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통계개발원이 출산 관련 자료를 내놓았다.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가 출산 연령대인 30대 고학력·전문직 여성들의 미혼율 증가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일리는 있다 싶지만 주된 원인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자녀를 덜 가지려는 현상은 육아 및 사교육비 등 양육부담 때문이라는 견해가 대체로 타당성을 띤다. 한마디로 젖먹일 때부터 대학 졸업시킬 때까지 돈이 적게 들어갈 때가 없다는 뜻일 게다. 게다가 요즘은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어려운 상황이니 아이 가질 마음이 더 없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엊그제 정부가 저출산 대책을 내놓았다. 취학연령을 1년 낮춘다는 내용도 있다. 유치원비를 줄이면 아이를 낳지 않겠느냐는 발상이다. 1년간 유치원비가 덜 들어가니 이제 아이를 낳자는 사람이 있을까. 어설픈 정책 같아 보인다. 이런 식의 문제 접근과 처방은 합목적성이 결여됐거나 구실을 잘못 갖다 붙인 것이라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헌재가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위헌 소송을 낸 쪽이 남자인 데서 보듯 이 법은 남성의 성 범죄를 막고, 여성을 보호하자는 취지가 강했다. 성 개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남성을 옥죄는 남녀평등 위반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결혼과 성에 관한 국민의 의식이 바뀌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여성계 쪽에서 오히려 여성을 옥죄는 남녀평등 위반법이라고 한 것이다. 헌재 결정문도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법’이라고 했고, 여성부 역시 정조, 순결을 우선시하는 관념에 기초한 남녀 불평등법이었다며 헌재 결정을 환영했다. 한마디로 남녀 모두에게 평등을 침해하는 희한한 법이었던 것이다.

여성부는 이 법을 주로 완전한 남녀평등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 같다. 그렇다면 혼인을 미끼로 순결을 잃어도 남녀평등이라는 대의를 위해서는 소수가 희생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 문제는 그런 명분보다는 현실성 차원에서 해석하는 게 바람직하다. 특히 귀가 얇은 딸자식을 둔 엄마 입장에서는 남녀평등이 혼인빙자간음보다 우선될 수 없다. 대의명분을 중시하다 보면 말은 구실이 되기 쉽다.

이병갑 교열팀장 bk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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