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동일(6) ‘車박사’로 인정받았지만 마음은 허전

[역경의 열매] 정동일(6) ‘車박사’로 인정받았지만 마음은 허전 기사의 사진

“공부는 해서 뭐해? 먹고 살려면 기술이나 배워!”

어느 날 정비업체 선임이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래서 내 본심을 꺼냈다.

“저 공부하고 싶습니다.”

“공부? 지금 네가 정비 기술 배우는 게 공부여, 뭔 공부?”

“재건중학교를 다니다 말아 좀 서운해서요.”

“야, 일반 중학교 다니다 만 것도 아니고 그 깐 재건중학교 다닌 게 무슨 벼슬이냐. 그리고 네가 공부해서 뭣에 쓰려고 하냐? 시다바리가 그럴 시간 있으면 기술이라도 하나 더 배워서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도록 해.”

내 뜻을 알아주지 못하는 선배의 훈계에 객지 생활의 설움을 느꼈다. 나 같은 사람은 공부하는 게 아닌 모양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교회에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해보겠다는 생각도 그날로 싹 사라졌다.

대신 그럴 때마다 남산을 보면서 고향의 뒷동산을 떠올렸다. 남산의 소나무를 보면 힘이 생겼다.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아버지, 형님, 큰누님, 작은 누님 모두 그리웠다.

나는 공부에 대한 생각을 뒤로 미루고 우선은 내 직장에서 최선을 다해 기술을 익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보다 더욱 부지런히 한 발 앞서 움직였더니 나를 믿고 찾는 손님들이 점점 늘었다. 이젠 정비에 있어 가장 복잡한 엔진 부분까지 섭렵하게 되면서 맡은 일에 대한 자신감은 물론 자동차에 있어서 최고라는 자부심도 갖게 되었다.

용산자동차정비업소에서 4년여 정도 근무하면서 제일 어렵다는 엔진까지 마스터했다. 나는 내친 김에 운전면허시험에 도전했다. 1973년, 나는 운전면허를 취득하였다. 당시 운전면허를 가진 사람이 얼마 없었을 때였다. “어이 정 박사, 축하해. 운전면허까지 땄다면서?”

자동차에 대한 열정과 해박한 지식으로 ‘정 박사’라는 별명까지 갖게 되었다. 채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나는 내가 일하는 곳에서 박사가 된 것이다. 지금도 나는 엔진 소리만 들으면 차의 어디가 이상이 있는지 안다. 손수 자동차를 점검하고 웬만한 것은 수리도 할 수 있다.

자동차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해박했지만 남들과 같이 학교에 다니며 공부하지 못한 것이 늘 서운해 배움에 대한 열망은 점점 높아갔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나는 검정고시 학원에 찾아가 상담을 했다. 그리고는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여전히 공부는 나의 삶과는 동떨어진 꿈 같은 얘기였다. 이런 상황이 참 서러웠다. 그래도 나는 남들과 같이 학생이라는 신분을 갖고 공부할 날이 오리라 믿으며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몇 년 후, 나는 군대에 갔다. 평생 차도 갖지 못할 사람이 운전면허증은 따서 뭣하겠느냐고 놀리던 사람들이 놀랄 일이 벌어졌다. 이등병이 장성을 모시는 운전병이 됐다. 운전면허증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을 수 있다는 것을 당시엔 아무도 몰랐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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