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영윤] 北 화폐개혁 왜 했을까 기사의 사진

북한 정권이 이번에 행한 제5차 화폐개혁은 주민에 대한 당국의 행패다. 당국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또 얼마든지 주민이 가진 돈을 하루아침에 휴지로 만들 수 있는 힘을 내보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화폐개혁은 전광석화같이 단행됐다. 화폐 교환 방침이 결정되고 3시간 만에 교환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북한 주민들은 사전 준비를 할 수 없었다. 구권과 신권의 비율은 100대 1. 주민 1인당 교환할 수 있는 최고 한도는 구권 10만원 선이다. 공식 환율로 치면 남한 돈 80만원 정도다. 10만원을 들고 가면 1000원을 신권으로 받게 된다. 돈이 있어도 더 이상 바꿀 수 없다. 힘들게 저축하고, 보따리 장사 밑천으로 가지고 있던 돈이 하루아침에 휴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교환 한도 정한 무자비한 조치

이번 화폐개혁의 방점은 교환 한도에 있다. 화폐 단위를 바꾸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화폐 교환의 한도를 정한 것은 그야말로 무자비한 북한식 화폐개혁이다. 북한 주민의 대부분은 장사를 하고 산다. 그런데 화폐개혁으로 1000원 이상의 물건은 이제 더 이상 사서 팔 수 없게 되었다. 이 얼마나 잔인한 짓인가. 이와 같은 짓을 북한은 1992년 제4차 개혁 때도 했다. 그때는 1대 1로 신·구권을 바꾸었지만 300원을 한도로 했다.

북한은 왜 이 같은 개혁을 단행했을까. 가장 큰 목적은 두 말할 것 없이 주민의 장사, 즉 시장 거래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2002년 7월 1일 ‘경제관리 개선 조치’ 이후 물물교환의 북한 경제가 돈을 주고 물건을 사고파는 화폐경제로 바뀌게 되었다. 물건 값을 올리고 급여도 인상했다. 환율도 대폭 인상하고 ‘시장’이라는 개념도 도입했다.

이에 따라 공식 경제 분야와는 달리 암시장 경제가 성행했다. 당국이 생계를 지켜주지 못하기 때문에 주민 스스로 책임져야 했다. 대부분의 주민이 농촌에서 도시에서, 변경지역을 다니며 장사를 한다. 공식 부문이 아닌 분야의 경제활동은 모두 사경제에 속한다. 사경제에서는 거래 가격이 자유롭다. 그렇지만 이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반하는 행위다. 물자가 워낙 부족하다 보니 가격은 치솟았다.

높은 가격의 사경제, 지하경제를 차단키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화폐를 바꾸고 교환 한도를 제한하는 것이다. 사적 부문의 시장거래, 높은 물가를 짓누르기 위해 한 조치가 이번의 화폐개혁이다.

이번 조치는 당분간 북한 주민들을 크게 당황하게 만들 것이다. 당장은 사고팔 수가 없다. 장사를 해 재미 본 사람들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먹고살고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주민이 더 이상 자신의 행위가 돈으로 보상받을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당국에 대한 원망과 반감이 더해 갈 것이다. 앞으로 돈을 벌게 된다면 어떻게 해서든 달러로 바꾸려 할 것이다. 그러면 암시장의 달러 가격은 더 올라갈 것이 분명하다. 또는 돈보다 물건을 가지려고 할 것이다. 이는 화폐경제를 다시 물물교환 경제로 돌아가게 만드는 길이 된다.

남북경협에는 별 영향없을 듯

향후 북한의 실질 경제 규모는 축소지향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이번 조치가 부정부패를 통해 축재한 사람들을 벌하는 효과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정말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교환하기 위해 다시 부정부패를 저지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화폐개혁으로 남북 경협에는 어떤 영향이 올까. 교환의 한도가 기업에까지 적용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화폐개혁이 어디까지나 내부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가지고 있는 현금자산에까지 교환 한도를 적용한다면 수출입 등 대외 교역은 하기 힘들 것이다. 남북 교역 등 경협은 기본적으로 달러 베이스로 이뤄지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번 조치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경제에 칼을 들이대는 북한의 잔혹성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김영윤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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