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오죽하면!” 기사의 사진

어느 통일 관련 민간단체의 강좌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달포 전의 일이다.

“통일을 현실의 과제로서 추구하는 한 평화적 통일의 목표에 다가가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통일은 인위적으로 이뤄내는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가 닿게 되는 상태라는 점을 불만스럽더라도 수용해야 한다.”

이 경우 통일은 ‘국가통합’이다.

“정치체제의 통합만이 통일이 아니라는 인식을 가질 때 통일의 길은 열릴 수 있다. 남북 주민들이 동족의식을 갖고 문화적 역사적 동질성을 회복해 가면서 상부상조하여 공영의 터전을 이뤄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통일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선 남북한 간 국가통일 포기 협정을 제안한다.”

인민 굶주리는 것도 남 때문?

정면에 앉은 분의 표정이 심상찮았다. “질문답변 순서가 되기만 해봐라”고 벼르는 빛이 역력했다. 60대 초반으로 봤지만 형광등 아래서 나이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그분을 위해서라도 위안이 될 몇 마디를 덧붙였으면 좋았겠지만 십수 년 전에 썼던 글을 텍스트로 삼은 터였다. 생각이 바뀌지 않았으니 그대로 말할 수밖에.

“다른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저는 북한의 김정일 체제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부자(父子)가 60년이 넘도록 절대권력을 휘두르면서 북한 주민을 통치해왔을 양이면 하다못해 먹이기라도 제대로 했어야지요. 그저 굶기기만 한 정도가 아니라, 허기를 면하려고 국경 넘은 사람들을 기어이 붙잡아 가서 처벌하고….”

벼르던 분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오죽하면 그러겠어요, 오죽하면! 들어보니 뭐 별 내용도 없구먼.”

미국이 지속적으로 전쟁 위협을 가하고 경제 봉쇄를 풀지 않기 때문이 아니냐고 따지려 했을 터이다. 주최 측이 서둘러 마치는 바람에 토론이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이른바 ‘수구보수 꼴통’들이나 미국을 겨냥해 북한 정권 역성드는 이들이 내세우는 반박 논리가 대개 그렇다. 그 때문에 북한은 인민을 굶기면서도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할 수밖에 없다던가.

그 같은 주장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남한도 진작 국민을 만성적 기아 상태로 내모는, 부자 세습의 전체주의적 통치체제 하에서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어야 할 일이다. 북한의 배후에도 강대한 후견국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으니까.

무기 팔아 식량 사려 했을까

지난 12일 재급유를 위해 태국의 돈므앙 공항에 착륙했던 그루지야 항공사 소속 수송기 1대가 억류됐다. 북한산 무기를 싣고 있었다고 발표됐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1874호가 발효되고 있는데도 북한은 무기 수출을 감행했던 것이다.

“오죽하면!” 그런 항변이 환청으로 들리는 듯하다. 설령 그렇게 주장할 명분과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진실로 인민을 염려하는 인민의 정부라면 이런 선택을 할 리가 없다.

“옛 명군(明君)이 인민의 산업을 제정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위로는 넉넉히 부모를 섬길 수 있고 아래로는 넉넉히 처자를 먹여 살릴 수 있게 하여 풍년이 들면 일생을 배불리 먹을 수 있고, 흉년이 들더라도 죽음으로부터 면할 수 있도록 하여줍니다. 그렇게 한 후에 인민들을 지도하여 선한 길로 가게 하는 까닭에 인민들이 그를 따라가기가 수월한 것입니다.”(孟子, 梁惠王章句上, 안병주 외 역해)

왕도를 묻는 제선왕(齊宣王)에게 맹자가 그렇게 대답했다. 백성을 먹여 살리는 것, 즉 양민(養民)이 통치의 기본임을 강조한 것이다. 지금이라고 그 이치가 다르겠는가. 정말 애민하는 리더라면 자신을 버려 인민을 살리고자 할 게 틀림없다.

‘오죽하면’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한 사정이 있더라도 이래서는 안 된다. 자신들의 통계로 2400만명에 이른다는 인민을 굶기고, 4900만명에 이르는 남쪽의 겨레를 인질로 삼아 미국과 핵탄두 위의 배짱싸움을 벌이다니. 인민을 굶주림에서 구하기 위해? 인민의 자존을 위해? 천만에! 김씨 왕조의 연명을 위해서다. 그래서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다는 것이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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