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고세욱] 2009년,다사다난했던 ‘불’의 해 기사의 사진

2009년이 1주일가량 남았다. 매년 연말이면 지나간 한 해를 회고하며 ‘다사다난했다’는 말을 하곤 한다. 세계에서 핫이슈가 가장 많은 나라이다 보니 얘깃거리도 자연 풍성하다.

개인적으로 올 한 해 주요 이슈를 관통하는 이미지로 ‘불’을 꼽고 싶다. 화염으로 시작한 불은 1년 내내 국민들 가슴에 붙어 있었다. 간혹 신바람 일으키는 불이 없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서민의 한과 울분을 자극했다. 여기에다 불만 불신 불안이라는 ‘불’ 시리즈까지 가세했다. 특히 인터넷에서의 갑론을박은 연일 이 같은 ‘불’로 달궈지다시피 했다. 그야말로 ‘불’ 가득했던 2009년 대한민국이 아니었나 싶다.

지난 1월 용산에서 발생, 6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 참사는 불의 서곡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가진 것 없는 철거민들이 시위하며 경찰과 맞서다 비극을 맞았다. 집을 잃은 서러움에 더해 순식간에 가장의 목숨까지 잃은 데 대한 가족의 아픔은 형언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법과 원칙 차원에서 대처하겠다”는 말만 하며 이들의 마음을 거두어주지 않았다. 사고가 난 지 1년 가까이 지났건만 유족들은 아직도 장례를 치르지 않고 있다. 용산의 불은 망루에서만 타지 않았다.

화염 속 불만 불이 아니다. 용산의 불은 ‘강호순’과 ‘미네르바’를 거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 국민 가슴속에서 절정으로 타올랐다.

강호순(조두순)으로 대변되는 강력범죄의 빈발과 미네르바 구속은 국가치안 부재, 비상식적 정책 집행에 따른 국민들의 반발을 가져왔다. 자살로 마감한 노 전 대통령의 장례에는 무려 500만명 이상의 국민이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정부가 노 전 대통령을 욕보이고 파렴치범으로 몬 것이 죽음의 원인이라는 느낌이 가장 컸다. 정부의 섣부른 대응이 결국 국민 가슴속에 불씨를 던진 셈이 됐다.

불이 났으면 꺼줘야 한다. 특히 어떤 형식이든 정부 안에서 발화된 불은 더욱 적극적인 소방 대책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서민을 위한 정부의 행보는 더디기만 했다. 정부는 거시지표의 회복과 G20 정상회의 유치를 자화자찬하지만 서민 체감경기와는 동떨어져 있다. 또 여론의 반대와 국론 분열이 심한 4대강과 세종시 수정안에 올인하는 자세는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고용불안 등으로 스트레스 받는 국민들에게는 이는 한심한 정쟁 대상일 뿐이다. “소방수가 되레 불난 집에 부채질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가 반면교사를 또 다른 ‘불’ 시리즈에서 찾는 것은 어떨까.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불’륜 소동과 국내 루저 발언으로 인한 남성들의 ‘불’쾌감이 그것이다. 우즈 외도 스토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흑인들의 비판이다. “왜 백인여자하고만 놀아났느냐”는 지적에서 자기 편이라고 봤던 흑인 우즈에 대한 배신감이 녹아 있다. 성공가도를 위해 약자인 흑인을 의도적으로 외면했다는 것이다.

이는 어릴 적 찢어지게 가난했다며 서민 편임을 강조한 이 대통령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지난해 ‘강부자’ 인선과 일방적인 미국 쇠고기 수입 강행 파동은 이 대통령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었다. 반면 올해 상황은 많이 호전됐다. 지지율도 상당 부분 높아졌다. 뽑아줬더니 대통령이 자신을 등진다고 서민이 판단하는지 안 하는지 여부는 이처럼 상반된 결과를 낳는다. 서민의 콤플렉스를 따뜻하게 보듬어 안지 못 하면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난다는 것은 ‘루저’ 사태가 주는 교훈이다.

국민의 한과 울분이 담긴 불을 어떻게 끌지에 대한 답은 나와 있다. 이를 따르느냐 안 따르냐는 선택의 문제만 있을 뿐이다. 김연아, 월드컵,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같은 스포츠 분야에만 국민의 분노 해소를 맡기는 것은 정부의 책임방기다.

고세욱 인터넷뉴스부 차장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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