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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김상근] 루카 피티가 성남시장님께

[삶의 향기-김상근] 루카 피티가 성남시장님께 기사의 사진

안녕하십니까, 성남 시장님. 저는 이탈리아 피렌체에 살았던 루카 피티(Lucca Pitti)란 사람입니다. 1389년에 태어나서 1472년에 죽었으니 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세월이 벌써 500년을 훌쩍 지나버렸군요. 15세기 이탈리아 사람인 제가 이렇게 대한민국의 성남 시장님께 편지를 올리게 된 이유는 3222억을 들여 지으셨다는 호화 청사 때문입니다. 저도 거대한 건축물을 지은 사람으로 제법 유명한데, 시장님께서 성남 신청사에 쏟아 부으신 천문학적 금액을 처음 들었을 때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너무 놀란 저는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시장님께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도 시장님처럼 피렌체란 작은 도시에서 시장노릇을 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시장님과 저는 동일한 직업을 가졌던 것입니다. 저는 원래 은행업으로 큰돈을 벌었지만, 우리 피티 가문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시던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 1389∼1464)님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제가 피렌체 시장 노릇을 하게 되었답니다. 저의 정치적인 후견자이신 코시모님은 참으로 대단하신 분입니다. 로마 교황청이 주거래 은행으로 지명했던 메디치 은행의 소유주였습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르네상스 운동이 시작된 것도 모두 코시모님의 후원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살아생전에 정치가인 저뿐만 아니라 도나텔로와 미켈로초와 같은 예술가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신 자비로운 분이셨습니다.

저도 은행업으로 돈깨나 모았고, 피렌체 시장으로서 권력의 맛을 즐기다 보니 슬슬 욕심이 났습니다. 언제까지 코시모님의 2인자 역할에 만족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한국에 그런 영화 대사가 있지 않습니까? 내가 니 시다바리가? 피렌체 시민들이 코시모님께 바치는 존경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피티 가문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는 거대한 저택을 짓기로 결심했습니다. 브루넬레스키라는 피렌체 최고의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기기로 했지요. 저는 브루넬레스키에게 이렇게 요구했습니다. 우리 피티 가문의 저택을 최대한 크게 지어주게나. 무조건 메디치 가문의 저택보다 커야 해. 메디치 가문 저택의 웅장한 대문을 보았지? 자네가 설계할 피티 가문의 저택 창문이 메디치 가문의 그 대문보다 커야 해. 그것이 내 요구의 전부야.

저는 건물의 크기로 메디치 가문의 위세를 눌러버리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실제로 브루넬레스키가 초안 설계한 피티 가문의 저택이 1458년에 완공되었을 때, 피렌체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지요. 그 거대한 건축 규모에 입을 다물지 못했고, 메디치 사람들은 애써 침묵을 지켰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피렌체에서 최고로 큰 건물을 가진 가문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피렌체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든 말든 저는 거대한 건물에 대한 자부심으로 한 평생을 살았습니다. 피렌체 시민들이 바친 혈세로 지은 아방궁이라고 비난했지만, 아무렴 어떻습니까?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 다음에 일어난 일입니다. 제가 죽고 난 다음 한심한 우리 피티 가문의 후손들은 1549년에 이 건물을 메디치 가문에게 팔고 말았습니다. 제가 건축한 그 웅장한 건물은 결국 메디치 가문의 재산이 되고 말았지요. 그 건축물은 지금도 피티 궁전(Palazzo Pitti)으로 불린다는군요. 그 웅장한 건물을 건축한 저의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허장성세와 혈세낭비로 피렌체 시민들을 우롱했던 저를 비난하기 위해서랍니다. 성남시장님, 혹시 저의 고향인 피렌체를 방문하신다면 꼭 피티 궁전을 둘러봐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왜 아직도 피렌체 사람들이 그 궁전에다 제 이름을 붙여 부르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김상근 연세대 교수·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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