3년 전 도쿄에서 (괴한에 의해)테러를 당하셨다고 들었는데, 몸은 어떠세요?” 박 의장은 “살면서 죽을 고비 여러 번 넘겼다”며 “건강은 아주 좋다”고 답했다.

박 의장은 북한민주화운동 1세대를 대표한다. 89년 이상조(전 주소련북한대사) 장군과 도쿄에서 ‘북조선개방추진위원회’를 조직했고, 92년 구국전선을 만들어 상임의장을 맡았다. 일본 미국 러시아 한국 등을 다니며 기자회견이나 초청연설, 저서 등을 통해 북한 정권을 비판해 왔다. ‘구국’이라는 4쪽짜리 신문을 만들어 북한 땅에 살포하기도 했다.

유자차 한 잔을 시켜놓고 시작된 이야기는 3시간도 넘게 이어졌다. 남한과 북한 양쪽에서 모두 외면당한 북한 망명자들. 남한에서는 공산주의자였다는 이유로, 북한에서는 반김일성주의자라는 이유로 몰려 제3국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50여년 험한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아 서울에서 만났으니 할 말도 많았을 게다.

#강철환 대표

두 노인은 16일 낮 서울 신문로에 있는 북한전략센터 사무실을 찾았다. 강철환(41) 대표가 맞았다.

평양 출신인 강 대표는 열 살도 안 된 나이에 온 가족과 함께 함경남도 요덕군에 위치한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됐다. 10여년을 그곳에서 보낸 후 92년 탈북, 한국으로 입국했다. 한국전력공사에서 근무했던 그는 2000년대 들어 북한민주화운동의 젊은 리더로 변신했다. ‘수용소의 노래’라는 책도 출간, 북한 수용소의 참상을 폭로했다.

강 대표와 마주 앉은 박 의장은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 탈북한 사람들이 아니고 정치적으로 대북 투쟁을 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라며 “구국전선 1세대들이 몇 명 남지 않았는데, 젊은 후배들이 구국전선을 계승해 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정 박사도 “그간 서울에 구국전선 간판이 없었다”며 “여기에 우리의 간판을 달자”고 제안했다.

북한민주화운동의 신·구세대가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강 대표는 “김일성(김정일) 정권에 반대하는 조직을 만들었던 선구자들을 만나게 됐다”며 “우리 같은 젊은 세대가 원로들의 저항정신을 이어받길 원한다”고 말했다.

사무실에는 근래 망명했다는 북한 고위층 인사도 와 있었다. 그는 “북한 엘리트 사이에서 이미 사상의 전선이 무너졌다”며 “지금이야말로 남한이 북한을 넘어뜨려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야기는 잘 됐다. 이들은 북한전략센터에 구국전선 간판을 달기로 합의했고, ‘구국’ 신문 복간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박 의장은 지난 21일 도쿄로 돌아갔다. 정 박사는 서울 동생 집에 머물다 24일 알마티행 비행기를 탔다. 박 의장은 한국을 떠나면서 지난 16일 찍은 모임 사진을 챙겼다. 소중한 염원이 담긴 그 사진은 유언장처럼 보였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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