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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종 칼럼] 한명숙 파문의 가공할 파괴력

[백화종 칼럼] 한명숙 파문의 가공할 파괴력 기사의 사진

싸움에서 스스로 후퇴할 길을 끊는 건 패하면 죽겠다는 다짐이다. 소수의 군대로 조(趙)나라의 대군에 맞선 한(漢)나라의 한신(韓信)이 강을 등 뒤에 두고 진을 쳤다는 이른바 배수의 진이 그것이다.

검찰과 한명숙 전 총리가 각각 배수의 진을 치고 나섰다. 검찰은 한 전 총리가 재임 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남동발전 사장을 시켜달라는 청탁과 함께 5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로 그를 소환했다. 그러나 한 전 총리 측은 소환에 불응하고 검찰을 피의사실공표죄로 고발했다. 한 전 총리는 1원도 받지 않았으며, 자신의 인생을 걸고 수사기관의 불법행위와 공작정치에 맞서 싸우겠다고 검찰에 선전포고를 했다. 검찰도 자신들은 피의 사실을 공표한 적이 없고 한 전 총리를 소환할 만큼 수사 내용은 탄탄하다며 14일 출석하도록 다시 통보했다.

공권력 대 범야권의 一戰

양측의 싸움은 단순히 검찰과 한 전 총리의 그것에 그치지 않고 정권 대 범야권의 한판승부로 커지고 말았다. 양측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검찰은 정부를 대표하는 공권력이고 한 전 총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세력을 대표하는 정치인일 뿐 아니라 야권의 유력한 차기 서울시장 후보이기도 하다.

당사자들에겐 배수의 진을 친 건곤일척의 승부가 될 이 싸움을 지켜보는 기자는 무척 헷갈린다. 무승부는 없어 보이고 지는 쪽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싸움에 양측이 전부를 건다는 건 그들 모두 그만큼 이길 자신이 있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싶어서이다.

검찰이 전직 총리를 소환까지 할 때는 그들 말대로 뭔가 “탄탄한 단서”가 잡혔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곽씨가 돈을 줬다니까 받았다는 이의 얘기나 한번 들어보자며 부르진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검찰이 곽씨의 구체적 진술 외에도 출입자를 체크하는 총리공관의 CCTV 자료를 검색했고 한 전 총리의 계좌를 추적하는 등으로 그를 압박할 만한 단서를 잡았다는 보도도 있었다.

뒤집어서 한 전 총리가 실제로 돈을 받았다면 검찰이 이처럼 수사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1원도 안 받았다고 잡아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만일, 돈 받은 게 사실로 드러나면 한 전 총리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공동전선을 펴고 있는 노무현 세력을 비롯한 범야권과 시민단체들까지 정치적 파산선고를 받을 텐데 말이다.

한 전 총리 측은 증거가 있으면 법원의 영장을 가져와 집행하라며 14일의 검찰 소환에도 불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은 그가 소환에 끝내 불응할 경우에도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보다는 불구속 수사하여 기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진 쪽은 국민 앞에 책임져야

기자의 원론적 생각이지만 한 전 총리가 검찰 조사에 응함으로써 사실 관계가 하루속히 명명백백하게 규명됐으면 좋겠다. 그러나 피의자가 검찰 소환에 반드시 응해야 할 법적 강제성은 없다니 그가 불응한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이 경우 켕기는 게 있어서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또 검찰은, 물론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는 한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지만, 동시에 필요하다면 영장을 받아 강제구인이라도 하고 혐의가 입증되면 구속 기소하는 것도 원칙이다. 구체적인 것은 검찰이 판단할 일이나 불구속으로 갈 경우 검찰 역시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검찰의 수사와 한 전 총리 측의 대응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든 의혹의 진상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 그리고 그 어느 쪽이 됐든 패한 쪽은 결과에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 검찰은 야권 전체의 명예가 걸린 이 혐의를 반드시 입증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정치 검찰이라는 오명을 쓰고 정권에 엄청난 부담을 안기게 될 것이다. “아니면 말고”식으로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한 전 총리 측도 만일 혐의가 입증될 경우 한 전 총리 그리고 그와 공동전선을 형성한 야권 및 시민단체 등 모두가 국민 앞에 책임질 각오를 해야 한다. 정치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정도로 넘어갈 사안 또한 아니다.

전무이사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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