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동 칼럼] 정권 재창출 성공의 조건 기사의 사진

“현 정부의 좌파 찌꺼기 청산작업은 정권 재창출을 위한 숙명적 과제”

열흘 전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최고위원단과의 조찬간담회에서 했다는 ‘정권 재창출’ 발언을 축약하면 이렇다. “좌파집권 10년간의 잘못을 바로잡고 한나라당이 지향하는 가치를 지켜나가려면 5년으로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선진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권을 계속 창출해야 한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화합하지 못하면 다음정권을 잡기 어렵다.”



맞는 말이다. ‘불화’의 배경과 집권 가능성 여부에 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정권 재창출의 당위를 역설한 것에 나는 대체로 동의한다. 우선은, 체제모순으로 자멸해 가는 패역집단에 나라를 갖다 바치려는 듯이 비굴하고 음침하게 비쳤던 국가권력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아서다.

한나라당의 2007년 대선 압승은 10년 좌파정권 학습효과의 산물이었다. 전례없는 500만 표 차이로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승리한 것은 좌파정권에 대한 염증(厭症)이 그대로 표출된 결과였다. 국가안보에 대한 위기의식, 굴욕적 남북화해교류협력, 나라 곳간 걱정, 되레 더 팍팍해진 서민들의 삶, 불변의 부정부패 등으로 대다수 국민은 식상해 있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탁월한 언변에 한동안 혹했던 중도·보수층의 분노와 좌절감이 표로 귀결됐던 것이다.

좌파집권 10년에 생성된 사회갈등구조는 분야마다 구석구석 깊이 파고들었다. 과거의 갈등 토대였던 지역주의에 좌파적 이념이 덧칠되면서 갈등은 확대재생산을 거듭했다. 그 기세는 지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수(數)의 우열은 어느 장소 어떤 논쟁에서든 무의미해졌고, 1대 1 맞짱 뜨기가 중요한 사회현상으로 마냥 정착됐다. 웬만한 법과 원칙, 민주적 질서 따위는 거의 실종돼버렸다.

2002년 대선의 한나라당 패배는 한나라당 후보의 열악한 상품성, 즉 두 아들 군대 면제가 근본 패인이었다. 우리 국민 정서상 병역문제에서만큼은 감성의 위력이 폭발적이라는 것에 설명은 필요치 않다. 전방부대에서 복무했던 경쟁후보는 통기타 연주에 맞춰 ‘이등병의 편지’를 읊조리며 눈물 흘리는 홍보광고를 통해 국민감성을 최고조로 사로잡았다. 그해 선거 패배 후 은퇴한 그 야당 후보자가 돌연 충청지역 맹주로 변신해 신지역주의로 보수층을 분할하고 있는 현실은 기막힌 아이러니다.

그에 앞서 1997년 대선에서 출현한 이른바 DJP연합정권은 진정한 의지도 없었고 되지도 않을 내각책임제 개헌 공약을 미끼로 지역주의를 철저히 악용한 결과물이었다. 정권 측은 ‘최초의 수평적 교체’를 자랑했지만 한 사람은 군사정권의 수구 대명사로 통했던 인물이다. 그는 총리를 한 번 더한 것을 끝으로 정권 파트너와 결별했다. 그것은 야합(野合:부부 아닌 남녀가 정을 통함)의 기만적 부도덕성이 겹겹이 빚은 필연이었다.

성사 가능성은 낮지만 ‘친북좌익인사 북한 보내기 국민운동본부’ 등 일부 보수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친북인사들을 북한으로 이주시켜주자는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법조계 하나회’로 일컬어지는 진보 성향의 판사들 모임을 해체하라는 주장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지 꽤 됐다. 이런 일 말고도 급진·친북좌파의 준동에 목숨 걸고 맞서는 데는 동족전쟁에서 살아남은 퇴역용사들과 전장에서 다친 열혈 애국인사들이 늘 앞장선다.

인격에 금갈 소지가 있거나 손에 조금이라도 피묻힐지 모를 일에 나서는 사람은 결국 그들이다. 더 배운 사람들은 대개 자기 희생에 인색하다. 그래서 ‘궂은 일’에 나서기를 꺼리고 마다한다. 때때로 ‘먹물’ 기회주의자들은 포용 관용 화합을 외친다. 옳은 말만 골라 하는 그런 구경꾼들이 명망가로 대접받는 예는 허다하다.

이 대통령이 좌파집권의 잘못을 바로잡고 있는 것은 눈으로도 어느 정도 확인된다. 그로서는 통상의 국정 수행 외에 켜켜이 쌓인 좌파집권의 잔재 청산까지 맡아 무게가 만만찮을 것이다. 이미 ‘시계(視界)’를 상당부분 확보하기는 했어도 좌파 찌꺼기 청산은 임기 내내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 그것은 숙명이다.

편집인 jerome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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