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이용웅] 가방 끈 긴 ‘사’字님들 기사의 사진

내 아내는 드링크제를 꽤 좋아한다. 특히 특정 회사의 제품만 마신다. 시쳇말로 아내한테 점수를 따려면 퇴근할 때 이것 한 병 사들고 가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일요일이나 공휴일이다. 공휴일에는 이것을 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 상품은 약국에서만 파는데 대부분의 약국이 공휴일에 문을 닫기 때문이다. 불편한 건 이뿐 아니다. 공휴일에 등산 갔다가 발목이 아파 파스를 붙이려 해도 살 수가 없다. 파스 역시 약국에서만 팔기 때문이다. 아니 파스와 드링크제를 왜 약국에서만 파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솔직히 약국에서 파스나 드링크제를 살 때 약사로부터 주의사항이라고는 한마디도 들어본 적이 없다. 드링크제를 한 박스 달라고 하든 두 박스 달라고 하든 약사들은 말 한마디 없이 돈만 챙긴다. 편의점에서 음료수 사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왜 이런 것들을 공휴일에 문을 닫는 약국에서만 팔아야 하는가. 머리 좋은 약사들은 돈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국민의 상당수는 장삿속이라는 걸 뻔히 알고 있는데도 약사들은 국민 건강을 입에 오르내린다. 그러니 더 얄밉다.

이들은 정부가 드링크제나 파스 등 일반의약품(OTC)을 약국이 아닌 일반소매점에서도 팔고 약사가 아닌 일반인도 법인형태의 약국을 운영할 수 있도록 추진하려 하자 죽기 살기로 반대하고 있다. 약사들은 지난달 12일 열릴 예정이던 정부의 의약부문 선진화를 위한 공청회도 무산시켰다. 공청회는 그 뒤로 열리지 못하고 있다. 의약부문 선진화 정책이 약사들의 입맛에 안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의견수렴을 통해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이미 미국에서는 10만개 이상의 일반의약품이 편의점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약사들은 이를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의약부문 선진화 정책이 실행될 경우 국민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참말로 가관이다.

제 밥그릇 챙기기는 비단 약사뿐 아니다. 소위 ‘사’자로 불리는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도 마찬가지다. 참여정부 때부터 추진된 의료선진화 계획은 의사 등의 반발로 한 발짝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영리의료법인 도입 등을 위한 정부의 의료선진화 정책이 모두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의사들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편익 우선 원칙에 따라 선택적으로 시행여부가 결정돼야 한다. 변호사를 고용해 법률사무소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 방침도 마찬가지다. 회계사나 세무사 등은 말할 것도 없다.

모든 진입장벽은 국민 편익 차원에서 해결돼야 한다. 국민 편익을 해치는 진입장벽은 과감하게 허물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대로 둬야 한다. 그래야 한참 뒤처져 있는 국내 서비스 산업의 국제경쟁력도 살릴 수 있다. 정부가 내년 경제운용을 서비스산업 선진화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사업서비스 분야의 적자가 145억1000만 달러에 달했다. 2004년 50억4000만 달러 적자에서 4년 만에 무려 3배가량 늘어났다. 전문자격자들이 자기 밥그릇만 고집할 경우 이 부문의 적자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누가 손해인가. 결국 국민들이다. 학교 다닐 때 공부깨나 한 사람들이 왜 이 같은 사실을 모르는지, 아니 알고도 모르는 체 하는지 어이가 없다. 가방 끈 긴 ‘사’자님들, 좋은 머리로 내 주머니 속만 채우려고 하지 마시고 어떻게 하면 나라가 발전하고 국민들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고 행동해 주길 바란다.

이용웅 생활과학부장 y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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