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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종 칼럼] 예산국회의 추태를 덜 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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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不可思議)란 원래 불교 용어다. 중생들은 헤아릴 수 없는 부처의 오묘한 지혜나 가르침이라고 한다. 이 말은 일반 사회에 들어와 보통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뜻으로 통용되고 있다.

불가사의한 한국 정치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한국만큼 불가사의한 일이 많은 곳도 없으리라. 지금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그렇다. 헌법은 국회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 그러니까 전년 12월 2일까지 새해 예산안을 의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는 1990년 이후 20년 동안 이 시한을 5차례만 지켰을 뿐 무려 15차례나 넘겼다. 특히 2003년부터는 올해까지 7년 연속 법정시한을 어겼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국가 최고의 법인 헌법을 밥 먹듯 위반하는 것, 그렇게 위헌을 한 국회가 어떠한 제재를 받은 일이 없었다는 것, 모두 불가사의하다.

더 불가사의한 일은 예산안이 법정시한 내에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준예산제도가 있으니 국정이 마비되진 않더라도 차질을 빚는 게 정상이나 그 때문에 나랏일이 크게 잘못됐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또 야당이 법정시한을 넘기면서 투쟁한다고 정부안이 크게 깎이거나 바뀐 것도 별로 보지 못했다.

예산안 처리와 집행이 이런 식이다 보니 여야의 물리적 충돌도 국민 눈에는 눈 가리고 아옹으로밖에 안 보인다. 멱살잡이를 하다가도 때가 되면 정치적 선물을 주고받은 뒤 적당히 처리되리라고 예상한다.

예산안 심의가 이처럼 이뤄지다 보니 그 내용이 부실해지는 건 당연지사. 당장 내년도 예산안을 실질적으로 손질해야 할 예결위 계수조정소위가 회계연도 개시가 열흘 남짓밖에 안 남은 지금까지도 구성되지 못하고 있으니 내용 있는 손질이 가능하겠는가. 예산안을 깎아 국민 부담을 덜어줘야 할 국회의원들은 시끄러운 틈을 이용하여 서로 짜고 지역구 사업 예산을 늘려 놓았다. 정부도 4대강 사업 예산을 야당이 볼모로 잡고 있으나 때가 되면 여당이 통과시켜줄 것이고, 다른 분야 예산에 대한 시비가 묻히게 돼 오히려 고마워할지도 모른다.

이런 일은 정권이 바뀐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지금은 한나라당이 민주당의 헌법 위반을 비난하고 있으나 자기들도 야당일 때는 마찬가지였다. 유신이나 5공 등 권위주의 때는 예산안이 법정시한 내에 처리됐지만, 민주화 이후엔 그 값인지 어느 정권에서든 야당의 반대로 시한을 넘기기 일쑤였다.

예결위를 상임위화 하자

국회가 이처럼 상습적으로 헌법을 위반하는 것을 줄이고 예산안 심의를 보다 내실 있게 하는 데는 정치인들이 자신들에게 부여된 의무와 사명을 자각하는 게 제일이다. 그러나 그걸 기대하느니 산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게 나을 것이다.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현재 단기간 특별위원회로 운영되는 국회 예결위를 연중 운영되는 상임위로 바꾸는 것이다. 물론 그리 한다고 예산안이 법정시한을 안 넘긴다는 보장이 없고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의 싸움이 연중무휴로 벌어질 우려 또한 없지 않다. 그래도 예결위가 상임위로 되면 전체 예산안이 법정시한을 넘길 가능성은 줄어들고 심의도 보다 철저히 이뤄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에서는 예결위의 상임위화도 기대하기 힘들다. 어느 정권하에서든 야당은 이를 요구하고 정부·여당은 반대하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정권 때는 한나라당이 이를 요구했고 열린우리당이 반대했다. 지금은 거꾸로다. 정부·여당은 예산안으로 1년 내내 야당에 시달리는 게 귀찮고, 야당은 1년 내내 정부·여당을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야가 바뀌었다고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한 입으로 두 말 할 수 있다는 것도 불가사의 중 하나다.

그래도 국정을 이끌어가는 정치인이라면 개인적인 또는 정파적인 이익과 국가·국민의 이익이 상충할 경우 국가·국민의 이익을 앞세우는 용기가 필요하다. 또 여당은 자신들이 야당이 됐을 때를, 야당은 여당이 됐을 때를 생각하는 이른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아량과 지혜도 필요하다. 예결위의 상임위화를 적극 검토할 때다.

백화종 전무이사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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