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동일 (5) 연필 대신 스패너… 정비기술 배우기 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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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연필 대신 기름때 묻은 스패너를 잡았던 그해 서울 용산의 겨울을 잊을 수가 없다. 특별히 나를 반겨주는 곳은 없었지만 동네 형님 말만 믿고 무작정 서울행을 결심했다.

집을 떠나 서울로 간다는 사실에 누나들이 나를 붙들고 눈물을 훔쳤다. “서울 생활이 그렇게 녹록지 않을 거야. 기술 배울 때까지 윗분이 시키는 대로 말 잘 들어야 한다. 성질부리지 말고….”

어머니나 다름없는 큰누님은 내가 기술을 배우면서 주인한테 혼이나 나지 않을까 그게 걱정인 것 같았다. 덩치는 누나들보다 컸지만 물가에 내놓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나 또한 막상 집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겁도 나고 잘할 수 있을지, 어떨지 앞날이 막막했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무주 시골 촌놈은 기가 팍 죽었다. 자동차가 씽씽 달리고 덕유산처럼 높은 빌딩들이 에워싼 서울 시내를 보곤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가 말로만 듣던 서울이구나! 앉은 자리에서 코도 베어 간다는 서울,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나는 동네 형을 놓칠까 봐 보따리를 짊어지고 이 골목 저 골목 졸졸 따라다녔다. 동네 형은 나를 용산 원효로에 있는 자동차 정비업소에 넣어주었다.

정비업소 사장은 먹고 재워 준다는 조건으로 나를 받아주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나이였지만 어려서부터 주변에서 영민하다는 말을 들었다. 무엇보다 체력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에 언제나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월급은 생각지도 않았고 오직 기술을 빨리 배우기 위해 나는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고 성심을 다해 일했다.

연필 대신 스패너를 잡고 손가락 마디마디에 검은 때를 묻혀 가며 배우고 익힌 자동차 정비는 날로 익숙해졌다. 당시 정비업소 직원들은 거칠었다. 툭하면 욕이 터져 나오고 심하면 스패너가 허공에 날아다니는 일들이 다반사였다.

토요일 어느 날, 저녁을 먹고는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나는 이리저리 쏘다니다가 어느 교회 앞에 다다르게 되었다. 나는 교회를 정탐하러 온 사람처럼 멀찌감치 떨어져 교회를 슬쩍 살펴 보았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이 즐거운 대화를 하면서 교회 정문을 나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성경책과 찬송가를 들고 있었다. 어떤 학생은 책가방을 들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그들을 쳐다보았다.

나이는 같은 또래였지만 그들과 나는 딴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아직 사춘기 소년이었다. 그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냄새나는 작업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교회는 잘난 사람들만 다니는 그런 곳인 것만 같았다.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손톱 밑의 검은 기름때와 시커먼 손을 그들에게 내밀면 달아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교회가 많지 않아서인지 일하는 사람 중에 누구도 내게 전도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교회가 낯설게 느껴졌지만 아무튼 내가 교회에 가면 그들이 상대해 주지 않을 것 같은 사춘기 소심함이 더 강했다. 그래서 교회를 나가기 전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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