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정철훈] 공옥진에 대한 보유(補遺) 기사의 사진

전남 영광에서 투병 중인 공옥진의 1인 창무극은 흔히 병신춤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병신춤이라는 명칭은 공옥진의 일대기를 다룬 문순태의 장편소설 ‘병신춤을 춥시다’(1982)에서 단초가 된 것이지만 정작 자신은 이 명칭을 끔찍이도 싫어한다는 것은 제법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1인 창무극이라는 것도 공옥진 춤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되기엔 역부족이다. 그나마 납득할 수 있는 명칭이 있다면 곱사춤이 아닐까.

그의 남동생은 벙어리였고 손수 키운 조카는 곱추였다. 딴은 어려서 죽은 벙어리와 곱추가 공옥진의 내부에 여즉 살고 있어 춤을 추게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평소 그는 장애인을 ‘나락밭의 제비’에 비유해 왔다. “제비는 곡식을 축내지 못해. 먹질 못하지. 참새들이 다 씹어먹거든.” 말인즉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에게는 운명적으로 속으로 울음을 삼켜야 하는 한이 있었고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외로움이 있었다. 외롭기 때문에 젊은 날 동물원을 찾았고 철창 앞에서 자유를 뺏긴 채 어슬렁거리는 동물들의 모습도 춤으로 옮겼다. 하지만 모든 과장으로도 표현 부족이었던 그의 전쟁과 같았던 운명은, 그의 쭈글거리는 얼굴의 주름살로 남아있을 뿐 우리 시대와 단절되고 있다. 그의 춤은 어쩌면 전수할 길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가 숨지면 곱사춤도 사라진다. 그러니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한 달 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깜짝 방문을 받은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소록도에서 나병 환자들과 손도 잡고 춤도 덩실덩실 추면서 공연할 때 예술 세계를 느꼈다.” 인간 공옥진에게 진실이란 참으로 불구성으로서만 존재할지도 모른다. 세상은 폐허와 같고 타락한 곳이라는 역설이 그의 춤에는 녹아 있는 것이다. 그의 춤은 장애인이 존재하는 한 한 시대로 완료되지 않는다. 그의 춤에는 한국 역사의 많은 부분들이 흡인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의 춤은 막걸리 사발을 돌리던 멍석 위의 소작인과 식민지 시절의 남사당패, 그리고 개화기의 희극까지도 흡수하고 각색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 춤의 탁월함은 그가 불구성의 세계관을 우리에게 부각시켰고, 이에 못지않게 이 세계관을 우리가 믿고 있는 정상인의 세계관에 연결시켰다는 점에 있다. 그의 춤이 언어를 버리고 벙어리가 되고, 정상을 버리고 비정상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의 춤은 차라리 우리들 존재의 진실된 그림자인 것이다. 곱사춤은 인간의 폐허에서 시작되었기에 전통을 계승할 겨를도 없었지만 그 자체로 이미 전통이다. 그러니 그의 춤사위가 전통의 계승에서 비롯됐음을 증거하기 위해 첨부해야 할 자료는 따로 있지 않다. 그는 전통을 계승하지 않고도 너끈히 전통 그 자체다.

대한민국 문화계의 하고많은 현안 가운데서도 곱사춤의 명인 공옥진의 무형문화재 지정을 둘러싼 설왕설래는 문화행정과 문화 현장 사이의 괴리감을 좁힌다는 측면에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사안이다. 그의 춤에 대한 무형문화재 지정 여부를 놓고 전남도 문화재위원회가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전통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창작한 작품’이라는 이유로 속도를 내지 못한다는 소식에 나름대로 중지를 보탠다는 의미에서 몇 마디 거들어봤다.

‘문화재라는 말만 들어도 신물이 난다’는 그의 말에는 벌써 10년째로 접어들고 있는 문화재 지정 과정에서의 피로감이 묻어난다. 아, 그러니 큰일이다. 어처구니없게도 진실에 이르는 길은 이 세상, 말하자면 폐허와 같은 세상을 통하지 않고는 달리 없다는 사실에 봉착하게 되니 말이다.

정철훈 문화부장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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