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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종 칼럼] 세종시,대안을 본 뒤 따지자

[백화종 칼럼] 세종시,대안을 본 뒤 따지자 기사의 사진

양의 동서와 시의 고금을 막론하고 지혜나 이성이나 이상만으론 안 되는 게 정치인 모양이다. 정치 이론과 이상 면에서는 2000년도 넘게 인류의 선생님 노릇을 해온 동서양의 선현들이 현실 정치엔 두 손을 들었기에 말이다.

“정치란 모름지기 바름(政者正也)”이라는 등 금과옥조의 가르침으로 동양 정치의 교과서를 만든 공자도 말년에 이상 실현에 좌절하여 몸담았던 현실 정치에서 뜻을 접고 후학 양성으로 진로를 바꿨다. 불후의 서양 정치학 저서인 ‘국가론’을 통해 “철인이 국왕이 되거나 국왕이 철인이 되어야 이상국가가 실현된다”는 이른바 철인정치를 주장했던 플라톤 역시 정치에 뜻을 품었으나 스승 소크라테스가 처형되는 것을 본 뒤 현실 정치를 포기하고 철학과 후학 양성의 길로 들어섰다.

공자도 플라톤도 포기한 정치

단순했던 고대에도 이랬는데 모든 게 그때에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복잡다단해진 오늘의 정치야 더 말해 뭐 하겠는가. 사람들은 더 영악해지고 이기적이 돼 사회는 각자의 이익을 놓고 다투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장으로 변했다.

특히 우리 정치가 그렇고, 세종시 문제가 그 대표적인 예다. 시간을 갖고 서로 대화하면 꼬인 실타래가 풀려야 할 텐데 시간이 흐르고 대화를 할수록 오히려 더 꼬여만 간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주 TV로 생중계된 ‘대통령과의 대화’를 통해 세종시 건설 계획 수정 의사를 공식 확인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고민 끝에 내린 양심적 결단임을 강조했다. 대선 때 표를 의식해 약속한 점이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사과도 했다.

그러나 야당 등의 반발은 종전보다도 더 거세다. 민주당은 국민 기만행위라며 원내외 투쟁을 강화할 방침이란다. 자유선진당은 소속 의원 전원의 사퇴를 결의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할 말은 이미 다 했으며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투의 반응을 보였다. 충청도에서는 연일 정부 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다.

모두가 예상대로다. 이 대통령이 사과하면서 세종시 계획 수정 의사를 공식화하리라는 것, 아무리 대통령이 진정성을 가지고 호소한다 해도 반대하던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진 않을 것 이라는 등 모두 짐작됐던 일들이다.

결국 세종시 문제는 예정된 수순을 밟는 것이다. 정부는 수정에 박차를 가할 것이고, 야당들과 박근혜계 그리고 충청도민들은 반대 투쟁에 더욱 힘을 보탤 것이다. 대결은 원안파와 수정파 간의 그것에 그치지 않고, 세종시 수정으로 불이익을 우려하는 타 지역까지 가세해 피아 구분이 안 되는 혼전 드잡이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의원들 자유 투표로 결정하자

기자도 대화로 절충점을 찾으라고 촉구해왔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정치에 비추어 크게 기대하지 않았으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다는 느낌이다. 따라서 일이 이리 된 이상 차선책을 찾는 수밖에 없다. 그건 논란을 잠시 멈추고 정부의 수정안을 본 뒤 이의 시비를 가리는 것이다. 정부는 12월 중에 수정안을 내놓는다는 방침이니 기다리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 내용도 모르면서 찬반 논란을 벌이는 건 낳지도 않은 아기를 놓고 잘 생겼느니 못 생겼느니 시비하는 꼴이 아닌가 싶다.

수정안이 나오면 난상토론도 하고 전국적으로 여론도 수렴해 원안대로 추진하는 게 낫겠다는 의견이 우세하면 그대로, 수정하는 게 낫겠다는 의견이 우세하면 또 그대로 하면 된다. 기자는 이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수정하는 게 옳다는 쪽이지만, 많은 국민이 그 반대쪽을 원하면 대통령도 국민의 뜻에 따라야지 별 수 있겠는가. 다만 이 문제를 최종 결단하는 국회 표결은 정파적 접근을 피하기 위해 당론이나 계파의 입장을 정하지 말고 국회의원들이 국가 백년대계 차원에서 소신을 펼 수 있도록 자유 투표에 맡기는 게 옳다.

많은 사람의 지혜와 이성으로 문제를 푸는 이상 정치는 끝내 신기루인가.

전무이사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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