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窓-김영중] 약초원을 아시나요? 기사의 사진

창 밖의 나무들이 어느 새 싱그럽던 푸른 잎을 벗어 던지고 벌거숭이가 되어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생뚱맞게도 지난 8월 스위스에서 개최된 유럽생약학회에 참석했던 길에 찾아갔다가 커다란 감동을 경험한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의 약초원이 생각났다. 제네바에서 열차를 타고 1시간 30분 정도 가서 다시 협궤열차로 갈아탄 후에도 30분 정도 더 가야 하는 레종이라는 동화 속에 나오는 그림 같은 산골마을에 자리 잡은 약초원이었다. 산악지대에 자리 잡은 나라인 스위스에서도 이렇게 첩첩 산중에 과연 약초원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었다. 하지만 막상 찾아가 보니 그곳은 정말 천혜의 자연 속에 우리나라에서 용담이라고 불리는 겐티아나과에 속하는 각종 약용식물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특별한 약초원이었다.



약초원이라는 용어가 생소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약초원은 일반 식물원처럼 관상식물이 위주가 아니고 약으로 이용될 수 있는 식물을 모아 이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핵심 기반 연구시설이면서 한편으로는 일반식물원처럼 일반 대중의 휴식처를 겸할 수 있는 시설이다. 사람의 발길이 뜸할 수밖에 없는 깊은 산속에 이렇게 잘 갖추어 놓고 멋지게 관리되고 있는 약초원이 있다는 사실에 선진국의 저력을 운운하기보다는 커다란 감동으로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우리나라에도 전국 여러 곳에 국가나 개인이 조성하여 운영하고 있는 이름이 알려진 식물원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약용식물을 위주로, 게다가 이들에 대한 연구를 지원하기 위하여 운영되는 약초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최근 외국에서 중금속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저급 한약재까지 들어와 범람되고 있어 이들의 진위를 가릴 수 있는 기원 약용식물을 확보하고 이에 대한 연구를 지원하는 약초원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약초원은 국내에 서식하는 약용식물의 개체 확인 및 재배법 연구, 종자의 보전, 표본식물의 보전, 표본 제작과 보관, 생리활성 검색에 사용될 수 있는 추출물의 확보와 보관 등 국내 약용식물자원의 보존을 위한 필수적인 시설이다. 우리나라 자생식물은 마늘과 같은 귀화식물(15과 168속 438종)을 제외하더라도 총 170과 897속 4058종이다. 이 중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특산식물은 61과 172속 393종으로 보고되어 있다. 하지만 무분별한 도시개발과 농토 확장을 위한 습지나 임야의 개간으로 천연자산의 보존은 보장받기 어렵다. 우리나라에 서식하고 있는 약용식물의 보존 및 이에 대한 연구의 첨병인 약초원의 설립을 단순히 눈에 보이는 부의 창출 면에서 투자가치가 적다고 꺼리고 홀대하는 것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단견이다.

요즘 제약산업에서는 천연물신약 개발이 하나의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다. 천연물신약이 개발되어 높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천연물신약의 특성상 재배, 수확, 포장 등 모든 단계의 위해 요소를 관리하는 체계를 도입하고 유기농 재배를 실시함으로써 높은 효능을 가지면서 동시에 안전성도 담보된 우수한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여야 하기에 자연적으로 약초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 있는 대목이라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약초원은 약용식물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교육의 장이 될 수 있고 천연자원의 보전과 개발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종의 다양성 보존이라는 거시적인 안목뿐 아니라 국가경쟁력 제고에 밑거름이 될 제약산업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라도 약초원의 설립은 필수적이다. 국가가 나선다면 약초원은 새로운 차원에서 발전할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천연물 강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다.

김영중(서울대 약대 교수·학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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