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잘 사는 삶 기사의 사진

#장면 1

“김참서(參書)라면 영도서는 으뜸가는 집안이요, 인물이었다. 옥성(玉成)학교의 재원인 나루터의 도선권이 부산부로 넘어가기 전, 일인(日人) 관리들은 갖가지 음모술책을 쓰던 나머지 근엄한 한학자인 교장 김용근씨를 주석으로 끌어들여 술을 강권한 뒤 취기를 틈타서 양도서에 인장을 찍게 했다. 교주이던 김성윤(金成允)씨는 이 사실을 알자 상심과 비분을 걷잡지 못해 막역의 동지인 김교장의 뺨을 치고는 그 길로 영도를 떠나 진영으로 은둔해 버렸다. 김성윤씨가 진영으로 옮겨간 것은 내가 어렸을 때 일이다. 나는 그분의 얼굴은 몰랐지만, 진영서 그 댁을 찾아 갔을 때, 대문간 옆에서 탈곡기를 돌리고 있던 중노인이 바로 ‘김참서’ 그분이란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인사를 하고 선친의 함자를 대자, 탈곡기 옆에서 내 얼굴을 보고 섰던 그 분의 눈에서 별안간 굵다란 눈물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사내 눈에서 그렇게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본 것은 내 일생을 통해서 두 번 없었던 일이다. 50고개를 넘은 분의 그 티 없이 투명한 순정 앞에 나는 어리둥절하면서도 두 살 때 사별한 선친의 모습이 일순 향기를 풍기면서 내 가슴을 스쳐갔다.”

김소운의 수필집 ‘토분수필’에서 옮긴 글이다.

#장면 2

“내가 엉거주춤 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총장은 혼자서 점심 식사를 하려던 중이었다. 다 낡은 검은색 바바리 코트에 노숙자와 다를 바 없는 장발머리를 한 나를 보고 그는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더 놀랐다.(중략) 총장은 “무슨 일인가?”라고 묻지도 않았다. 다만 그 특유의 엷은 미소를 지은 채 내가 무슨 말을 하기를 기다렸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이 말 저 말을 한꺼번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쨌든 골자는 이것이었다. 나는 국문학과 학생인데 신춘문예 준비를 하느라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해 낙제를 했노라고, 그런데 장학금이 없으면 학교를 다닐 수 없노라고, 손톱에 낀 때를 감추기 위해 코트 속에 줄곧 두 손을 넣은 채로 앉아서. (중략) 총장은 기다리고 있다가 이 한마디를 했다. 알았어. 장학금을 주겠네.”

류시화의 수필 ‘인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의 한 대목이다. 조영식 당시 경희대 총장은 담당 과장을 기다리는 동안 류 시인에게 물었다. “글을 쓴다고 하니 묻겠네만, 인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마도) 30년쯤 전의 그 물음이 필생의 화두가 되었던 듯, 류 시인은 이렇게 글을 맺고 있다. “졸업 후 그는 해마다 인도, 네팔, 티베트 등을 여행하면서 인간에 대한 탐구의 길을 걸어갔다.”

#蛇足

(이 장면들에 더 보탤 게 있으랴만 기어이 덧칠을 하고 만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터넷 카페에 남긴 글과 참모들에게 한 말을 모은 책 ‘진보의 미래’가 엊그제 출간됐다고 한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자기의 생각과 동떨어진 행동을 하고 다닐 수밖에 없어 참 불쌍한 지위라는 생각이 든다. 달라이 라마 방한을 못 받아들였고 이라크에는 파병하는 등 국가적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말하는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을 한 것들이 있다.”(연합뉴스)

어쩌면 그는 ‘진보결벽증’ 때문에 자신을 들볶은 것이나 아닐까? 대통령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만을 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면서도 왜 스스로를 설득하고 달래지는 못 했는지 안타깝다. 대통령에게 중요한 것은 혁명의 열정이 아니라 포용력일 것 같은데…. 포용력은 국민에 대한 염려와 사랑에서 나온다. 진보파의 대통령 따로 있고 보수파의 대통령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국민의 대통령만 있을 뿐이다. 여타 정치리더에게 요구되는 덕목도 다를 바 없다. 이념과 목표는 같지 않더라도 국민에 대한 염려와 사랑은 같아야 한다.

그리운 이를 둔 사람은 행복하다. 누군가에게 그리운 이가 된 사람은 더욱 행복하다. 그리움은 염려와 사랑에 대한 갚음이다. 교육자든 정치가든 다른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 남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실천이야말로 가장 잘 사는 삶이다. 특히 우리의 정치리더들에게 꼭 이 말을 하고 싶다.

이진곤 논설고문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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