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지형은] 열려라… 기사의 사진

아라비안나이트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페르시아에 카심과 알리바바 형제가 살고 있었다. 형 카심은 부유했고 동생 알리바바는 가난했다. 어느 날 나무하러 산에 간 알리바바가 놀라운 일을 겪는다. 40명이 되는 도둑들이 오는데 언덕 위 큰 바위 앞에 서더니 두목인 듯한 자가 큰소리로 외치는 게 아닌가. “열려라, 참깨!” 그러자 큰 바위가 스르르 열리면서 동굴이 나타난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음성인식 시스템이다. 보물을 동굴 속으로 나르고 두목이 다시 외친다. “닫혀라, 참깨!” 도둑들이 사라지자 나무 위에 몸을 숨기고 있던 알리바바가 내려와 큰 바위 앞에 서서 외쳐본다.

“열려라, 참깨!” 알리바바는 큰 부자가 되었다. 동생에게서 자초지종을 듣고 카심도 동굴로 간다. 비밀코드를 말하고 동굴에 들어간 카심은 너무 좋아서 죽을 지경이다. 동굴 문을 닫아놓고는 덩실덩실 춤을 추며 이것저것 끌어 담느라 정신이 없다.

비밀암호를 잊어버린 카심

문제는 그러다가 동굴 문을 여닫는 암호를 잊어버린 것이다. 아마 되는 대로 여러 가지를 갖다 붙였을 테다. “열려라, 가지…오이, 참나물, 들깨….” 마음은 급해지고 더 당황한다. 그럴 땐 머리가 더 돌아가지 않는 법이다. 밖에서 소리가 들린다. 도둑들이다. 밖에서 도둑이 외치는 암호를 들으면서 카심이 어떤 심정이었을까. “열려라, 참깨!” 그 소리를 듣고, 카심은 죽었다.

카심이 죽은 까닭이 뭘까. 닫힌 문이 열리지 않아서다. 문이 열리지 않은 것은 비밀코드를 잊어버려서고.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카심은 목적을 잃어버렸다. 동굴 안의 보화를 갖는 것이 목적이라면, 동굴에 들어가 있는 상황은 아직까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아직 상황이 종료되지 않았다. 적어도 집에까지는 갖고 와야 하는 것인데 중간 지점에서 너무 좋아했다. 작은 전투의 승리에 도취되어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잊었다. 알리바바와 사십 인의 도둑 이야기가 전하는 승패 또는 삶과 죽음에 대한 교훈은 간단하다. 문이 열리지 않으면 죽는다. 닫힌 채로 있으면 위험하다. 닫힌 것을 여는 암호를 기억하는 것처럼 중요한 게 없다.

우리 사회의 올해 모습은 닫힌 문이 열리지 않는 그림 같다. 대표적인 예가 여야의 불통 상황이다. 두 집단이 한쪽은 동굴 안에 있는 카심이고 다른 쪽은 동굴 밖에 있는 도둑인 것일까. 정치란 게 생물과 같으니까 상황에 따라서 입장이 동굴 안과 밖으로 바뀌는 것일까. 그래서 우리 편이 동굴 밖에 있어서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생각될 때는 가차 없이 상대편을 죽이려 드는 것일까. 아니다. 이런 판단이 모두 착각일 수 있다. 여야 모두가 동굴 안에 있는 카심이다. 동굴 밖에서 암호를 갖고 있는 것은 국민이고, 아니 어쩌면 국민들까지 동굴 안에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 이럴 때 동굴 밖에서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냉혹한 국제 정세이며 모든 것을 결정짓는 역사 흐름이다.

새해엔 불통과 단절 없애야

닫히면 막히고, 막힌 것이 오래 되면 끊긴다. 그러다 보면 문을 여는 암호도 까먹고 그래서 죽는다. 사람은 살려는 존재인데 죽는 길로 치닫는 때가 많다. 사람들 사는 이런 모습이 안타까워 하나님이 닫힌 것을 여는 비밀코드를 가르쳐주셨다. 직접 와서 요점을 정리해주셨다. 저자 직강이다. 그게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의 처음과 마지막은 평화다. 크리스마스의 주인공 예수가 탄생하실 때 천사들이 땅의 평화를 노래했다. 부활하신 예수가 사람들에게 나타나실 때마다 평안하냐고 물었고 평화로우라고 축복하셨다.

그리스도의 처음과 마지막이 평화라면 그 사이에 있는 예수의 삶은 사랑이다. 크리스마스를 노래한 찬송 ‘거룩한 밤’의 3절 가사는 그래서 뜻이 깊다. “주의 뜻은 사랑과 평화로다. 우리도 서로를 사랑하세.”

오늘날 우리네 삶에서 닫히고 막힌 문들을 여는 비밀코드를 큰소리로 외쳐보자. 불통과 단절의 한 해를 날려버리고 곧 밝아올 새해를 활짝 열어야 하지 않겠는가. “열려라, 사랑과 평화!”

지형은(성락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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