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포럼-유영옥] 북한 화폐개혁의 후유증 기사의 사진

북한은 최근 전격적인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이에 대해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북한 문제 전문가 루디거 프랭크 교수는 14일 미국 싱크탱크 노틸러스 연구소 홈페이지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의 화폐개혁은 북한이 인플레이션을 막고 신중산층을 파괴하기 위한 정치적 조치지만 북한 권력의 패러다임 변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진단했다. 프랭크 교수는 새 2000원권 지폐에 김정일 위원장을 상징하는 그림만을 등장시킨 점을 가장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번 북한의 화폐개혁 조치는 북한의 예상과는 달리 인플레이션을 가중시키고 북한 주민들을 더욱 어려움에 처하게 하고 상인과 개인, 소매업자 등 이른바 ‘시장 세력’들이 큰 피해를 봤다. 시장 세력은 시장에서 축적한 재력을 바탕으로 민심과 여론을 주도하며 때로는 당국의 통제에 잘 따르지 않았다.

후계구도 위한 극약 처방

북한 당국은 이러한 신흥 상인계급의 출현으로 부의 양극화가 초래돼 위화감이 조성되고 사회가 불안정해졌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들이 당·정·군의 관료나 지배층과 결탁할 경우에는 정권에 대한 새로운 도전 세력으로서 후계체제 구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화폐개혁과 같은 극약 처방만이 시장 기능을 축소시키고 나아가 그들의 세력을 와해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북한 정권이 단행한 화폐개혁은 언뜻 보면 상식 밖의 조치 같지만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북한 나름대로 치밀한 계산에 의해 취해진 조치다. 북한은 150일 전투와 100일 전투를 연이어 벌이면서 강제 노력 동원을 통한 생산력을 확보함으로써 화폐개혁에 따른 시행착오나 부작용을 최소화했다.

또한 일정 한도를 정해 구권을 신권으로 바꿔주고, 한도를 초과하는 금액은 당국이 몰수해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재원을 확보했다. 일반 노동자의 경우 두세 달치가 넘는 생활비를 사실상 국가가 강취한 셈이다. 이렇게 되자 화폐개혁의 명목으로 시행된 통화 압수 조치에 대해 북한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반발이 커지고 있는 추세다. 심지어 북한 정권이 군대를 동원, 무력 진압을 준비할 정도라고 한다.

시장은 김정일의 성토장으로 변했다. 그 가운데 중간 유통 상인들이 가장 분개하고 있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화폐를 땅에 묻거나 불태우다 적발되면 김일성초상 훼손죄를 적용해 정치범으로 처벌한다. 신의주 5·1거리에서는 새벽녘에 5000원짜리 구권이 뿌려지는 사건이 발생해 보위부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북한은 이번의 화폐개혁이 인플레이션을 잡고 주민의 생활 안정을 도모하므로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조치”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평양을 비롯한 신의주 해주 청진 등 주요 도시의 장마당이 문을 닫으면서 부유층뿐 아니라 서민들조차 피해를 보고 있다. 시장을 통해 생존을 강구하던 서민들까지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북한 주민은 고통받고 있는데 김정일은 여전히 호화 생활을 즐기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이탈리아에서 초호화 요트 2척을 수입하려다 구매 과정에서 불법임이 드러나 요트 도입은 고사하고 지불금 1750만 달러마저 압류돼 국제적 망신을 자초했다.

주민들 생계 위기 몰고와

수억원 하는 벤츠 승용차도 수백대나 보유하고 있다. 또한 풍광이 수려한 곳에 있는 김정일의 호화 별장은 25개가 넘는다. 아들 김정은을 위해 일부 별장에 빙상경기장 겸용 실내 축구장을 건설하고, 유럽풍의 장미 정원까지 꾸며 놓았다. 그래서 이번 화폐개혁은 김정일이 온갖 호화사치를 탐닉하다가 파탄낸 국가 경제를 주민들의 재산을 수탈해 보충하고, 주민의 유일한 생계 터전인 시장을 없애 독재 정권의 수명을 연장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선량한 주민의 재산을 강탈하는 방식의 화폐개혁으로는 난국을 타개하지 못한다. 더구나 정치적 목적을 달성키 위한 화폐개혁은 북한의 경제난과 체제 위기를 더욱 심각하게 한다는 사실을 북한 정권은 깨달아야 한다.

유영옥 (경기대학교 국제대학장, 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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