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동일 (8) 97년부터 치킨 체인점 사업 시작

[역경의 열매] 정동일 (8) 97년부터 치킨 체인점 사업 시작 기사의 사진

아내와 나는 화재가 난 바로 그날부터 팔을 걷어붙이고 복구에 매달렸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잖아.” 단층이었던 가게를 2층으로 올렸다.

연탄 1장으로 겨울을 나던 시절로 되돌아갔다. 24시간 일했다. 1년 동안에 빌린 돈을 모두 갚고도 여유가 조금 있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이전까지는 한 번도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었다. 사람이 변하는 것도 한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1990년, 마침내 서울의 중심인 중구 한복판 명동에 치킨 가게를 오픈하게 되었다. 이곳이 바로 현재 전국 500여 개의 체인점을 둔 ‘둘둘치킨’(둘이 만나 맛있게 먹는)의 모태가 된 곳이다. 장소를 옮겨 오픈한 치킨 가게이니 만큼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새로운 맛을 개발하여 세계 최고의 치킨을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97년 본격적인 체인점 사업을 시작했다. 장사가 안돼 폐점할 경우 인테리어 비용 50%를 환불해 주는 사후보장제도 등으로 신뢰를 최우선으로 여겼다. “벌처럼 날아서 나비처럼 놓아라”는 둘둘치킨 직원들의 구호다. 손님을 대할 때 빠르고 깨끗하고 공손하게 대하라는 의미다.

사람들은 나를 ‘닭 박사’라고 불렀다. 유명 외국산 브랜드의 국내 시장 진출로 골목 국산 치킨집이 속속 문을 닫는 상황 속에서도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치킨 가게를 새로 연 어느 날, 가게에 몹시 궁색해 보이는 열댓 명의 꼬마 손님들이 몰려 왔다.

“엄마, 엄마!”

함께 온 젊은 아가씨에게 꼬마들은 엄마라고 불렀다. 젊은 아가씨 는 겨우 치킨 한 마리를 시켰다.

“아가씨, 이 아이들은 누굽니까?”

“예, 숭의여전 옆에 있는 군경유자녀원에서 온 아이들인데 닭 좀 먹이러 왔습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치킨 몇 마리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울리며 신나게 먹기 시작했다.

나는 1991년부터 지금까지 한 달에 한 번씩 셋째 주일마다 치킨 30마리를 싸 가지고 보육원으로 가서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며 흐뭇해 했다. 그때마다 어린 시절 배를 곯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금방 낳은 계란을 당신이 드시지 않고 나에게 건네시던 아버지의 자식 사랑이 생각나 눈시울이 뜨거웠다.

치킨을 들고 보육원을 방문하는 날이 되면 아이들은 멀리까지 마중 나와 나를 기다렸다.

“치킨 아저씨, 어서 오세요!”

“치킨 아저씨, 고맙습니다!”

나는 형편이 되는 대로 겨울철 난방 연료로 사용하는 석유를 지원하기도 했고, 보육원 수리하는 데 작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때 고사리 같은 손으로 편지를 써 주던 아이들이 성인이 돼 요즘도 찾아온다.

고생 끝에 자수성가한 사람은 자신의 소유에 집착하는 경향이 더러 있다. 하지만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고생한 만큼 베풀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인생철학이다. 내가 존경하는 사업가들은 많지만 특히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을 꼽는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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