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성기철] 야당과의 대화 꺼리는 대통령 기사의 사진

노태우 정부 때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모 인사가 전해준 여야 영수회담 뒷얘기 한 토막. 당시 그는 회담 주인공이던 1盧(노태우)-3金(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에 대해 매우 조심스럽게 인물평을 한 것으로 기억된다.

“회담이 끝나고 대변인들을 불러 결과를 설명하고 나면 네 분이 차를 한 잔 합니다. 이때 노태우 대통령은 문학을 포함한 독서 얘기를 많이 꺼냅니다. 당신이 최근에 읽었던 책을 소개하곤 하죠. 그러면 제일 먼저 김종필 총재가 말을 받아 그 책 참 좋다는 식으로 화답을 합니다. 김대중 총재는 그 책 어디쯤 어떤 내용이 나온다는 식으로 곧바로 대화에 끼어들죠. 김영삼 총재는 좀처럼 대화에 끼어들지 않지만 대화 말미에 좌중을 압도하는 농담 한 마디를 던지곤 합니다. 결국 환히 웃으면서 회담장을 떠나십니다. 회담이 잘 됐다는 뜻이죠.”

군사정권 때도 자주 열린 영수회담

국회가 여소야대였던 노태우 정부 초기 1노-3김 회담은 정국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축이었다. 국회 차원에서 커다란 걸림돌이 생기면 4자회담을 갖고 이를 걷어치우곤 했다. 노 대통령은 3당 합당으로 여대야소가 된 뒤에도 야당 총재(김대중)를 자주 만났다. 2인 단독회담을 하기도 하고, 여당 대표(김영삼)를 참석시키기도 했다.

대통령 주도로 이뤄지는 영수회담은 박정희, 전두환 정부 때도 자주 열렸다. 군사정권이라 해서 청와대가 야당을 무시한 채 일방통행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영수회담은 김영삼, 김대중 정부에서도 꽉 막힌 정국을 푸는 지렛대 역할을 했다.

영수회담이 거의 자취를 감춘 것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다. 대통령이 집권당의 총재직을 내놓고 ‘수석 당원’이 되면서 야당 대표와 마주앉는 것을 꺼렸기 때문일 게다. 여당을 지휘하지 않는 상황에서 국회 문제를 푸는데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것이 어색한 일인지도 모른다. 국회 일은 여당 대표에게 일임하는 게 전략상 유리하다고 판단했음직도 하다. 이 때문이었을까. 노무현 정부 때는 ‘정치’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년 내내 여야가 싸움박질만 하다 끝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제 우리의 관심은 이명박 정부다. 이 대통령도 야당 최고지도자와 대화하는 것을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 지난주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가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참석하는 3자회담을 제의했을 때 이 대통령이 뒤늦게나마 야당과의 소통을 시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 대표가 당연히 청와대와 조율한 뒤 제의한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율이 전혀 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정 대표의 희망사항이자 단독 플레이였음이 드러났다. 이후 거꾸로 민주당이 3자회담을 갖자고 연일 이 대통령을 압박하는데도 청와대 대변인은 “의제 등에 대한 여야 협의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생각이 담긴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결국 정 대표만 머쓱하게 됐다. 어쨌거나 청와대 분위기를 살펴볼 때 3자회담은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의 대화에 소극적인 것을 영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다. 그는 현재의 여의도 정치를 생래적으로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자신 두 번이나 국회의원을 지냈음에도 투쟁일변도의 여야 대립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거기다 노무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여당 총재가 아니라는 이유도 있을 게다. 국회 일은 당에 맡기는 게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정치적 반대세력 의견 적극 수렴해야

하지만 대통령은 효율적 국정 운영을 위해 야당 최고지도자와 대화를 가급적 자주 갖는 게 좋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정치적 반대세력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 수시로 머리 맞대고 대화하는 모습은 국민들 보기에도 좋을 것이다.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의 회담을 꺼리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유 불문하고 볼썽사나운 일이다.

이 대통령은 최근 들어 국민과의 직간접 대화를 부쩍 늘리고 있다. 정치권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특임장관까지 신설했다. 이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야당 최고지도자들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것이다. 정 대표의 정치력 부재만 탓할 때가 아니다.

성기철 편집국 부국장 kcs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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