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서완석] 드라마에서 배우는 정치 기사의 사진

덕만공주=합종을 통해 화친했으면 합니다.

미실=반란을 진압하고 모두 죽이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덕만공주=죽이기 아까워서요. 신라엔 대업이 남아있습니다. 해서 널리 인재를 구하고 있습니다.

미실=제겐 많은 인재들이 있지요. 누굴 원하시나요.

덕만공주=제가 구하는 인재는 바로 당신, 미실입니다. 당신을 제 그릇에 품을 수 있겠습니까.

최근 브라운관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TV드라마 선덕여왕의 한 장면이다. 덕만공주가 오랜 세월동안 집권했던 미실 세력을 물리치고 선덕여왕으로 즉위할 즈음, 그녀 주위에 국가를 경영할 인재 없음을 통탄한다. 삼한 통일의 대업을 구체화하기에는 자신을 따르던 김유신 비담 등으로는 역부족임을 절감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칼을 겨눴고 죽이려까지 한 미실과 그 세력을 껴안으려고 한 것이다. 그것도 미실이 서라벌에서 쫓겨나 실각한 뒤의 일이다.

‘미실의 애국심’ 찾기 힘들어

통일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을 반대했던 세력도 껴안으려는 포용력, 드라마는 선덕여왕을 통해 이 점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사회통합의 리더십이다.

물론 이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과 아주 많이 동떨어진 픽션에 불과하다. 삼국사기 등 여러 역사서에 나타난 정사와 비교해 사실관계가 틀리다는 지적을 유난히 많이 받았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말하고 싶은 주제의식은 사실관계의 그릇됨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리고 우리 현실정치에는 선덕여왕 같은 포용력이, 선덕여왕 같은 사회통합의 리더십이 없음을 슬퍼하게 된다. 기껏 5년을 집권하면서 영원할 것처럼 정적을 매도한다. 조금이라도 자신을 위협할 싹수가 보이면 못 잘라내서 안달이다. 심지어 이념을 같이한다면서도 서는 줄이 다르면 적으로 돌변한다. 국가의 미래나 백성들의 안위는 안중에 없고 정치인 자신의 생존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선덕여왕이 미실에게 손을 내민 것이 정치적 쇼라도 좋다. 그런 정치를 국민들은 보고 싶어한다.

드라마는 이어 덕만공주에 패해 몰락위기에 처한 미실을 통해 정치인의 애국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의 충복인 국경수비대장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부대를 이끌고 진지를 이탈하자 “속히 회군하여 국경을 경계, 방어하라”고 명한다. 국경수비대장이 가세하면 권력을 되찾을 수 있는 유리한 상황이지만 미실은 자신보다 나라의 안위를 먼저 생각한 것이다. 일신의 안위를 위해 국가를 위기에 빠트리면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된다고 말하면서 그는 스스로 죽는 길을 택한다. 죽음을 앞두고는 연인 사다함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신라를 사랑했노라고 독백한다.

이 대목에서 어두웠던 우리 현대사가 오버랩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폭도’를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전방부대를 동원했던 그때, 불과 29년 전의 일이다.

오늘날 우리 정치인들이 진정 미실의 애국심으로 나라를 운영한다면 신문의 정치면이 그렇게 어지러워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애국자들은 나라가 우선이고 자신의 안위는 뒷전이다. 애국자는 자신보다 역사를 먼저 생각한다. 애국자는 타인을 위해 자신을 버릴 줄도 안다.

그러나 우리 정치인들에게서 미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 당 정책에는 무조건 반대한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절박감이 감돈다. 역사를 들먹이며 싸우지만 결국은 차기 대권을 향한 표 계산이 깔려있다. 필요하면 국회에서 쇠망치도 등장하고 해외토픽에서 망신살을 줘도 반성할 줄 모른다. 대화는 없고 농성과 투쟁만 있다.

사회통합 리더십 필요한 때

마침 각계각층의 화합과 통합증진을 위한 사회통합위원회가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조만간 출범한다고 한다. 존경받는 전직 총리 한 분이 위원장 물망에 오르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더욱 심화된 빈부간의 격차, 여전한 동서 간 불협화음, 특히 세종시 문제를 둘러싼 신 지역갈등 등 정국은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럽다.

갈기갈기 찢어진 국민들의 마음을 다독일 솔로몬의 지혜는 없는 것일까. 비록 드라마 속 인물이지만 1400년 전 선덕여왕과 미실에게서 그 해답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선덕여왕이 그랬던 것처럼 반대세력에도 손을 내밀어 그들을 중용해보자. 진정성을 갖고 말이다. 미실이 그랬던 것처럼 나라를 위해 자신을 버릴 각오로 국정에 임해보자. 연인보다 더 사랑스런 이 나라를 위해.

서완석 부국장 기자 wssu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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