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길-한기호] 계명구도와 로드스쿨러 기사의 사진

제나라의 귀족 맹상군은 식객이 3000명이나 됐다. 이를 시기한 진나라 소왕은 맹상군을 초청해 죽이려 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맹상군은 진소왕의 애첩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애첩은 맹상군이 진소왕에게 진상한 여우털 외투를 요구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소매치기 출신 식객 하나가 개처럼 분장하고 진나라 왕궁의 담장을 넘어 여우털 외투를 훔쳐 나왔다. 맹상군이 외투를 애첩에게 선물하자 애첩은 진소왕을 설득해 맹상군을 풀어주었다.

진소왕은 맹상군을 풀어주고는 아차 싶었다. 그리고 역마를 총동원해 긴급 수배령을 내렸다. 맹상군 일행은 함곡관만 넘어서면 진나라 국경을 벗어날 수 있었지만 관문은 새벽의 닭울음소리가 들려야 열리게 되어 있었다. 이때 말석에 앉아 있던 식객 하나가 닭울음소리를 내자 모든 수탉이 일제히 깨어나 홰를 치며 울어댔다. 함곡관 관리는 바로 관문을 열었고 맹상군 일행은 극적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사기’ 맹상군 열전에 나오는 ‘계명구도지도(鷄鳴狗盜之徒)'에 얽힌 이야기다.

지금의 시대는 ‘백화제방(百花齊放)’시대였던 춘추전국시대와 닮아 있다. 백가지 꽃은 수많은 아이디어를 말한다. 능력만 있다면 제왕에게 ‘유세’해서 재상의 자리에 올라 자기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수 있었다. 심지어 개도둑이나 닭울음소리를 내는 것 같은 하잘것없는 재주로도 제왕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오늘날은 블로그 등에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한 다음 책을 펴내 대중의 선택을 받으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

우리나라는 1년에 석·박사가 8만명 이상 배출된다. 하지만 그들은 거의 준실업자 상태다. 대학의 정규직은 6만명에 불과하지만 비정규직은 13만5000명이나 된다. 그 가운데 7만명은 연봉이 990만원 미만이다. 더구나 그들 대부분은 비정규보호법의 악용으로 세 학기 강의하고 한 학기는 강의를 쉬어야 한다. 그들의 학위는 계명구도만도 못한 재주로 취급받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초중고교는 오로지 대학을 가기 위한 정거장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지방의 도시에서 고 3학년 담임을 10년간 했다는 한 후배는 10년 동안 밤 10시 이전에 집에 들어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이들 대부분도 교실에 잡혀 계명구도만도 못한 재주를 갈고 닦으려는 준비 작업만 한 셈이다.

얼마전에 ‘로드스쿨러’(또 하나의 문화) 출판기념회에 다녀왔다. 로드스쿨러는 학교를 벗어난 청소년들이 다양한 학습공간을 넘나들며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고 교류하고 연대하는 자신 같은 청소년들에게 스스로 붙인 이름이다. 이 책은 스무살 전후의 로드스쿨러 10여명이 함께 쓴 책이다. 그날 저자들은 너무나 논리정연하고 자신에 차 있는 모습으로 발표를 해서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들은 매주 모여 함께 밥을 해 먹고 세미나를 하고 글쓰기 공부를 하고 토론도 하고 여행도 다녔다고 한다. 그들이 만들어낸 생생한 공부 방식은 사람, 지식, 자본 등이 경계를 넘나드는 시대에 적합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교실에만 갇혀 있던 학생들이 결코 이뤄낼 수 없는 수준이다. 나는 이들이 삶의 ‘자기언어화’를 소화하는 과정은 분명 지금의 학교교육이 받아들여야 하는 학습법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이제 공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해야만 한다. 학교 안에서 그런 학습을 하기 가장 적합한 곳은 도서관이다. 따라서 학교 도서관을 공부방처럼 만들 것이 아니라 토론과 탐구, 놀이가 넘쳐나는 시끄러운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만이 지금 아이들에게 계명구도 이상의 재주로 험난한 세상을 스스로 이겨낼 지혜를 안겨주는 일이 될 것이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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